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주 시민기자의 영화읽기 - 패터슨(Paterson)

짐 자무쉬 감독|2017년 개봉

눈을 뜬다. 어젯밤 머리맡에 벗어둔 손목시계를 확인한다. 6시 15분. 옆에서 자고 있는 아내의 귓불에 입을 맞춘다. 아내는 잠이 덜 깬 목소리로 지난 밤 꾼 꿈을 읊조린다. 잠든 아내를 두고 먼저 일어나 씻는다. 씨리얼로 아침식사를 한다. 아내가 싸둔 샌드위치 도시락을 들고 출근한다. 늦은 오후까지 버스를 운전한다.

낡은 버스를 운전하느라 초긴장 상태지만 손님들의 대화를 엿들으며 빙긋이 웃음을 짓는다. 잠깐 쉬는 시간에는 노트를 꺼내 시를 끼적인다. 퇴근 후 아내와 저녁식사를 한다. 반려견을 데리고 산책을 나간다. 단골 바에 들러 맥주 한 잔을 마신다. 그렇게 하루가 끝난다.

미국 뉴저지주의 작은 도시 패터슨에 살고 있는 패터슨(아담 드라이버)씨의 하루다.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일상이다. 짐 자무쉬 감독의 ‘패터슨’은 보통사람 패터슨이 살아가는 일주일을 담은 영화다. 월요일 아침에 시작해 다음 주 월요일 아침에 영화는 끝난다.

패터슨의 일주일은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해 잠이 드는 지루한 반복이다. 알람 없는 아침 기상이 6시 10분인가 6시 30분인가, 아내가 싸준 도시락에 담긴 음식이 샌드위치인가 컵케이크인가, 버스 안에서 귀에 들어온 대화의 손님이 남자인가 여자인가, 바에서 맥주 마실 때 대화한 상대가 주인장인가 손님인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반복되는 일상에서 글감이 될 게 있을까 싶지만, 패터슨은 짬이 날 때마다 노트를 꺼내 시를 쓴다. 식탁 위에 무심코 놓여 있던 성냥, 매일 집안 곳곳을 뒤집어엎고 실험적인 음식을 만드는 아내 로라(골쉬프테 파라하니), 버스를 운전하며 마주친 풍경, 바에서 마주친 오래된 연인의 다툼…. 소소하고 시시콜콜한 패터슨의 일상은 시가 돼 비밀노트에 차곡차곡 쌓인다.

일상은 반복이고 반복은 지루한 것이라는 당연해 보이는 명제를 뒤집는 것은 패터슨이 매일 끼적이는 시다. 식탁 위에 놓인, 확성기 모양의 로고가 새겨진 성냥갑은 사랑의 시어가 된다. 급커브가 많은 도로에서 낡은 버스를 운전하며 보이는 풍경은 미세한 분자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이 돼 시로 다시 태어난다. 매일 마주치는 반복된 일상과 소소한 사건은 시로써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고유한 의미가 된다.

영화 ‘패터슨’은 패터슨시에 사는 패터슨씨, 즉 별 다를 것 하나 없는 평범한 사람의 일상이야말로 시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아니, 시란 원래 이런 것이라 말하는 것 같다. 시는 잔인한 운명의 굴레에 갇힌, 엄청난 비극을 겪은 특별한 사람이나 쓸 수 있고 써야 한다는 나의 편견은 이 영화 하나로 산산이 깨졌다. 시란 평범한 일상에서 길어 올리는 샘물 같은 것이구나. 반복되는 일상에서도 반짝반짝 빛나는 시어를 길어 올릴 수 있구나.

어찌 시뿐이랴. 패터슨의 아내 로라는 동네 벼룩시장에 내다 팔 컵케이크 하나에 온갖 정성을 들이고, 충동적으로 구매한 기타와 깔맞춤을 하기 위해 옷을 수선한다. 하루는 문짝을, 하루는 샤워커튼을 새로 칠하며 새로운 공간을 창조한다. 사소한 일상이 예술이 되는 순간이다.

물론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패터슨에게는 로라 같은, 로라에게는 패터슨 같은 반려자가 있기 때문이다. 로라는 패터슨이 쓴 시의 유일하고도 열광적인 팬이다. 혼자 읽기는 아깝다며 언젠가는 꼭 출판할 수 있을 거라고, 수줍음 많은 패터슨에게 용기를 준다. 패터슨은 로라의 즉흥적이고 천진난만한 시도에 단 한 번도 ‘노(No)’라고 하지 않는, 언제나 멋지다고 칭찬하는 든든한 조력자다. 사소한 일상이 예술이 되는 것은 시 나부랭이에, 대책 없는 도전에 응원을 보낼 수 있는 ‘곁’이 있을 때 가능하다.

패터슨이 쓴 시가 출판되지 않을 수도 있다. 로라의 기타가 오락용 장난감에 머물 수도 있다. 그러면 좀 어떤가. 아직 시를 쓸 빈 노트가 있고 다양한 색과 무늬를 채울 수 있는 삶이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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