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전화하라고 했잖아”

▲ ⓒ심혜진.
언니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언니는 나보다 다섯 살 많은 입사동기로 서로 마음이 잘 맞아 친하게 지냈다. 무슨 일인지, 대뜸 내게 바다가재를 사주겠다고 했다.

14년 전 당시엔 랍스타(로브스터로 읽음) 음식점이 한창 유행이었다. 바다가재 요리를 한 번도 먹어보지 않아 이유도 묻지 않고 따라나선 터였다.

새빨간 바다가재 한 마리가 커다란 접시에 통째로 나왔다. 직원이 우리 눈앞에서 가위와 집게로 살을 발라 앞 접시에 덜어줬다. 큼직한 살덩이를 입안에 넣으니 짭쪼름하고 달큰한 바다가재 향이 입안에 확 퍼졌다. 식감도 ‘탱글’하면서 어찌나 부드러운지! ‘이렇게 맛있는 걸 그동안 남들만 먹었단 말이지’ 너무 맛있어서 약이 오를 지경이었다.

내가 바다가재에 몰두해있는 동안 앞에 앉은 언니는 아까부터 그 남자 얘길 하고 있었다. 언니가 한 달 전 소개팅에서 만난 연하남이다. 언니는 그와 있었던 일을 시시콜콜 내게 전하며 상담을 청했다. 나도 연애경험이 그리 많지 않아 상담자로 적절하진 않았지만 언니의 연애담을 듣는 것이 설레고 재미있어 열심히 맞장구를 쳤다.

얼마 전 언니가 그와 다퉜다. 그와 통화하다가 화가 난 언니가 “다신 연락하지 마”라고 말한 뒤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언니는 바로 그 순간부터 그에게 전화가 오길 기다렸다. 3일 째 되던 날, 언니는 “답답해서 못 참겠다”며 연락해보겠다고 했다. 나는 극구 말렸다. “기 싸움에서 지면 안 돼. 절대로 먼저 전화하지 마. 알았지?” 언니는 힘없이 “응…”이라고 대답했다.

그렇게 다짐한지 고작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언니는, 내가 그 남자에게 연락하라고 했다는 이야길 하고 있다. 그럴 리가 없었다.

“자다가 전화를 받아서 기억을 못하나 보다. 어제 전화했을 때 네가 그렇게 말했어. 아무튼 화해했고 주말에 만나기로 했어. 네 말을 듣길 잘했어. 고마워” 나는 핸드폰을 열어 통화기록을 확인했다. 분명히 언니와 통화한 기록이 있었다. 잠결에 전화를 받고 기억을 못하다니, 처음 있는 일이다. 이상하긴 하지만 어쨌든 잘 됐다니 다행이다.

그날 집에 돌아왔을 때, 엄마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 엄마는 친구들과 여행계를 붓고 있었다. 그런데 계주가 연락을 피하는 듯, 소식이 뜸하다고 했다. 자꾸 전화하면 의심하는 것으로 생각할까봐 연락도 못하고 속만 끙끙 앓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 아침, 출근 준비하는 내게 엄마가 “같이 계하는 친구에게 어젯밤 전화가 왔는데, 계주한테 전화를 해보겠다고 하더라”며 좋아했다. 그런데 지금 엄마 표정이 너무 안 좋다. “왜요, 계주 잠수탔대요?”

“아니 그게, 나도 궁금해서 물어봤지. 근데 글쎄, 자긴 전화하겠다고 말한 적이 없다는 거야. 나한테 전화를 안 했대. 분명히 어제 잘 때 전화가 와서 통화했거든. 정말 이상해”

퍼뜩 어젯밤 일이 생각났다. 안방에서 텔레비전을 보다가 엄마가 잠이 든 걸 보고 난 씻으러 화장실에 갔다. 그때 핸드폰을 엄마 옆에 두고 나왔다. 그러니까, 엄마는 내가 씻는 사이 언니에게 걸려온 전화를 잠결에 받았고, 둘이 통화한 거였다. 웃다가 눈물이 난 건 오랜만이었다.

회사 언니는 정확히 여섯 달 후 그 연하남과 결혼했다. 속도위반이었다. 엄마의 곗돈 역시 무사했다. 인생은 알 수 없다. 어쨌든 바다가재는 엄마가 먹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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