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투데이이 만난 사람] 유수복(유정복 인천시장 형) 대양종합건설 대표

떠나야했다. 동생 유정복이 2014년 6.4 지방선거에서 인천시장에 당선되면서 갑자기 정든 고향을 떠나야했다. 아쉬움과 미련이 남았지만 어쩌랴. 34년 일군 회사를 옮기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동생에게 눈곱만큼도 부담되는 건 싫었다.

▲ 유수복 대양종합건설 대표.
“인천을 떠난 지 얼마나 됐나요?”
“유정복 시장 취임과 동시에 떠났으니, 3년 4개월 정도 됐겠네요”

“유 시장한테 섭섭하지 않았나요?”
“섭섭하지 않았다면 솔직하지 않은 거죠. 저는 태어나서 초ㆍ중ㆍ고와 대학까지 인천에서 나왔습니다. 회사도 인천에서 시작했고, 인천에서 컸습니다. 크진 않았지만 무(無)차입 경영 할 정도로 알차고 튼튼한 회사였어요. 인천에서 토건 능력 5위 정도였습니다. 인천을 떠난다는 건 모든 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30년 동안 가졌던 인간관계 등, 사업기반이 ‘리셋’되는 거죠. 관급공사에 입찰하려면 지역점수라는 것이 있는데, 지역을 옮기면 제로가 됩니다. 입찰이라는 것이 소수점 이하 점수로 결정되기 마련인데 심각한 타격이 아닐 수 없죠”

“인천을 떠날 결심은 언제 했나요?”
“사실 2014년 6월 지방선거 전에 동생이 인천시장으로 출마한다는 설이 종종 돌았어요. 출마가 기정사실로 굳어지더군요. 그때 결심했어요. 당선되면 미련 없이 떠나자”

“꼭 떠나야했나요?”
“동생이 최연소 김포시장으로 정치를 시작한 이후 우리 집안 철칙이 생겼습니다. 동생에게 누되는 일은 절대 하지 말자였습니다. 우리 가족 모두 유정복 시장이 김포에서 시장, 국회의원으로 정치하는 20년 동안 김포 쪽은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건설회사를 운영하는 저 조차도 김포에 못하나 박지 않았습니다. 인천시장이 된 동생한테 조금이라도 부담이 돼서는 안 되는 거죠. 그래서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난 겁니다. 인천을 떠난 지금도 저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가 심심찮게 돈다고 듣고 있습니다. 만약 제가 인천에 있었으면 별별 소문이 돌고 난리가 났겠죠”

“직원들 동요는 없었나요?”
“그 때 직원 60여명이 근무했습니다. 출퇴근 문제 때문에 그만두겠다는 직원들도 생기고, 이제 좀 살만한데 왜 회사를 옮기느냐고 불만을 터뜨리는 직원들도 있었습니다. 회사를 부천으로 옮긴 것도 직원들의 이런 사정을 감안한 겁니다. 물론 ‘대양종합건설’이라는 상호가 없는 곳을 찾다보니 마침 부천에 없어서 그렇게 한 측면도 있지만요”

“동생이 13년 후에 인천시장으로 올 걸 미리 알고 땅을 사두기라도 했다는 건가”

“사업은 어떤가요?”
“밥은 먹고 삽니다.(웃음) 지역점수가 없으니 관급공사 낙찰은 힘들어 다른 길을 찾아야했습니다. 평생 해야 할 고민 이때 다 한 것 같습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인천시에서 발주하는 공사는 입찰 근처에도 가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30년 넘게 무차입 경영해 온 것이 큰 힘이 됐습니다. 사즉생(死卽生) 정신으로 일했습니다. 사업장도 전주를 비롯해 평택ㆍ용인ㆍ김해ㆍ충남ㆍ강원 등, 전국에 산재해있습니다. ‘아리스타’라는 브랜드를 ‘론칭’해 소비자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아리스타’ 브랜드로 짓는 아파트ㆍ오피스텔이 거의 100% 분양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소유하고 있는 월미도 땅의 고도제한이 완화되면서 많은 이득을 봤다는 지적이 있는데요?”
“답답한 노릇입니다. 일일이 해명할 수도 없고… 그 땅을 소유한 것은 유 시장이 인천시장되기 13년 전입니다. 유 시장이 13년 후에 인천시장으로 올 걸 미리 알고 땅을 사두기라도 했다는 건가요? 더구나 월미도 고도제한 완화 논의는 월미도 주민들의 민원으로 전임 시장 때부터 논의되고 있던 것입니다. 무슨 큰 특혜라도 받은 것인 양 하는데… 유 시장이 제가 소유한 땅을 고도제한 완화에서 제척할 것을 지시하고 그걸 인천시에서 검토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했으면 하는 심정입니다. 유 시장이 인천으로 올 줄 모르고 16년 전에 그 땅을 사 둔 게 죄라면 죄죠. 모든 것이 다 제 부덕의 소치죠”

