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허우범 시민기자의 ‘사라진 도시를 찾아서’ <12> 호탄 요트칸과 마이리크와트 고성

죽음의 땅이 곧 삶의 터전

▲ 타클라마칸을 종단하는 사막공로.
모래언덕이 쉼 없이 이어진다. 가도 가도 끝없는 사막. 현기증조차 몽롱하다. 한번 들어가면 살아나올 수 없다는 죽음의 땅, 타클라마칸은 고요히 그리고 무섭게 만물을 탈진시키고 있다.

타클라마칸사막은 곤륜산맥과 파미르고원 사이에 거대하게 웅크리고 있다. 길이 1000㎞, 폭 500㎞, 면적은 37만㎢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거대한 죽음의 땅을 벗어나지 않았다. 아니 벗어날 수 없었다. 이곳이 중국과 중앙아시아를 연결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죽음의 땅은 곧 삶의 터전인 것이다.

사막에도 물이 있다. 지하수가 모인 곳에 오아시스가 있다. 사막 주위에 있는 오아시스는 교통로가 되고 나아가 도시를 이룬다. 문물이 오가는 교역의 거점으로 발전한다. 오아시스 도시를 지배하는 것은 실크로드를 지배하는 것과 같았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저마다 왕국을 세웠다. 누란ㆍ니야ㆍ우전ㆍ소륵 등, 많은 왕국들이 사막 위에 세워지고 사막 속에 묻혔다.

강물에 휩쓸린 고대 우전국의 도성

▲ 호탄의 흑옥하에서 옥을 캐는 사람들.
호탄은 타클라마칸사막의 남쪽 요충지에 위치한다. 고대에는 ‘우전’이라고 했다. ‘옥이 나는 곳’이라는 뜻이다. 이곳에는 두 개의 사막 강인 백옥하(白玉河)와 흑옥하(黑玉河)가 흐른다. 중국인들이 귀하게 여기는 연옥의 산지가 바로 이곳이다.

우전국의 도성인 요트칸을 찾아간다. 요트칸은 호탄시내에서 서쪽으로 10㎞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요트칸 가는 길은 포도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우전국은 불교국이었다. 기원전 60년 한나라에 복속될 때, 이미 많은 사찰과 승들이 있었다. 요트칸은 우전국의 왕궁 사찰이 있던 곳이다.

유적지가 있는 엘라메 마을에 도착했다. 좁은 마을길은 어디를 보아도 온통 나무뿐이다. 3세기부터 500년간 교역했던 도시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겨우 찾은 곳에는 표지석만 덩그러니 외롭다. 어쩌다가 이렇게 됐을까. 1920년대까지만 해도 이곳에는 성터와 사찰 등 유적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폐허의 유적지보다 금이 더 중요했다. 사금을 캐기 위해 이곳으로 강물을 끌어들였다. 유적지는 파괴되고 강물에 휩쓸렸다.

세월이 흘러 다시 마을이 생겼다. 사람들은 농사에 필요한 도랑과 웅덩이를 만들며 많은 유물조각들을 발견했다. 정부는 유적 보전을 위해 다시 묻었다. 고대 우전국의 도성 터는 내가 서있는 발아래 5m에 잠들어 있다.

요트칸에서 자동차로 약 40분 거리에는 마이리크와트 고성이 있다. 일본 고고학자들이 발굴한 곳인데, 우전국의 여름궁전으로 짐작되는 곳이다. 드넓은 성터는 말 그대로 허허벌판이다. 성터 옆을 흐르는 백옥하가 몇 번이나 몰아쳤을까.

성벽은 무너지고 부서져 둔덕만 드문드문 남아있다. 고성의 이름도 마을 이름으로 정했다니 역사도 허망함을 알고 강물 따라 흘러간 것인가. 고성을 오가는 마을 길목에는 가난한 아이들의 처량한 까막손만 무성하다.

죽음의 땅을 넘는 ‘옥의 길’

▲ 나무들로 빼곡한 요트칸 유적지.
호탄의 옥은 기원전 16세기부터 사용됐다. 고래(古來)부터 중원과 교류한 것이다. 고대 중국에서의 옥은 고귀한 사람의 인품과 덕망에 비유됐다. 왕만이 가질 수 있는 귀한 물건으로 간주되기도 했다. 천명을 받는 자의 증표로서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금은 값이 정해져있지만 옥은 값이 정해져있지 않은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좋은 옥은 곤륜에 있다. 곤륜은 중원에서 함부로 가지 못한다. 거대한 죽음의 땅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호탄은 곤륜산맥의 만년설이 녹은 물과 함께 굴러 내린 바위가 자갈이 돼 쌓이는 곳이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옥을 캤다. 옥은 천연의 신비와 변함없는 색체로 만인의 보배가 됐다. 그리하여 권력자에서부터 부자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 소유하고 싶은 첫 번째 보물이 됐다.

인간은 옥을 구하기 위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마침내 인간은 죽음의 땅에서 백골로 길을 삼아 길을 뚫었다. 죽음의 땅을 넘는 ‘옥의 길(玉石之路)’이 생긴 것이다. 비단길이 생기기 오래 전의 일이다.

일확천금을 꿈꾸며 옥을 캐는 사람들

▲ 폐허가 된 마이리크와트 고성 터.
죽음의 땅을 넘어 온 옥은 돈황의 옥문관을 통해 장안으로 왔다. 옥의 가치는 천정부지였다. 죽음이 상품의 가치를 높였다. 죽음의 땅을 넘나드는 위험수당도 덩달아 뛰어올랐다. 두려움은 설렘으로 바뀌고 저마다 옥을 찾아 죽음을 넘어갔다.

인간의 욕심은 죽음도 불사한다. 죽음을 뛰어 넘는 도전과 성취가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호탄의 옥을 가지고 옥문관을 들어간 자들은 자신들의 길을 ‘옥의 길’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비단을 가지고 고대 페르시아와 그리스까지 갔다. 서역 사람들은 그들의 길을 ‘비단길’이라고 불렀다. 옥의 길과 비단길을 왕래한 이들은 죽음의 위험을 내세워 폭리를 취했다.

공자는 옥이야말로 다섯 가지 덕을 갖춘 보물이라고 했다. 온화한 광채는 인성, 티끌 하나 없는 깨끗함은 도덕적 순수함, 낭랑한 울림은 지혜, 견고함은 정의로움, 그리고 내구성은 인내와 용기의 상징이라고 했다. 공자의 말대로라면 옥은 지구상 최고의 보물인 것이다.

호탄의 옥은 얼마나 많을까. 오늘도 백옥하와 흑옥하에는 옥을 캐는 사람들로 붐빈다. 그들 모두 다 일확천금을 꿈꾼다. 하지만 최고의 양지옥(羊脂玉)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하여 오늘도 투정 섞인 흙만 파낸다. 덕을 갖춰야만 옥이 보이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 호탄의 옥시장. 많은 사람들이 일확천금을 꿈꾼다.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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