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공간] 인천 남구 숭의평화시장 창작 공간

국내 최초 주상복합건물 시장

▲ 숭의평화시장 모습.<사진제공ㆍ문화바람>
인천 남구 숭의동에 위치한 숭의평화시장은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호황을 누렸다. 점차 시설이 낙후하고 상인들이 고령화하면서 활기를 잃었다. 이뿐 아니라 인천에 신도시가 들어서면서 경제활동 중심이 신도시로 이동했다. 숭의평화시장 상인들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2011년에 상인회를 조직했다.

변화를 위한 첫 걸음이었다. 2013년에는 인천시 주민참여예산위원회가 ‘숭의평화시장 창작공간 조성과 운영 사업’을 선정했다. 시비와 구비를 합쳐 예산 8억 4500만원을 편성했다. 이 돈으로 시장의 빈 점포 6개 동을 매입했고, 2015년엔 예술가들의 창작공간으로 리모델링했다.

문화운동의 새로운 바람, 문화바람

‘생활문화운동으로 다양한 시민과 연대해 평화롭고 민주적인 사회를 만들어간다’

‘시민문화공동체 문화바람(이하 문화바람)’의 사명선언문이다. 문화바람은 2005년에 창립했다. ‘인천의 낙후한 문화예술 환경을 개선한다. 일반 시민이 주체가 돼 문화예술을 향유하고 유통한다. 지역 문화예술 생태계의 토양을 이룬다. 문화수용자 공동체로서 그 역할에 앞장선다’ 문화바람이 창립한 이유였다.

숭의평화시장과 문화바람의 만남

▲ 김경원 문화바람 기획국장.
2016년 11월, 문화바람은 숭의평화시장에 입주했다. 어떤 이유였을까. 그 답을 듣기 위해 지난 13일, 숭의평화 창작공간 ‘문화로가게’에 갔다. 그곳에서 김경원 문화바람 기획실장을 만났다.

“작년 여름이었어요. 남구 문화예술과와 간담회를 했어요. 남구에서 추진하는 문화 사업에 대해 대화하기 위해서였죠. 그 과정에서 숭의평화시장을 봤어요. 그때 이곳에 들어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가장 큰 이유는 공간 사용료가 무료였기 때문이었어요. 저희는 시민들이 내주신 후원금으로 운영해요. 그러다 보니 형편이 여유롭지 못하거든요. 더군다나 건물 임차료까지 내야했고요. 그런데 임차료 없이 공간을 사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주저할 필요가 없었죠”

문화바람에는 활동가가 여럿 있다. 재정 상황이 좋지 않다보니 활동비도 충분히 줄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문화바람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임차료를 아끼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이유가 전부는 아니었다. 김 기획실장이 말을 이었다.

“또 하나 이유가 있었어요. 저희가 해보고 싶었던 게 있었거든요. 문화 동네를 만드는 것이었어요. 어느 한 동네에 오래 머물면서 그곳에 말 그대로 문화라는 바람을 불어넣고 싶었죠. 여력이 안 됐기에 희망만 하던 상황이었어요. 숭의평화시장은 이걸 실현하기 딱 적당한 곳이었어요”

문화동네 기획자 자처…먼저 마음열기부터

숭의평화시장은 3층 건물이다. 1층엔 상인들이 있고, 2~3층에는 주민들이 있다. 또, 남구가 마려한 공간에 들어와 창작활동을 하는 예술가도 있다. 이들이 문화바람이 들어오기 전에 함께 했던 일들이 있다. 외벽을 칠하고, 치맥파티를 하고, 플리마켓을 열었다. 그러나 한계도 명확했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발굴하고 계획하고 실행할 동력이 없었던 것이다. 문화바람은 이 상황을 정확히 파악했다.

