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래마을에 산다. 내가 사는 아파트단지 이름이 ‘소래마을 OO아파트’다. 남동구 논현동 소래포구 근처에 있어서, 인근 논현택지가 조성되기 훨씬 전부터 들어선 오래된 단지라 그렇게 이름이 붙었을 것 같다.

나는 ‘소래마을’이라는 이름이 좋다. 오래 전부터 소래가 좋았고, 그 소래에서 한 마을 사람들처럼 이웃들과 오순도순 살고 싶었다. 그러나 요새 우리 동네는 정겨운 마을이 아니다. 소래포구 임시어시장을 둘러싸고 상인들과 인근 주민들 사이에 생겨난 갈등의 골이 깊어만 가고 있어서다.

지난 3월 소래포구 화재사건으로 생계터전을 잃은 상인들이 10월부터 어시장 인근 해오름 공원에 임시어시장을 설치해 영업을 재개했다. 공원을 무단 점유했으니 불법이지만 살길이 막막해진 상인들에게 다른 길이 없었을 것이다. 화재 당시 대선주자들과 인천시장이 앞 다퉈 현장을 찾아 ‘빠른 피해복구’를 약속했다.

하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소래포구가 국가어항으로 지정돼 내년에 현대적 시설이 건설될 예정이라 해도, 그 때까지 먹고살 대책은 없었다. 5월 꽃게 철 대목을 그냥 넘겨버린 이들을 나라가 살펴주지 않는 사이 살아갈 방도를 스스로 찾아 나선 셈이다.

이런 사정을 모르지 않는 남동구도 뾰쪽한 해결책이 없어 머뭇거리는 사이에 인근 한화에코메트로단지 주민들이 ‘불법 어시장 철거하라’며 집단행동에 나섰다. 임시어시장의 악취와 소음, 취객 소란 등으로 쾌적한 주거환경이 망가지는 것을 참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조용하고 살기 좋던 내 집 앞에 냄새나고 위험해 보이는 불법 어시장이 갑자기 생겼고, 불법을 막아야할 행정관청은 팔짱끼고 구경만 하고 있으니, 반대하는 이들의 심정도 이해가 간다. 다만 주장하고 행동하는 데도 금도가 있을 텐데, 그 경계를 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임시어시장에 몽골천막이 설치된 후 맞은 편 아파트단지 곳곳에 어시장을 반대하는 현수막 수 십 개가 걸려있는 걸 봤다. ‘어시장 설치 결사반대’ ‘불법적인 어시장 설치, 투쟁으로 박살내자’ 반대를 위해 목숨을 걸만큼 어시장이 끔찍한 존재란 말인가? 박살낸다는 말은 부수어 가루를 내겠다는 뜻이다.

도저히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는 철천지원수에게나 쓰는 표현이다. 품격이 없는 말은 영혼을 망가뜨린다. 현수막에 명의가 빠져있었던 걸 보면 그 거친 문장을 내건 이들도 켕기는 마음이 있긴 했나보다. 얼마 후 현수막은 철거됐지만 반대 주민들의 ‘결사’투쟁은 계속됐다. 인터넷과 SNS로 임시어시장 불매운동, 불법행위 신고운동을 하던 것도 모자라 상인 대표를 검찰에 고발하기까지 했다.

어시장 반대 주민들은, 건설사인 한화가 해오름공원을 조성해 기부 체납한 것인 만큼 내가 지불한 분양가에 공원 조성비도 포함돼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재산권이 침해당했다는 느낌일까. 그러나 재산권보다 생존권을 더 앞에 세워야하지 않나. 적어도 갈등 상황에 놓여있는 우리가, 내가 살기 위해 널 죽여야 하는 원수지간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야할 이웃이라면 말이다.

오래된 우리 아파트에는 소래 선주민들이 꽤 많이 살고 있다. 수 십 년 전부터 이 지역에 발붙여 살며 배를 타고 땅을 갈던 이들의 자식 세대들이 산다. 집부터 장화를 신고 포구까지 걸어서 출근하는 이웃들을 아침마다 마주친다. 장화 신은 발길이 다다를 일터가 임시어시장인 이들도 더러 있을 것이다.

그 얼굴들을 대하며 생각한다. 이웃으로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그들을 위해 내가 겪을 불편함을 때때로 감수하겠다는 마음가짐임을. 그런 마음들이 많아질 때에야 비로소 우리 동네가 공동체성이 살아 숨쉬는 ‘소래마을’ 이름에 값하게 될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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