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주 시민기자의 영화읽기 - 원더 (Wonder)

스티븐 크보스키 감독|2017년 개봉

나는 40년 동안 아토피 환자였다.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발진ㆍ가려움ㆍ진물ㆍ허물벗기 등 아토피에 따라오는 증세는 정상적인 생활을 불가능하게 했다. 가려움 때문에 잠을 잘 수 없었고 몇 번씩 허물이 벗겨진 자리에서는 진물이 흘렀다. 허물 벗은 속살은 바깥 공기가 닿으면 쓰렸다. 허물을 벗고 벗다가 빨간 실핏줄이 터져 피가 흐르기도 했다.

그러나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따로 있었다. 유독 얼굴을 중심으로 발진이 일어난 탓에 내 병은 숨기고 싶어도 숨길 수 없었다. 붓고 일그러진 얼굴, 벌겋게 드러난 피부는 고스란히 노출됐다. 내 얼굴 때문에 놀란 티를 내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마저 다 티가 나는 타인의 시선이 어떤 질환보다 괴로웠다.

40년 아토피 경험으로 깨달았다. 아무리 씩씩하고 긍정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이라도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커다란 핸디캡일 수밖에 없다. 고작 아토피가 이럴진대 유전자 문제로 남들과 다르게 태어난 장애인은 어떻겠는가.

 
스티븐 크보스키 감독의 ‘원더’는 트레처콜린스 증후군(Treacher Collins Syndrom, TCS)을 가지고 평범하지 않게 태어나 성형수술 스물일곱 번을 거치고도 남들과는 다른 외모를 지닌 열 살 소년 어기(제이콥 트렘블레이)의 이야기다. 어기는 평소 우주인 헬멧을 써서 얼굴을 가린 채 외출한다.

남들 다 좋아하는 크리스마스보다 코스튬으로 얼굴을 가릴 수 있는 할로윈을 더 좋아한다. 어기가 상처 입을까봐 학교에 보내지 않고 홈스쿨링을 했던 어기의 엄마 이사벨(줄리아 로버츠)과 아빠 네이트(오언 윌슨)는 더 이상 집안에서만 자라게 할 수는 없어 학교에 보내기로 하고, 어기는 두렵지만 용기를 내어 학교라는 바깥세상을 향해 한 발 내딛는다.

얼굴을 가리던 헬멧을 벗고 친구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등교하는 어기를 보며, 몇 년째 발진이 없어 까맣게 잊고 있었던 아토피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 저럴 때 내 몸이 줄고 줄어 아예 사라져버렸으면 하고 바란 적도 있었지. 열 살 어기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학교에 들어서는 순간, 어기를 보자마자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동급생들. 어디에나 꼭 있는 얌체 스타일의 친구는 대놓고 스타워즈의 괴물 캐릭터 이름을 부르며 놀려대고, 친구들은 어기에게 다 들리게 수군수군 뒷담화를 한다. 과연 어기는 험난한 학교생활을 잘 해낼 수 있을까?

물론 영화니까, 장애를 ‘극복’하고 겉모습이 아닌 내면의 아름다움을 알게 된 친구들과 해피엔딩을 만들겠지. 딱 여기까지였다면, 눈물 줄줄 흐르는 ‘장애극복’의 휴먼감동스토리가 전부였다면, 나는 이 영화를 보지 않았을 것이고 남들에게 추천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원더’는 어기의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오로지 어기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영화는 부모의 관심이 남다른 동생 어기에게만 치우쳐 있던 탓에 너무 빨리 철이 들어버렸고 외로울 수밖에 없었던 누나 비아(이자벨라 비도빅), 장학금 때문에 어기에게 접근했지만 어느새 어기와 정말 친해지고 싶어진 친구 윌, 어기와 비아가 가진 특별하고도 화목한 가정에 동경을 느끼는 비아의 친구 미란다 등, 어기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를 어기의 이야기만큼이나 중요하게 보여준다.

제각기 다른 사연이지만 어기를 통해 각자의 이야기들은 촘촘하게 엮이고, 영화가 풀어내는 주제는 단순히 장애인이 비장애인 사회에 적응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각기 다른 처지와 환경의 존재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호의와 친절을 베풀며 자신만이 가진 아름다움을 빛내는 이야기로 확장된다.

‘원더(wonder)’는 장애를 ‘극복’하는 ‘놀라운’ 소년의 이야기가 아니다.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극복해야할 그 무엇이 아니다. 남들과 다르든 그렇지 않든, 특별하든 평범하든, 어기의 말대로 “누구나 인생에 한 번은 박수 받을 자격이 있는” 존재다. 나와 다른 존재에게 따뜻한 손을 내밀 수만 있다면, 우리는 모두 이미 존재 자체가 놀라운 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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