“예술가들도 넉넉하지 않은 상황에서 예술을 하기 위해 이 창작공간에 들어오신 분들이었어요. 그 분들이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모든 힘을 마을활동을 준비하고 실행하는 일에 쏟을 수는 없었죠. 우리가 그 역할을 해보자고 결심했어요. 기획자 역할을 맡기로 한 거죠”

그렇게 문화바람은 숭의평화시장에 둥지를 틀었다. 그들은 주저하지 앉았다. 새로운 일을 기획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주민들이나 상인들과 소통하고 친해지는 게 시급했어요. 여기에 워낙 사람도 없지만 대부분 어르신들이거든요. 예쁨 받으려고 노력 좀 했어요. 저희가 무엇을 하든 함께 가야할 분들이니까요. 같이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었어요. 날씨는 추웠지만 야외공연을 열기도 했고요. 어르신들과 떡국도 나눠 먹고, 숭의평화시장을 담은 사진으로 엽서를 만들어 나눠드리기도 했어요. 그렇게 지내다 보니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어주시더라고요”

비밀의 숲에서 놀이와 모험을

▲ ‘숭의평화시장 대모험’ 활동 모습.<사진제공ㆍ문화바람>
문화체육관광부가 시행하는 문화 사업이 있다. 국민이 일상에서 문화를 쉽게 접할 수 있게 문화혜택을 제공하는 사업이다. 사업추진단 이름은 ‘문화가 있는 날’이다. 문화바람은 여기에 지역 특화프로그램 사업 신청서를 냈다. 사업명은 ‘숭의평화시장 대모험’이었다.

“숭의평화시장은 구조가 참 독특해요. 외관과 내부 중정이 전혀 다른 모습이죠. 허름한 건물 외벽을 보면 저 안에 다른 뭐가 있다고 상상하기 힘들어요. 그래서 대부분 그냥 지나치세요. 조금만 들어오면 또 다른 세상이 펼쳐있어요. 마치 비밀의 숲에 들어가는 느낌이에요. 인천에, 남구에 이런 곳이 있다는 걸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생각한 주제가 ‘놀이’와 ‘모험’이었다.

“숭의평화시장을 어른 아이 구분하지 않고 모두 놀 수 있는 곳, 일반 시민도 편하게 찾아올 수 있는 곳으로 소개하고 싶었어요. 여기에 더해 이곳만의 독특한 구조도 살리고 싶었죠”

‘문화가 있는 날’은 문화바람의 사업 신청서를 채택했다. 문화바람은 본격적으로 사업을 꾸려나갔다. 올해 4~6월은 마지막 주 수요일에, 9~10월은 마지막 주 토요일에 행사를 진행했다. 달마다 주제가 달랐다. 함께 꽃을 심고, 목공 체험을 하고, 악기를 배우고 춤도 배웠다. 콘서트를 열고 먹을거리 부스도 만들었다. 벼룩시장을 열어 물건을 나누기도 했다.

김경원 기획실장은 이 경험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준비하는 과정은 힘들었지만 즐거웠어요. 의미도 있었고요. 남녀노소 구분 없이 찾아와주셨거든요. 시간이 흐를수록 체계가 잡혀가는 것 같았어요. 다음엔 또 무엇을 해야 할지 아이디어도 계속 생각나더라고요. 다 일이었지만 할 수밖에 없었어요. 뿌듯했거든요”

숭의평화시장만의 매력 발산을 위해

▲ 문화바람은 숭의동 주민들을 위한 커뮤니티 공간 ‘즐거운 일 제작소’를 지난 7월 오픈했다.<사진제공ㆍ문화바람>
문화바람은 한국마사회 상생기부금 지원 공모 사업에도 선정됐다. 지원금으로 마을 외벽을 꾸미고 작은 공간을 마련해 ‘즐거운 일 제작소’를 열었다. 7월부터 10월까지 매주 수제쿠키 만들기, 천연비누 만들기 같은 강좌를 진행했다. 최근엔 예비 사회적기업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숨 가쁘게 1년을 보낸 문화바람, 김경원 기획실장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부탁했다.

“솔직히 말하면, 숭의평화시장은 시장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에요. 들어오실 때 보셨겠지만 상인들도 몇 없으시죠. 번영했던 옛 모습으로 돌아가기는 힘들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현실이 이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어요. 숭의평화시장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 분명 있거든요. 이 점을 더욱 부각하는 게 저희 역할이라 생각해요. 한 사람이라도 더 찾아올 수 있게 해야죠. 저희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에요. 여기 계신 상인과 주민, 예술가들 모두 함께 힘을 모을 거예요”

시간이 흐른다. 새 것은 낡은 것이 된다. 또 다른 새 것이 빈자리를 채운다. 새 것이라 해서 다 값진 것은 아니다. 낡은 것이라 해서 모두 버려야할 것도 아니다. 여기, 낡은 것의 가치를 지키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문화의 힘을 믿는다. 문화로 공동체를 지켜나간다. 숭의평화시장에 문화바람이 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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