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동희 극작가

▲ 고동희 극작가
겨우 며칠 남은 날들이 새해를 향해 내달린다. 그야말로 격동 속을 지나온 한해다. 1년여 전에 드러나기 시작한 국정농단은 대통령 탄핵이라는 부끄럽고 쓰디쓴 역사를 경험하게 했지만, 그 이후에도 하루가 다르게 드러나는 그들의 부정하고 추한 모습들은 아연실색조차 무덤덤해질 지경이다.

국정 전반에 걸쳐 쌓고 감춘 온갖 적폐 속에서 문화예술 분야 또한 음습하고 추악한 실상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문화융성이라는 허울을 내세우고 그 뒤에서 한 손으로는 기업들의 돈을, 다른 손으로는 문화예술계를 쥐락펴락 농락했다.

블랙리스트와 화이트리스트로 편을 가르고, 내 편이 아닌 사람과 단체를 무참히 능멸한 일이 허다하다. 영화와 방송, 문학과 미술, 음악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벌인 농단은 드러난 것만으로도 숨이 막힐 지경이다. 해당기관장을 통한 해악은 물론이고 국가정보기관을 동원한 작태는 불과 1년여 전에 우리가 살았던 대한민국이 맞나 싶을 정도로 상상 그 이상의 것들을 보여준다.

문화예술의 기본은 자유로운 창작이다. 문화와 예술을 하나의 틀로 묶어내려 한 발상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참으로 궁금하다. 겨우 몇 푼의 지원금을 무기 삼아 예술인들의 정신을 옭죄면서 다른 한편에서 끼리끼리 벌인 성대한 잔치판이었다니. 현명한 국민들의 준엄한 심판이 천만다행이다.

하지만 이미 드러난 것만으로 그 죄를 씻어낼 방도가 도무지 없을 듯한데, 불과 얼마나 지났다고 다시 또 뻣뻣하게 고개를 드는 그들의 후안무치를 무어라 해야 할까. 마땅히 그래왔고, 능히 그럴 수 있으며, 당연히 그래도 된다고 여겨왔을 그들의 무지를 무엇으로 벌해야 스스로 속죄할까.

소를 잃은 다음에 맨 먼저 해야 할 일은 외양간을 잘 고치는 일이다. 다시는 소를 잃지 않기 위해서다. 문화예술계 또한 특정 세력의 농단이 아니라, 현장의 창작자들이 주체가 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게 급선무다.

창작활동에 대한 규제를 과감히 풀어낼 것을 제안한다. 지원금 정산을 개선하겠다고 도입한 e-나라도움시스템이라는 규제가 대표적이다. 정산 때문에 사업을 포기하는 사례까지 나타날 정도로 현장과는 거리가 먼 행정편의용 규제다. 제안서와 보고서 등 서류에 의한 규제 때문에 문화예술계 현장에선 창작보다는 정산을 위한 더 많은 편법이 양산된다. 어떻게든 규제에 맞추기 위해 온갖 잔꾀를 짜내는 형국이다.

현장에서 거의 공통적으로 겪는 정산의 어려움 중에 자부담 항목이 있다. 알량한 지원금의 사용처는 물론이고, 단체나 개인에게 대략 30~10%의 자체 부담비용을 추가로 정산하라는 지침이다. 이미 일부 지자체나 기관에서는 자부담 항목을 폐지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지자체나 기관의 자부담 요구는 여전하다.

현실적으로 모든 창작활동 비용을 지원할 수는 없다. 아울러 창작의 성과를 어떻게 가늠할 것인가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서류상 정산만으로 지원금이 창작활동에 제대로 쓰였는지를 보기는 더더욱 어렵다. 새해에는 신명나는 창작활동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정책이 펼쳐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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