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산음료나 맥주를 마실 때 코끝을 찡하게 만드는 물질은 음료 안에 녹아 있는 이산화탄소다. 지금은 상식이 됐지만 불과 250년 전만 해도 이산화탄소나 산소처럼, 우리를 죽이고 살리는 여러 기체에 대해 과학자들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 탄산수가 만들어진 과정에는 기체의 실체에 서서히 접근해가는 근대 과학의 역사가 담겨 있다.

1640년대 벨기에의 반 헬몬트는 더러운 옷과 악취 나는 밀에서 쥐가 만들어진다는 자연발생설을 굳게 믿는, 당대의 평범한 연금술사였다. 어느 날 밀폐된 용기 안에서 숯을 태우면 이전보다 훨씬 가벼워진다는 것을 발견하고 왜 그럴까 의문을 가졌다. 그는 숯이 불에 타는 동안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물질로 변했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gas(가스)’라고 이름 지었다. 혼돈을 뜻하는 그리스어 ‘chaos’에서 따온 것이다. gas는 볼 수 없는 물질에 대한 신비와 두려움이 투영된 단어다.

 
100년 후 스코틀랜드 의사 조셉 블랙은 분필을 가열하거나 분필에 산을 떨어트렸을 때 가스가 생긴다는 것을 발견했다. 분필의 탄산칼슘 성분이 산화하면서 이산화탄소가 발생한 것을 두고, 분필 안에 고정돼있는 기체라는 뜻의 ‘고정 공기(fixed air)’라는 말을 처음 만들어 사용했다. 더불어 이 고정 공기가 동물의 호흡과 발효의 결과로 만들어지는 물질이며, 이것이 촛불을 끄고 쥐를 죽일 수 있다는 것도 알아냈다. 이 공기는 이산화탄소였다.

조셉 블랙의 이론을 확장한 것은 영국의 조셉 프레스틀리였다. 그는 신학자이면서 급진적 정치가이자 뛰어난 과학자였다. 1767년 프레스틀리가 이사 간 집 근처에 맥주를 만드는 양조장이 있었다. 맥주가 발효될 때 나오는 가스인 이산화탄소를 무한정 이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는 맥주 발효액의 위쪽 30cm 정도 높이까지 고정 공기층(이산화탄소)이 만들어지는 걸 발견하고 여러 가지 실험을 했다.

그러던 중 맥주통 위에 물그릇을 올려 두고 고정 공기를 물에 녹였더니 톡 쏘는 상쾌한 맛이 났다. 그는 아예 높은 압력으로 물에 이산화탄소를 녹여 탄산수를 만드는 장치를 고안했다. 이 내용을 ‘고정 공기가 용해된 물’이라는 논문으로 펴내기도 했다. 이를 잘 이용했다면 엄청난 돈을 벌 수 있었겠지만, 그는 논문에 쓴 대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발견’을 한 것으로 만족했다.

그 대신 1780년 보석상 일을 하던 요한 제콥 슈웹이 프레스틀리의 책을 보고 눈이 번쩍 뜨였다. 대항해시대를 맞이한 유럽에선 장기간 항해하면서 얻게 된 괴혈병 같은 질병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당시 사람들은 탄산수를 괴혈병에 좋은 약으로 생각해 귀하게 여겼다. 슈웹은 프레스틀리의 논문에 나온 대로 펌프와 가스발생기로 많은 양의 탄산수를 생산하는 기술을 습득하고 3년 후 스위스 제네바에 슈웹스컴퍼니를 설립했다. 이것이 오늘날까지 전 세계에서 판매되는 음료브랜드 ‘슈웹스(Schweppes)’의 시작이다.

최근 3~4년 사이 우리나라에서도 탄산수가 인기다. 물에 오직 탄산만 들어가 있는 제품도 있고 레몬이나 라임 향을 살짝 첨가하기도 한다. 설탕이나 과당이 들어가지 않아 건강에 대한 부담은 덜고 청량감은 그대로 유지해, 기존 탄산음료에 거부감을 느끼던 소비층을 잡는 데 성공한 듯하다.

하지만 탄산수가 건강에 이롭다는 말엔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미네랄이 풍부하고 변비ㆍ소화불량 해소, 피부 관리에 이롭다는, 광고인지 기사인지 모를 글을 포털 사이트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탄산수는 말 그대로 물에 이산화탄소를 넣은 것이다. 영양과는 아무 관련이 없고 오히려 위장을 자극해 소화에 장애를 준다. 설사 미네랄이 들었다고 해도 탄산수를 만든 물의 성분에서 온 것이니 생수보다 더 나을 이유가 없다. 적은 양이라도 채소나 과일 한 조각을 먹는 편이 어느 쪽에라도 훨씬 이로울 것이다.

18세기 괴혈병 치료제로 주목받던 것이 종목만 바뀌어 여전히 소비자를 우롱하는 듯하다. 먼 훗날 ‘탄산수 효능’을 시대별로 정리하면, 그 시대 사람들이 주로 겪는 질병과 관심사 등 사회상을 알 수 있지 않을까? 우리, 먹더라도 알고 먹자.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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