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해문화’ 겨울호, 특집으로 ‘젠더 전쟁’ 다뤄

 
새얼문화재단(이사장 지용택)이 최근 발행한 계간 ‘황해문화’ 2017년 겨울호(통권 97호)가 특집으로 다룬 ‘젠더 전쟁’이 눈길을 끈다.

이 특집을 마련한 배경은, 2016년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을 계기로 터져 나온 여성혐오에 대한 많은 여성들의 분노와 조직적 대응, 이에 맞선 이른바 ‘일베(일간베스트)’를 비롯한 여성 혐오자들의 역공격과 강화된 혐오 표현들로 촉발한 젠더 사이의 격렬한 갈등이다.

특집에 실린 글들은 하나같이 여성혐오 문제가 일시적이거나 우발적인 것이 아니라 구조적인 것이며 또한 일정한 경제ㆍ사회ㆍ정치적 요인들이 누적된 역사적 성격을 띤 것이라고 분석한다.

여성차별을 인정하기보다 여성우대 강조

신경아 한림대학교 사회학과 부교수는 특집의 총론에 해당하는 ‘젠더 갈등의 사회학’에서 현재 벌어지는 젠더 전쟁의 상황과 그 사회적 요인들을 제시했다. 그는 “한국 사회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젠더 갈등은 길게는 지난 20년, 짧게는 지난 10년간 전개된 사회적 실천의 결과이며, 특히 정책 실패의 결과라는 점을 보여준다”고 했다. 그 핵심 이유를 ‘차별을 인정하기보다 우대를 강조하는’ 관점에서 찾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1987년 민주항쟁 이후 한국의 여성정책은 불평등과 차별의 시정을 위한 정책보다는 특정한 집단으로서 여성에 대한 시혜정책으로서 성격을 띠어왔고, 그 결과 생활 전반에 걸쳐 불평등과 차별을 해소하기보다는 예컨대 ‘내각 30% 여성 할당’ 목표치를 달성하는 데만 주력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여성 우대 정책’이 오히려 사회 구조와 일상적 삶에서 ‘여성 차별’을 방치하고 누적하는 결과를 낳게 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신경아 부교수는 “이는 비단 노동시장만이 아니라 사적 영역에서도 광범위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했다. 그는 성폭력에 관한 영화라고 할 수 있는 ‘건축학 개론’을 많은 남성들이 실패한 첫사랑에 관한 아름다운 이야기로 기억하는 이유,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을 여성혐오 사건이 아닌 정신질환자에 의한 우발적 범죄로 치안당국과 일부 언론이 해석하려는 이유는, 여성과 남성 사이의 불평등과 폭력, 차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한국 사회의 저변에 깔려 있는 움직임과 연결돼있다고 분석했다. 따라서 터져 나온 갈등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분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여성혐오 뿌리에 신자유주의적 사회재편 존재

김영미 연세대 사회학과 조교수는 ‘노동시장 피해자 경쟁과 여성혐오’라는 제목의 글에서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성혐오의 사회적 뿌리를 밝히려고 시도했다. 그는 서구사회나 우리사회 모두 여성혐오의 뿌리에는 신자유주의적 사회 재편이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그의 분석을 정리하면, 서구에선 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성장이 지속되던 ‘황금의 30년’이 지나고 신자유주의 시기가 도래한 이후 경쟁에서 탈락한 남성들이 생계를 부양해야하는 가장으로서 정체성 상실에 위기감을 느끼며 여성혐오 현상이 나타났다.

우리사회에서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가 확산되면서 하위 비숙련 노동자들이 노동시장 경쟁에서 가장 큰 타격을 받았으며, 2000년대에는 저학력 청년 남성들이 가장 직접적 위협을 받고 있다. 저학력 중ㆍ장년층 집단에서 남녀 임금 격차의 변화가 나타나지 않고 고학력층 전 연령 집단에서도 젠더 격차가 확고하게 유지되고 있는 데 비해, 유독 저학력 남성과 여성만 공히 프레카리아트(Precariat: 불안정한 고용ㆍ노동 상황에 있는 노동자 집단)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여성혐오 문제의 원인은 신자유주의 재편 이후 전개된 계급 편향적 노동개혁에 있으며, 이러한 구조적 원인이 잘 보이지 않아 그 직접적 피해 대상인 청년 남성과 여성 사이에 젠더 전쟁이 전개되고 있다.

