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자숙 시민기자의 ‘부모와 함께 읽는 그림책’ 이야기 <17> 우리들만의 작은집

하이드룬 페트리데스 | 크레용하우스

청소를 마치고 집에 가려던 아이 둘이 말다툼을 시작했다. 그러다 말겠지 싶어 모르는 척 했는데, 살살 툭탁거리던 목소리는 분노로 가득 찬 목소리로 바뀌었고 눈알은 빨개지고 눈물이 글썽 글썽했다. 그리고 불편한 침묵이 두 아이를 감쌌다. 사실 난 애들 싸우는 게 보기 싫어서, 또는 주먹다툼으로 번질까봐 걱정해서, 또는 본질을 벗어난 인신공격으로 상처받을까봐, 또는 교사로서 책무와 근거 없는 자신감이 발동해서 등, 수많은 이유로 아이들 다툼에 끼어들었다. ‘언제쯤 끼어들까’는 고민해봤지만 ‘끼어들까 말까’를 고민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날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냥 나뒀다. 아마도 두 아이의 관계와 역사를 알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래 한 번쯤은 저렇게 하고 싶은 말 다 쏟아내야지, 하면서도 마음 한쪽에는 초초함과 불안감이 밀려왔다.

‘아이쿠. 저러다 둘이 영영 등 돌리면 어쩌나’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도 마치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컴퓨터를 쳐다보며 흘긋 흘긋 아이들 상황을 살펴봤다. 어색한 침묵을 깨고 ○ ○이가 말했다. “내가 왜 이렇게 힘든지 너 모르겠어. 내가 오죽하면 이런 말까지 하겠냐” □□이가 한참 뜸들이다 말했다. “네가 그렇게 힘든지 몰랐어. 미안해” 그러더니 둘이 피식 웃었다. 그리고 가방을 주섬주섬 챙겨들더니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 명랑하게 인사하고 손 붙잡고 교실을 나갔다.

 
그날 깨달았다. 아이들에게 기승전결을 허락해야 하는구나. 그날 끼어들지 않기를 잘했다고 생각할 때마다 떠오르는 그림책이 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아이들은 헤쳐 나가고 어른들은 지켜봐주는 그래서 기승전결을 오롯이 아이들 힘으로 경험하는 이야기. 바로 ‘우리들만의 작은집’이다.

키다리 한스는 다락방에 산다. 그래서 창밖을 보면 지붕들만 보인다. 한스는 자동차랑 길에서 노는 아이들이 보고 싶다. 특히 비오는 날 지붕에서 빗물이 떨어지면 아래층에 살고 싶은 생각은 더 간절해진다. 작다리 피터는 지하방에 산다. 그래서 창밖을 보면 사람들 신발만 보인다. 피터는 파란 하늘이랑 하얀 구름을 보고 싶다. 비오는 날 창문으로 빗물이 튀어 들어오면 위층에서 살고 싶은 생각은 더 간절해진다. 한스와 피터는 뒷마당에 앉아 어른이 되면 살고 싶은 집을 상상하면서 즐거워한다.

그런데 어느 날 산책하다가 빈터에 있는 낡은 집을 본다. 버려진 집 안은 엉망이었지만 창밖을 보니 나무와 냇물이 보이고 멀리 숲이 보인다. 두 아이는 이 집에서 살고 싶다. 그래서 모험을 시작한다. 2주 만에 집주인을 힘겹게 찾아가 “집을 멋지게 꾸며서 우리 놀이터로 만들고 싶어요. 친구들도 초대하고요. 그러면 지저분한 뒷마당에서 놀지 않아도 되거든요”라고 말하며 집을 빌려달라고 설득한다.

집주인은 집을 단장하면 꼭 초대해달라며 아이들 부탁에 응한다. 아이들은 구석구석 청소하고 이웃집 화가 아저씨를 찾아간다. “방금 우리만의 놀이터를 얻었는데 너무 낡고 더러워서요. 예쁘게 페인트칠을 하고 싶어요” 아저씨는 일을 거들어주는 대가로 페인트를 나눠준다. 다음날 열심히 칠했으나 뜻대로 예뻐지지 않았고 페인트가 마르면 예뻐질까 싶어 난로에 불을 피웠으나 고장 난 난로에선 숯 검댕이 연기가 나와 집안은 온통 숯검정이 되고 말았다. 실망한 한스는 눈물을 흘렸고, 피터는 화가 아저씨를 찾아가 ‘난로는 고장 났고 페인트칠은 예쁘게 되질 않는다’며 도움이 필요하다고 울먹였다.

아저씨는 굴뚝청소부 아저씨를 소개해주고 피터에게 페인트칠하는 법을 알려줬다. 그렇게 고장 난 난로를 고치고 다음날 두 아이는 화가 아저씨가 가르쳐준 대로 오래된 신문지를 모아 벽에 바르고 그 위에 페인트칠을 했다. 다음날은 헌 가구를 모았다. 큰 나무상자로는 탁자를 만들고 사과상자로는 기다란 의자를 만들고, 신문을 접어 예쁘게 오려서 창문에 커튼을 달고 헌옷을 잘라 길게 따서 양탄자도 만들었다. 한스와 피터는 마지막으로 마당을 깨끗이 치우고 붉은 벽돌 길을 만들었다. 그리고 집주인 아저씨, 화가 아저씨, 굴뚝청소부 아저씨에게 초대 편지를 보냈다.

드디어 기다리던 일요일. 한스와 피터는 엄마 아빠에게 산책하러 가자고 데리고 나와 그동안 숨겨온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주고 우리만의 작은집을 보여줬다. 부모님은 아름다운 집에 눈이 휘둥그레졌고 함께 기뻐했다. 화가 아저씨는 한스와 피터에게 너무 늦기 전에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뻐꾸기시계를 선물했다. 집주인 아저씨는 나중에 크면 자기 회사에 와서 일을 배워 꿈꾸는 멋진 집을 지으라고 아이들을 격려했다.

이 책에 나온 어른들은 한 결 같이 아이들에게 ‘된다, 안 된다’를 말하지 않는다. 다만 왜 하고 싶은지 묻고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해 아이들이 원하는 만큼, 부탁하는 만큼 도울 뿐이다. 아이 둘이서 집을 꾸미는 과정이 어쩌면 어른들 눈에는 답답해 보인다. 뻔히 예상되는 실수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곳 어른들은 끼어들지 않는다. 그 덕에 아이들은 실수하고 좌절하고 다시 일어나서 도움을 요청하고 그러면서 더디지만 하나하나 자기 손으로 만들어간다.

기승전결을 온전히 경험한 아이는 예전의 아이가 아니다. 한 뼘 훌쩍 큰 아이가 된다. 그 시간이 쌓이고 쌓여 어른이 돼간다.

그러나 우리 어른은 두렵다. 아이가 좌절하는 모습을 보는 게 두렵고, 실수하며 헤매는 모습을 보는 게 답답하고, 언제 결론이 날지 모르는 시간싸움에서 초조하다. 그래서 끼어든다. 그래서 아이들은 시작은 있으나 스스로 끝을 내본 적이 없는 삶을 살아간다. 아이가 좌절하고 힘들어할 때 기댈 수 있는 어깨가 돼주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줄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할 텐데, 그건 왜 그리 어려운 일인지. 그래서 또 깊게 호흡하며 지켜본다. 그리고 또 고민한다. ‘끼어들까 말까’ 늘 어렵다.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월 1회 ‘부모와 함께 읽는 그림책 이야기’를 연재 중인 구자숙 시민기자는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인천지부 수석부지부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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