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전, 친구들과 새해 첫 일출을 보러 동해에 갔다. 전날 밤새 달린 덕분에 이른 새벽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미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해수욕장 일대에 주차해놓고 해가 뜨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도 부랴부랴 차를 대고 어두운 바닷가를 향해 걸었다.

인파를 비집고 자리를 잡았다. 하늘 끝이 붉어질수록 설렘과 흥분은 커졌다. 드디어 쇳물처럼 빛나는 붉은 해가 조금씩 바다 위로 올라왔다. 바로 그때, 내 눈에 신기한 광경이 들어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바위 곳곳에 앉아 있던 새들이 해가 뜨기 시작하자마자 일제히 바다 위를 날며 물고기를 낚아챘다. 맹렬하고 요란스럽고 멋진 장관이었다. 그렇게 몇 분이나 지났을까. 해가 완전히 솟아오르자 새들은 사냥을 멈추고 하나 둘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 일은 오랫동안 내 머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해가 완전히 떠오르면 물고기가 더 잘 보일 것 같은데, 굳이 어스름한 일출 빛에 사냥하다 이내 잠잠해진 이유가 뭔지 궁금했다. 최근 책을 읽다가 한 구절이 눈에 띄었다. 책 ‘바이오 클락’(러셀 포스터ㆍ레온 크라이츠먼 지음, 황금부엉이 펴냄)에 의하면, 밤 동안 컴컴한 바다에 적응해있던 물고기의 눈이 태양빛에 익숙해지려면 20분 정도 필요하단다.

그래서 일출에 대비한 눈을 가진 동물은 더 효과적으로 먹이를 잡아먹을 수 있다는 것. 이 내용을 위의 상황에 적용해보면, 일출 무렵 물고기는 빛과 어둠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며 포식자를 제대로 피하기 어렵다. 새들은 이 순간을 노려 사냥에 집중한다.

 
여기엔 한 가지 조건이 더 필요하다. 새들이 일출 시각을 미리 예측할 수 있어야한다는 것이다. 해가 뜨는 시각은 계절에 따라 날마다 조금씩 빨라지거나 늦어진다. 새에겐 이를 산출해낼 계산능력이 없다. 대신, 낮의 길이에 따라 몸의 리듬을 바꾸는 ‘생체시계’가 이 역할을 수행한다.

동식물부터 박테리아까지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의 몸속에는 하루를 주기로 한 생체시계가 있다. 생체시계에 따라 심장박동ㆍ혈압ㆍ체온ㆍ호르몬 생산 등, 많은 활동이 1일 주기 패턴으로 오르락내리락한다. 문제는 낮과 밤의 길이가 날마다 달라진다는 점이다. 생체시계가 일 년 내내 같은 시각에 수면과 기상 신호를 보낸다면 야생 동물은 포식자를 피하기도, 먹이를 제 때 구하기도 어려워 살아남기 힘들다.

다행히 생체시계는 일출과 일몰의 빛으로 낮과 밤의 길이를 자동으로 계산해낸다. 빛은 생체시계의 태엽과 같은 역할을 한다. 바닷새는 매일 조금씩 달라지는 생체시계의 기상 알람 덕분에 사냥 골든타임 20분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

인간의 생체시계는 뇌 안에 있고, 이를 시교차상핵이라 부른다. 생체시계는 유전자에 새겨진 것이어서 그 어떤 주위 환경의 변화에도 ‘1일 주기’를 끝내 포기하지 않는다. 비행기를 타고 먼 나라에 갔을 때 시차 때문에 고생하는 이유도 바로 1일 주기를 고수하는 생체시계 때문이다. 이때 빛을 이용하면 시차를 덜 겪을 수 있다.

비행기를 타고 서쪽으로 갈수록 해 뜨는 시간이 늦어진다. 한국 시각은 오전 9시인데 서쪽 나라는 그보다 이른 새벽이다. 하루가 길어져 초저녁부터 잠이 쏟아질 수 있다. 이럴 경우 일몰 무렵에 밖으로 나가 빛을 쬐는 것이 좋다. 오후의 빛은 다음날 조금 더 늦게 잠자리에 들게 하기 때문이다. 만일 8시간 이상 시차가 난다면 시간을 조금 앞당겨 한낮에 햇볕을 쬐면 도움이 된다.

반대로 동쪽으로 갈 경우 조금 복잡해진다. 인간의 생체시계는 24시간보다 조금 늦어지게 맞춰져있는데, 동쪽은 이를 거스르는 방향이라 훨씬 적응이 힘들다. 아직 잠이 오려면 멀었는데 벌써 바깥이 컴컴해져 뜬 눈으로 밤을 새우는 일이 생긴다. 수면시간을 좀 더 앞당기려면 아침에 햇빛을 받아야한다.

8시간 이상 시차가 난다면 사나흘 동안 오후 3시 이후의 빛을 쪼여 생체시계에 적응 기회를 줘야한다. 그 후 아침 햇빛을 찾아 나서면 된다. 이외의 시간에 외출해야 한다면? 이땐 모자와 선글라스를 착용해 눈으로 들오는 빛의 양을 최대한 줄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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