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희 인천여성회 회장

 
중ㆍ고등학교 시절 나에게 도서관은 시험공부를 하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주말에 찾아가는 곳이었다. 내가 살았던 작은 도시에 도서관은 단 하나였다. 그때는 도서관의 의미를 잘 몰랐다.

내 아이가 어렸을 때 동네에서 ‘그림책 읽는 엄마 모임’을 하면서 그림책을 매개로 엄마로서, 아내로서 이야기들을 주고받았다. 그때 처음 함께 읽었던 책이 ‘괴물들이 사는 나라’였다. 그림책에 눈을 떴고, 그림책은 아이들만을 위한 책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아이가 이제 청소년이 됐지만, 그때 읽었던 그림책 50여권은 여전히 거실 책꽂이에 있다. 얼마 전에도 그림책을 샀다. ‘여자와 남자는 같아요’ 시리즈와 ‘꽁치의 옷장엔 치마만 백벌’이라는 책이다.

그림책에 관심을 가진 건 주변에 있는 어린이도서관 활동가들 덕분이다. 사설 작은 도서관들은 시작부터 지금까지 주민 후원과 자원 활동으로 유지되고 있다. 달라지지 않은 곳도 있지만, 변화를 꾀한 곳도 있다.

부평구 삼산동에 있는 ‘신나는 도서관’이 최근 ‘신나는 여성주의 도서관 랄라’로 재개관했다. 주변에 공공도서관이 생기면서 ‘우리 도서관의 역할을 무엇일까’를 고민한 끝에, 인천에 없는 여성주의 특화 도서관으로 하자고 결정했다.

서울에 있는 페미니즘 북카페와 성평등 도서관을 탐방하고, 공간을 리모델링하고 책을 정리하는 등, 참 많은 손길이 모여 재개관을 준비했다. 재개관식을 앞두고는 밤늦게까지 생강청을 만들고, 도서관에서 하는 것도 모자라 집에서까지 친환경 비누를 만들었다. 보라색 리본으로 브로셔를 꾸며 방문한 사람들에게 ‘우리 안의 가능성을 펼칠 시간’을 선물했다.

여성주의 도서관이니 만큼 무엇보다 많이 준비한 것은 여성주의 도서다. 최근 발간된 페미니즘 도서를 접할 수 있다. 여성주의 도서 코너에 있는 책들은 수많은 나‘들’의 이야기이다.

‘랄라’에선 다른 나‘들’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말을 걸어주고, 우리의 이야기를 또 엮어줄 것이다. 다른 시대 같은 삶을 살고 있는 여성들을 이어줄 것이고, 같은 시대 다른 삶을 살고 있는 여성들을 연결해줄 것이다.

인천에 젊은 페미니스트 그룹이 있다면, ‘랄라’가 그들의 놀이터가 됐으면 좋겠다. 동네에 살고 있는 여성들, 엄마들이 맘껏 페미니즘과 여성으로서 삶을 떠들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 페미니즘이 모든 이를 위한 것임을 느낄 수 있는 남성들의 공부터가 됐으면 좋겠다. 혼자 읽었던 책 내용을 함께 토론하고 깊게 공부하고 싶은 페미니스트가 되고자하는 사람들의 배움터가 됐으면 좋겠다.

서울에는 성평등 도서관 ‘여기’가 있다. 서울시와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이 시민과 함께 만드는 성평등정책 전문 도서관이다. 서울시와 자치구 25개, 유관기관의 정책자료를 비롯해 여성단체의 현장기록과 페미니즘 도서를 모아놓았다. 인천에도 이런 공간이 생기기를 바란다.

이런 공간이 작은 도서관들과 연계해 자료를 공유하고, 기획전시와 여성영화 상영회 등을 한다면 인천이 성평등 도시로 변화해가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인천에서 여성주의 도서관의 시작을 여성들 스스로 했다면, 지속가능과 확장 방안 모색과 실행은 행정이 관심을 가지고 함께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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