나뭇잎 사이로 (18)

나뭇잎 사이로는 시민기자들의 환경이야기를 격주로 싣습니다

며칠 전 공부모임에서였다. 함께하는 사람들도 좋고 그날 공부 내용에 기대가 커 시작 전에는 기분도 컨디션도 좋았다.

그런데 내 옆자리에 앉은 분한테서 담배냄새가 심하게 나서 순간적으로 ‘헉’ 숨을 참았다. 시간이 지나면 냄새가 희석되거나 코가 적응하겠지 생각하고 내색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분 말고도 흡연자가 두어 분 더 계셨고, 그분들은 강의 시작 전과 쉬는 시간에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들어오시는 모양이었다.

내 호흡은 점점 짧아지고 거칠어졌고, 강의에 집중하지 못할 정도의 어지러움을 느꼈다. 강의가 끝날 때쯤엔 속이 울렁거릴 지경이라 기대했던 종강 뒤풀이에도 참석하지 못한 채 집으로 도망쳐왔다.

담배냄새를 싫어하긴 하지만 이런 적은 처음이어서 나만 그랬을까, 궁금했다. 그런데 그 자리에 같이 있던 친구 하나는 그날 팔뚝에 두드러기가 났다며 밀폐된 공간에서 담배냄새에 노출됐을 때 느껴온 고통을 호소했다.

사람들이 불쾌하게 여기거나 유해하다고 알려진 냄새뿐 아니라 기분 좋은 향기도 때로는 괴로움을 유발한다.

거리에서 스쳐지나간 사람에게서 나는 향수 냄새에 구역질이 난 적도 있다. 기분 나쁜 향이 아니었는데도. 사람이 많은 승강기나 대중교통에서 앞 사람 머리에서 나는 진한 샴푸 냄새를 맡는 것도 괴로울 때가 있다.

향수ㆍ샴푸ㆍ섬유유연제ㆍ섬유탈취제ㆍ방향제 등의 냄새를 찾는 사람이 많지만, 그 향기가 괴로운 사람들도 있다. 일명 ‘향기 민감증’을 가진 사람들이다. 이들은 인공 향에 노출되면 통증이 며칠씩 지속되고 사고기능이 마비된다고 한다. 그 때문에 외출을 거의 하지 않고 웬만한 볼일은 인터넷으로 처리하며, 배달 온 물건들을 베란다에 내놓아 화학적 향을 다 날린 후 사용한다.

세제나 샴푸 등 각종 화학 향이 넘쳐나는 대형 마트에 갈 때 방독면을 착용하기도 한다. 향료 회사에서 합성 버터밀크향(디아세틸)을 팝콘에 배합하는 일을 하다가 폐 기능이 80%가량 망가진 노동자도 있다.(2012년 방송된 ‘KBS 스페셜-달콤한 향기의 위험한 비밀 편’)

증상이 덜 심각한 ‘향수 알레르기’도 있다.

전 세계 인구의 1~3%로 추정되는 사람들이 향수 알레르기로 고생하고 있다. 향수 냄새를 맡으면 두통ㆍ재채기ㆍ콧물ㆍ호흡곤란ㆍ기침ㆍ무력감ㆍ구역질ㆍ어지럼증 등의 증세를 보인다.

향수 알레르기는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일반 알레르기 반응과 화학물질 과민 반응이다. 일반 알레르기 반응은 향수에 들어있는 천연 향에 알레르기 반응이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천연 원료인 과일이나 채소, 꽃, 풀, 나무 등에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 그 천연 성분이 함유된 향수에도 반응하는 것이다. 내 주변엔 오이나 키위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오이나 키위 유래 성분 향수는 안 되겠다.

한편 향수를 제조할 때 첨가하는 화학 합성 원료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것은 화학물질 과민 반응이다. 향료를 녹이는 알코올, 장미와 레몬 등에서 추출한 합성물질들이 주요 알레르기원이다. 식약처 웹진 ‘열린마루’ 2017년 9월 호에는 향수의 유래와 종류, 착향제 구성 성분 중 알레르기 유발 물질로 알려진 성분, 올바른 향수 사용법 등이 소개돼있다.(http://www.mfds.go.kr/webzine/article.jsp?articleNo=48)

향수 알레르기를 예방하려면 자신이 어떤 향수에 증상을 보이는지를 기억했다가 그 제품을 사용하지 않아야한다. 향수를 만드는 회사에서는 향수 성분을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성분 표시를 보고 피할 방법은 없다. 또 합성 향보다는 자연 향, 너무 강하지 않은 향, 알코올이 없는 제품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나와 같은 공간에서 공부나 일을 하고, 마트나 식당에서 마주치고, 짧은 순간이나마 대중교통이나 승강기를 함께 타는 다른 이들의 향기 민감증을 생각한다면 향을 줄이는 것이 좋겠다.

누구나 아침저녁으로 몸을 씻고 옷도 자주 세탁해 입으니 몸에서 악취 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격렬한 운동이나 고단한 육체노동 직후 아니라면 말이다. 아니, 향이 나는 제품을 아예 사용하지 않는 것은 어떨까? A사 향수 냄새, B사 샴푸 냄새, C사 섬유유연제 냄새 말고 모든 사람이 저마다 갖고 있는 ‘사람 냄새’가 나게 말이다.

/김정원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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