이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에서 자본소득비율은 크게 증가한 데 반해 노동소득비율은 줄어들었고, 이처럼 줄어든 몫을 둘러싼 노동자들 내부에서 경쟁ㆍ배제ㆍ차별ㆍ반목 상태가 지속적으로 강화돼왔던 것에서 기인한다.

김영미 조교수는 현재 전개되는 젠더 전쟁의 사회적 뿌리에는 불평등이 존재한다며 그 해법을 두 가지 측면에서 모색해야한다고 제안했다.

첫째, 지난 20여년 간 줄어든 노동소득의 몫을 키우고, 특히 지금 악화돼있는 중하위 소득집단의 소득분배율을 높이는 것이다. 둘째, 생계부양자로서 지위를 위협받으면서 이로 인해 남성성의 위기를 경험하고 있는 남성들이 ‘젠더 과수행’에 대한 부담에서 벗어나 좀 더 평등한 젠더 관계를 정립하는 것이다.

디지털 성폭력과 남성 중심적 젠더 구조

이어서 김영희 연세대 젠더연구소장은 최근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디지털 폭력을 주제로 삼아 ‘시선의 폭력’이라는 문제를 살폈다.

그는 ‘몰래카메라 : 시선의 주체와 포획된 신체’라는 글에서 한동안 화제를 모은 국내 최대 불법음란물 유통 사이트 ‘소라넷’을 거론하며, “이 사이트가 2016년에 폐쇄됐는데, 그건 문제 해결이 아니라 변형에 불과하다”며, 그 이유는 소라넷이 폐쇄된 이후 여성의 신체를 몰래 촬영한 불법 음란물과 영상들은 훨씬 더 은밀하고 산재된 형태로 계속 유통되고 확대 재생산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서 “하지만 이러한 영상물들을 제대로 단속하거나 제재하기가 어려울뿐더러, 적발한다 하더라도 제대로 처벌하지 못하고 있다”며 “얼마 전 여성의 신체를 몰래 촬영하다가 적발된 현직 판사가 약식기소 처분을 받은 것은 특권 여부를 떠나 이 문제에 관한 법적 인식의 한계를 그대로 드러낸 사건이라고 할 만하다”고 덧붙였다.

김영희 소장은 “더 심각한 문제는 디지털 성폭력의 근저에 놓여 있는 남성 중심적 젠더 구조가 법원에서도 그대로 관철되고 있다는 점”이라며 “여성의 신체를 남성의 성적 욕망을 자극할 만한 부위와 그렇지 않은 부위로 분류하는 것 자체가 그렇거니와, 여성은 영상물에 대해 수치심을 느끼고 촬영자에 대해 격렬한 저항의 표시를 제시해야 비로소 피해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점 역시 지극히 남성 중심적 관점의 소산”이라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여성들은 일상생활에서 자신이 언제 어떻게 은밀한 촬영의 대상이 되고 있지 않을까, 늘 불안과 공포에 떨 수밖에 없다”며 “훔쳐보는 시선의 일부만을 범죄화하고 다른 시선은 정상적인 것으로 묵인하는 젠더 위계질서를 어떻게 해체할 것인가가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중요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여성혐오에 맞선 퓨리오사에 관심과 연대를

이선희 경계너머교육센터 대표는 많은 인기를 모았던 종합편성채널의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인기를 끌었던 여성 연예인의 별명 ‘퓨리오숙’에서 이야기의 실마리를 끌어냈다.

미국 영화 ‘매드맥스’에서 절대 권력의 독재자에 맞서 사람들을 해방의 땅으로 이끄는 여성 전사 퓨리오사의 이름을 본 따 퓨리오숙이라고 불리는 이 연예인은 마치 가부장 구조의 남성 가장을 여성 가모장으로 바꿔놓은 듯한 캐릭터로 인기를 끌었다. 아내의 호통에 남편이 쩔쩔 매고 순응하는 것을 보고 많은 여성 시청자들이 대리만족을 느낀 것이다.

