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위에 커피를 좋아하는 이들이 꽤 많다. 얼마 전 만난 지인은 그 중에서도 남다른 경지에 이른 것 같다. 그는 새벽녘 원두커피 내리는 일로 하루를 시작한다. 다른 식구들이 모두 잠들어 있는 새벽 세시에 홀로 일어나 어두운 밤의 고요함을 음미하며 커피를 한 잔, 아니 한 주전자 마신다.

정신이 또렷해지고 움직일 힘이 솟아나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 바쁜 일정이 예정된 날엔 평소보다 커피를 진하게 내려 든든하게 마신 후 텀블러에도 담아둔다. 그래야 바깥에서도 하루 일과를 무사히 마칠 수 있다.

어쩌다 커피를 마시지 않은 날엔 ‘여기서 저기까지’ 걸을 힘이 없어 방을 기어 다닌다. 급기야 “살려달라”는 말이 나오면 아들은 익숙한 듯 커피를 내리고 그는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대가로 오천 원을 건넨다. 커피 없이는 하루도 못 산다는 그. 주범은 커피 안에 들어 있는 카페인이다.

 
커피나무가 카페인을 만드는 것은 여러 가지로 유리한 면이 있어서다. 우선 해충을 쫓는다. 커피나무는 어린잎에서 카페인을 만들어 잎을 먹는 달팽이와 곤충을 죽인다. 잎이 단단해지면 카페인은 꽃과 열매, 씨앗으로 옮겨간다. 열매와 씨앗은 카페인의 보호를 받는 동시에 열심히 새로운 카페인을 만들어 씨앗에 차곡차곡 쌓는다. 커피콩인 이 씨앗은 거의 모든 공격자를 퇴치할 만큼 진한 농도의 카페인을 갖게 된다.

생장과 번식에 모든 자원을 쏟기도 부족한데 이토록 많은 에너지를 들여 씨앗에 카페인을 모으는 이유가 있다. 훗날 씨앗이 발아했을 때 씨앗의 카페인이 흙으로 빠져나와 다른 식물의 뿌리 성장을 방해하고 다른 씨앗이 발아하는 것을 막는다. 카페인은 곤충에겐 살충제, 식물에겐 제초제나 다름없다.

카페인은 모든 생물의 세포 분열 과정을 멈추게 하는 물질이다. 물론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어른들이 성장기 아동과 청소년에게 커피를 못 먹게 하는 것은 나름 타당한 행동이다. 키가 덜 자랄 수 있으니 말이다. 커피가 일부 암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진 것도 암세포의 분열과 성장을 멈추는 데 어느 정도 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커피나무는 꽃의 꿀에도 카페인을 옮겨 놓는데, 꽃은 식물의 생식기이다. 다른 곳은 몰라도 꽃만큼은 많은 곤충이 찾아와 꽃가루를 여기저기 퍼트려 줘야 한다. 그런 꽃의 꿀에 살충제를 숨겨 놓다니, 커피나무 고놈 참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상은 이렇다.

카페인이 든 꿀을 먹은 꿀벌의 뇌는 사람의 뇌와 똑같이 활성화된다. 꿀벌들은 카페인이 든 꽃을 기억했다가 다시 찾아갈 가능성이 세 배나 높았다. 적당량의 카페인이 벌떼를 불러 모으고 빨리빨리 수분(수술의 화분이 암술머리에 붙는 일)을 하도록, 즉 일을 하도록 부추기는 것이다.

우습게도 커피는 사람도 일하게 만들었다. 독일 저널리스트 쉬벨 부시는 커피를 두고 “합리주의와 프로테스탄트 윤리가 영적으로, 이념적으로 성취하고자 했던 바를 화학적으로, 약물학적으로 이루어 냈다”고 했다. 카페인이 사람을 부지런하고 활동적으로 만들어 높은 생산성을 이끌어낸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커피’ ‘공장’ ‘노동계급’이란 단어의 현대적 의미와 철자가 모두 18세기 산업혁명 시기에 만들어진 것이 이를 방증한다. (참고한 책 <씨앗의 승리> 소어 핸슨 지음)

커피엔 카페인뿐만 아니라 최소 800여 가지 성분이 들어 있다.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대부분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도 지난 300여 년 동안 꾸준히 사랑을 받아 왔으니, 우리 인간에게 큰 해를 끼치지는 않는다는 건 증명된 셈이다. 단지 잠을 못 자게 하는 부작용 때문에 오늘도 나는 커피를 마시지 못하지만, 방을 기어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선 이것도 뭐 괜찮은 것 같다.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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