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형 한국이주이권센터 상담팀장

▲ 박정형 한국이주이권센터 상담팀장
나에겐 소중하고 고마운, 스리랑카에서 온 친구가 있다. 그는 산업연수제로 한국에 온 지 1년도 안 돼 IMF시기를 맞았다. 일거리가 줄고 공장들이 문을 닫던 그 모진 시기를 그도 겪어냈다. 고용허가제가 시행되기 전 자진출국기간에 스리랑카로 돌아갔다가 고용허가제로 다시 왔다.

내가 그를 만난 건 2012년 7월에 시행된 성실근로자제도 때문이다. 이 제도는 이주노동자가 비자가 허락되는 4년 10개월간 한 사업장에서 일하면, 그 회사에서 다시 4년 10개월을 일할 수 있는 비자를 발급해주는 것이다. 그는 비자를 연장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는 ‘성실근로자’로 신청할 수 없다고 했다.

이 문제로 그는 우리 센터에 상담하러왔다. 알아보니, 고용허가제로 입국했을 때 계약된 회사에 문제가 생겼다. 회사는 그를 비롯한 이주노동자들을 현장에 배치하지 않고 숙소에 방치했고, 결국 계약을 취소했다.

영문도 모른 채 며칠을 기다린 이주노동자들은 새 사업장을 찾아 이동했다. 이게 사업주와 노동자 간 자율합의로 기록돼 사업장 변경 횟수에 산입됐다. 한 사업장에서 4년 10개월을 일하지 않은 셈이 된 것이다. 그는 나와 그 사업장을 찾아가 당시 상황을 확인해달라고 간곡히 부탁했고, 다행히 확인해줬다. 고용센터도 상황을 참작해 성실근로자로 한국에 올 수 있게 해줬다.

그런데 아뿔싸, 법무부에서 문제가 생겼다. 과거 산업연수제 시절 그의 미등록 경험이 문제가 된 것이다. 법무부는 이 친구가 애초 한국에 올 수 없었는데 전산착오로 고용허가제를 통해 한국에 온 것이라, 성실근로자로 비자를 발급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 친구는 특별 사면기간에 자진출국한 사람들의 명단이 적힌 스리랑카 신문을 보관하고 있었다. 그걸 법무부에 제출했고, 법무부는 비자 발급을 허락했다. 이렇게 이 친구는 4년 10개월을 더 일하게 됐고, 내년 1월에 스리랑카로 돌아간다. 이 친구가 한국에 남아 일할 수 있었던 건, 본인과 사업주의 의지, 이주노동자가 억울할 수 있는 점들을 들어주고 받아준 고용노동부와 법무부 공무원들 덕분이다.

그러나 그 후 5년이 가까운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제도를 잘 모르는 이주노동자들이 사업주의 귀책사유가 분명함에도 자율합의 퇴사로 기록돼 성실근로자제도를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법무부는 이미 출국한 이주노동자들에게 비자 문제가 생겼을 경우, 인권단체와 소통해 문제를 해결하려하지 않고 ‘개인정보’ 문제라며 변호사를 고용하라고 한다. 고국에서 벌이도 끊긴 채로 한국의 변호사를 찾고 고용할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법무부는 소수자의 목소리를 들을 귀를 좁히고 문턱을 높이고 있다.

고용허가제는 40세가 넘은 노동자에 비자를 발급하지 않는다. 새 정부는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의 단기순환원칙을 오히려 더욱 명확히 했다. 이제 한국에서 그 친구를 보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일요일마다 센터에 나와 통역을 도맡아준 고마운 친구, 부디 고국에서 행복하고 건강하게 사시라. 아울러 아직 한국에 남아있는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이 부디 더 안전할 수 있기를, 행복할 수 있기를, 우리 여기 있다고 외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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