하지만 이선희 대표는 “퓨리오숙은 가부장의 희화화된 전도물에 불과할 뿐이고, 가모장 퓨리오숙은 현실의 젠더 전쟁에서 여성 전사의 모습을 형상화하기에는 여러 모로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IMF 외환위기 이후 치열해진 생존 경쟁에서 밀려난 남성들이 인터넷에 진지를 구축한 것이 ‘일베’를 비롯한 여성혐오 사이트의 기원이었다고 진단했다. “이들은 딸기녀, 된장녀, 김치녀 등을 비롯한 각종 ‘○○녀’를 생산하고, 여성의 신체를 촬영한 불법영상물을 공유하면서 자신들의 경쟁자로 등장한 여성들을 제압하거나 통제하려고 시도해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여성혐오에 맞선 퓨리오사, 곧 ‘페미전사’들은 도처에 존재한다며, “불법영상물과 음란물은 근절될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그것을 방관하거나 묵인하는 사람들에 맞서 그것을 ‘디지털ㆍ사이버 성폭력’으로 정의하고, 그것을 근절하고 방지하기 위한 각종 대책을 마련하고 피해자 지원에 나선 많은 여성들이 바로 그들이다. 더 많은 퓨리오사가 나타날 수 있게 관심과 연대를 아끼지 않는 것이 많은 남성들의 과제다”라고 주장했다.

지금 누가 여성의 위치에 놓여있나

나영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집행위원장은 우리 사회에서 여성혐오가 전개돼온 과정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보여줬다.

강남역 여성 살해사건과 그로부터 1년 뒤에 일어난 여성 왁싱사 살해사건은 우리 사회의 여성혐오를 대표하는 사건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나영 집행위원장이 주목한 것은, 이 두 사건의 피해자를 추모하고 여성혐오 사건에 항의하기 위해 모인 여성들이 한 결 같이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고, 운동권이나 단체와 연대하는 걸 거부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여름, 86일간 본관 점거투쟁으로 박근혜 정권이 몰락하는 데 중요한 계기를 제공한 이화여대 학생들도 시위에서 하나같이 마스크를 착용함으로써 자신의 정체를 알리지 않으려 했다. 이를 두고 그는 “나중에 이른바 ‘일베’를 비롯한 남성 중심 온라인 사이트에서 ‘신상이 털려’ 각종 성희롱과 폭력에 시달리지 않기 위한 자구책이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것이 지난 20여년간 한국 사회에서 누적돼온 여성혐오와 이에 맞선 여성들의 투쟁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간주했다.

‘모순과 혐오를 넘어 페미니즘 정치를 향하여’라는 이 글에서 유심히 살펴봐야할 점은 한국의 페미니즘 운동이 처해 있는 갈등적이고 모순적인 상황 분석이다.

학생운동이나 사회운동을 바탕으로 구성된 페미니즘 운동과 온라인을 기반으로 조직된 ‘메갈리아’나 ‘워마드’ 같은 그룹들은 지향이나 연대방식 등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특히 워마드 등이 대표하는 생물학적 여성만을 페미니즘의 주체로 생각하는 입장과 성적 소수자들과 연대를 중시하는 입장 사이의 차이는 꽤 의미 있는 쟁점이다. ‘동성애’가 보수 집단의 주요 공격 대상이 되고 있는 데 반해, 문재인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해 상당히 유보적 태도를 보이는 현 시점에서 보면 더 그렇다.

나영 집행위원장은 “따라서 ‘진짜 여성이 누구인가’를 대신해 ‘지금 누가 여성의 위치에 놓여있는가’를 끊임없이 질문하라”고 강조한다.

우리사회의 해묵은 과제들

한편, ‘황해문화’ 이번호 ‘비평’에선 우리 사회의 해묵은 과제들을 만날 수 있다.

내부인의 시각에서 지난 10여년간 국민의 사랑과 신뢰를 받던 <MBC>가 어떻게 처참하게 무너지게 됐는지를 소상하게 밝힌 박성제 <MBC> 해직기자의 ‘MBC 몰락 10년사-만나면 좋은 친구는 어떻게 엠빙신이 되었나’, 상지대의 두 번째 민주화투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던 요인들을 열거하며 상지대 사태의 가장 큰 책임이 교육부에 있음을 낱낱이 밝힌 정대화 상지대 총장 직무대행의 ‘상지대 민주화투쟁의 교훈과 과제’를 볼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종교인 과세가 오랫동안 이뤄지지 못한 역사적 상황을 고찰한 것에서 시작해 종교인 과세가 왜 필요하며 정당한 일인지 상세하고 설득력 있게 논증한 이진오 새나무교회 담임목사의 ‘종교인 과세 :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가 실렸다. 

이밖에 김애령 이화여대 이화인문과학원 교수는 ‘인문한국(HK)이라는 실험’으로 2007년 시작해 올해 8월로 1기 사업이 마무리된 인문한국 사업의 의미와 한계를 다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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