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석 인천민속학회 이사

 
올해는 죽산 조봉암이 서거한 지 58주기가 되는 해다. 지난 7월, 망우리 묘역에서 열린 추모식에 각계인사들이 참석한 것은 물론, 대통령의 조화가 처음 영정 앞에 놓였다. 58년이 지난 후에야 ‘조봉암’이란 이름이 좌우 이념을 넘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중이다.

조봉암은 2011년 재심으로 복권됐다. 서대문형무소에서 생을 마감하게 한 조봉암의 죄명 중 하나가 간첩죄다. 대법원은 재심 판결문에서 ‘공소사실 대부분이 무죄로 밝혀졌으므로 이제 뒤늦게나마 재심판결로써 그 잘못을 바로잡고’라면서, 국가변란과 간첩 행위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또한 조봉암을 평하기를, ‘일제강점기에서 독립운동가로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투쟁했고, 광복 이후 조선공산당을 탈당하고 대한민국 건국에 참여해’라는 표현으로 정리했다. 대한민국 법정은 분명히 독립운동가와 건국 참여 세력으로서 조봉암을 인정했다.

재심 판결에도 불구하고 조봉암은 여전히 거론하기 불편한 대상이었다. 국가가 제멋대로 저질렀던 간첩이란 낙인은 그만큼 무서운 주홍글씨로 남았다. 공산주의자란 꼬리표도 마찬가지다. ‘조봉암은 빨갱이다’. 이 말은 굴절된 대한민국 현대사의 단면을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과도 같다. 한 사람의 사상을 극단적 이념주의로 몰아넣으며 맹목적으로 자행된 이른바 ‘손가락 살인’은 우리 현대사의 비극을 초래했다. 그리고 여전히 비극의 씨앗을 잉태하고 있다.

조봉암을 공산주의자로 규정짓는 이유 중의 하나가 조선공산당 활동이다. 하지만, 국가기록원조차 일제강점기 공산주의운동의 성격을 ‘독립운동 일환으로 전개된 공산주의운동’이라고 평하고 있다. 시대성을 생략해버린 채 ‘조선공산당’이란 이름만을 부각해 조봉암을 그 안에 가둬버린 것이다. 광복 후 전향 과정이나 대한민국정부 내에서 활동한 정치가로서 삶을 외면한 것은 물론이다.

조봉암에게 중요한 건 대중이었다. 정치는 대중을 잘살게 하기 위한 민주주의 투쟁 과정이었다. 평화통일론이 그렇고, 복지국가론이 그렇고, 최근 주목받는 피해대중론이 그렇다. 대통령 후보인 데다가, 초대 농림부장관과 국회 부의장까지 지낸 인물을, 대한민국을 전복시키려던 세력의 ‘괴수’로 딱 잘라 판단해버리는 것은 너무 어색하지 않은가. 더구나 일부의 주장이기는 하지만, 조봉암을 상쇄할 대안으로 거론되는 인물이 트루먼이나 맥아더라니. 건국 초기의 대한민국을 너무 가볍게 본 결과다.

조봉암은 인천과 인연이 깊다. 그렇다고 해서 인천에 남긴 흔적만을 좇는 일은 어리석다. 조봉암을 다시 우리시대에 소환하는 이유는 건국 초기 그가 생각했던 대한민국의 국가상을 들여다보기 위함이다. 그가 바랐던 대중을 위한 정치는 지금도 유효한지, 역사 속 인물로 지금 우리의 모습을 직시하기 위해서다.

또 하나, 왜곡된 국가시스템에 의한 ‘사법살인’이 다시 재현될 가능성은 없는지, 성찰도 필요하다. 시스템이 잘못됐다면 보완하거나 고칠 것이 아니라, 그러한 시스템을 만들게 한 근본 철학을 되돌아봐야한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우리는 제헌의회가 보여준 국가와 사회정의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그만큼 하고 있는가. 조봉암을 통해 대한민국의 초심을 다시 한 번 짚어볼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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