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전 이사를 한 뒤부터 불편한 증상이 생겼다. 손닿는 곳마다 ‘딱 딱’ 소리가 날 정도로 정전기가 심했다. 옷과 이불을 세탁할 때 섬유유연제를 넣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그건 이사 오기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어찌나 손끝이 따끔거리는지 문손잡이를 잡거나 컵을 만지기도 겁이 났다. 컴컴한 이불 속에선 불꽃 튀는 것도 보였다.

세 달 전부터 함께 사는 고양이는 더 심각했다. 고양이를 쓰다듬을 땐 물론이고, 그냥 가까이 얼굴만 내밀어도 고양이 코와 내 코 사이에서 찌릿 스파크가 튀었다. 손에 로션을 바르면 좀 나아진다기에 핸드크림을 발라보아도 그때 뿐. 사방으로 털이 삐쭉삐쭉 곤두선 채 방을 ‘우다다다’ 뛰어다니는 고양이를 보니, 얼마나 불편할지 안쓰러웠다. 집 어딘가에 정전기를 만드는 발전기라도 있는 건지, 최근 몇 년간 겪어보지 못한 심한 정전기 때문에 삶의 질이 뚝 떨어졌다.

뭐가 문제일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달라진 게 딱 하나 있었다. 화분이다. 이전 집 베란다는 해가 들지 않는 서쪽으로 나 있어서 화분들을 모두 안방에 놓았다. 이사를 한 집은 남향 베란다여서 하루 종일 화분들이 햇빛을 받을 수 있다. 선반까지 새로 구입해 화분들을 나란히 앉히곤 흐뭇해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화분을 모두 실내로 옮겼다. 효과는 즉각 나타났다. 그날부터 정전기가 확 줄었다. 식물들이 숨 쉬면서 내뱉는 수분이 이렇게까지 영향을 주는지 몰랐다.

공기 중에 물 알갱이가 많이 떠다닐 때 정전기가 줄어드는 이유는 물이 ‘극성’을 띠기 때문이다. 물 분자 한 개엔 수소원자 두 개와 산소원자 한 개가 단단히 결합해있다. 그런데 방식이 특이하다. ‘수소-산소-수소’ 이렇게 일직선으로 늘어서도 될 것을 산소를 중심으로 수소 두 개가 브이(V)자 각을 이루며 붙어 있다.

수소원자는 양성(+)을, 산소원자는 음성(-)을 띤다. 이렇게 분자 하나에 +, -가 골고루 섞이지 않고 양쪽으로 나뉘어 있을 때, 그 분자는 극성을 갖게 된다. 물 분자 하나하나가 마치 작은 자석처럼 다른 극성을 끌어당길 수 있다.

정전기는 원자의 구성 성분 중 하나인 전자 때문에 발생한다. 서로 다른 두 물질이 마찰하면 열에너지가 생긴다. 열에너지는 물체 표면에 있는 전자를 떼어낼 수 있고, 이때 나온 전자를 다른 물체가 받아들인다. 손으로 머리카락을 쓰다듬거나 옷을 입을 때도 마찬가지다. 둘 사이엔 반드시 전자가 오간다.

전자는 -를 띠기 때문에 전자를 얻은 물질은 -를, 떼어낸 물질은 +극성을 띠게 된다. 전기적으로 중성이었던 물질이 극성을 띠게 되면 마찬가지로 극성을 띠고 있는 공기 중의 물 분자가 달라붙어 이를 중화시킨다.

그런데 공기 중에 수증기가 없으면 전자가 중화되지 못하고 계속 쌓인다. 탈출만을 기다리다가 어떤 물체가 가까이 오면 ‘딱, 찌릿’ 같은 다양한 소리를 내면서 전자들이 한꺼번에 세게 튀어나간다. 이때 번개처럼 순간 ‘번쩍’하는 빛에너지도 발생한다. 사실 정전기와 번개의 원리는 같다. +와 -극의 차이(전압)가 커져 다른 쪽으로 탈출하는 것은 같지만, 정전기의 경우 이동하는 전자의 양(전류)이 많지 않아 순간 불꽃이 튀는 것으로 그치고 만다.

요즘 같은 겨울철, 우리나라엔 시베리아 쪽에서 찬 공기가 내려온다. 이 공기엔 수분이 많지 않다. 시베리아에 바다가 없기 때문이다. 여름철에 부는 바람은 해양에서 만들어져 공기에 수분이 가득하지만, 대륙에서 부는 바람은 건조하기 짝이 없다. 겨울에 정전기가 기승을 부리는 이유다.

식물을 기르기 어렵다면 가습기를 사용할 수도 있을 테고, 숯을 수반에 올려놓는 것도 좋을 것이다. 정전기의 상극은 습기, 이것만 기억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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