“최근 사업이 커진 것을 두고 유 시장의 도움이 있는 거 아니냐고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보시면 알겠지만, 유 시장 취임 이후 가족이나 측근으로 인한 비리사건이 단 한 건이라도 있었습니까? 유 시장도 자신과 주변 관리에 철저하지만, 저 또한 동생 얼굴에 조그만 티라도 낼까봐 늘 노심초사합니다. 유 시장을 1년에 두 번 정도 봅니다. 명절 두 차례는 유 시장이 공무로 바빠서 보기 어렵고, 부모님 기일 때나 볼 수 있는데, 그것도 요즘은 제가 일부러 피하고 있습니다. 부모님께는 죄송하지만, 정치인 동생 둔 저의 운명이라 생각하고. 유 시장이 인천 발전을 위해 열심히 일해 주길 바랄뿐입니다”

“인천에서 맡고 있는 역할이 있나요?”
“개인적인 관계를 제외하고 모두 그만 뒀습니다. 인천을 떠나기 전 교통방송 시청자위원회 위원장, 인천사회복지공동모금회 홍보위원장, 대한적십자사 전국대의원, 인천역도연맹 회장 등을 맡고 있었습니다. 모두 그만 뒀습니다. 개인 친목회가 몇 개 있는데 그것도 조심스럽습니다. 될 수 있는 한 인천에 가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유 시장의 형이 아니라, 인천 출신 기업가 유수복으로 바라 봐줬으면”

“앞으로 계획이 있다면?”
“아직 부족하지만 우리 회사를 크게 발전시키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 할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인천을 떠난 것이 위기였지만,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지난 4년은 그 기반이 됐습니다. 우리는 꿈을 꾸고 있어요. 기존 아파트 방식의 천편일률적 주거문화를 바꿔, 테라스 아파트와 같은 질 높은 주거문화를 만들어갈 겁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 회사가 강릉에 짓고 있는 테라스 아파트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인천시민들께 부탁하실 게 있다면?”
“저를 유정복 시장의 형 유수복이 아니라, 인천 출신 기업가 유수복으로 바라 봐주셨으면 합니다. 솔직히 유 시장이 정치인이기 때문에 제가 공격 받을 때 너무 괴롭습니다. 그것도 근거가 없는 얘기를 만들어 공격할 때면 모든 것을 그만두고 싶습니다. 저도 인격이 있고, 저의 일이 있습니다. 거기에 전념하고 싶어요. 인천 출신의 대표적 기업가로, 또한 우리 회사가 인천 출신 대표적 기업으로 발전할 수 있게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훗날 인천을 위해 일하고 봉사할 때가 있겠죠. 그 날을 꿈처럼 기다리겠습니다. 제 고향은 누가 뭐래도 인천입니다”

유수복 대표는 그의 바람처럼 유정복 시장의 형 유수복이 아니라, 기업인 유수복으로 인식될 수 있을까? 우리 정치문화가 그 정도 성숙할 수 있을까? 사물에는 늘 이면이 있기 마련이다. 유 대표에게 인천시장을 동생으로 둔 당당함 또는 자랑스러움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인터뷰 내내 조심스러워했다. 동생에게 누가 될까 노심초사하는 것이 체질화되고 내면화된 탓이리라. 우리나라 정치인 가족이 겪어야하는 아픔인가? 그러면서도 자신의 사업에 대해서는 열정적이고, 그 꿈은 확고했다.

유수복 대표는 인천에서 태어나 동인천고등학교와 인하대학교 금속공학과를 졸업했다. 잠시 포스코에 취업했다가 1981년 이후 대양종합건설을 설립, 37년간 무차입 경영을 하고 있다. 동인천고 총동문회장을 맡았을 때 동문회관과 장학회를 설립했다. 지금은 인하대 총동문회 상임부회장을 맡고 있고, 대한민국 아너소사이어티 14호 회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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