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날 저녁, 시댁 마당에 남편의 사촌들이 모였다. 어린 시절 한 동네에서 자라 서로 친형제나 다름없는 사이다. 화로 두 개에 숯불을 피워 고기와 새우를 굽고 술을 따랐다. 얼큰하게 술에 취한 사촌들이 각자 집으로 돌아가고 마당엔 남편의 누나(내겐 형님) 내외와 조카 세 명만 남았다. 모두 맨 정신인 사람들.

이대로 자리를 정리하기엔 뭔가 아쉬웠다. 나는 여기 저기 흩어져 있던 앉은뱅이 의자들을 주섬주섬 화로 주위에 옮겨 놓았다. 아직 열기가 한창인 숯불 사이에 감자도 던져 넣었다. 뱅 둘러앉으니 자연스럽게 이야기들이 흘러나왔다.

그날 가장 큰 웃음을 준 이는 아홉 살 된 막내 조카였다. 이 사람 저 사람 말에 쉴 새 없이 참견하고 논리를 따지며 한 마디도 지지 않으려는 모습에 모두 배가 꼬부라지게 웃었다. 그런데 옆에서 조용히 앉아 있던 둘째 조카가 꺼낸 몇 년 전 이야기에 남편과 나는 충격을 받고 말았다.

8년 전, 초등학교 2학년이던 둘째 조카는 붙임성이 많았다. 무뚝뚝한 시부모님에게도 예외가 아니어서 귀염을 많이 받았다. 시부모님은 장거리 이동을 할 때마다 조카를 늘 데리고 다녔다. 어느 날 조카가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인천에 왔다. 나는 당시 남편과 연애 중이었는데, 시부모님이 나를 만나보고 싶어 했다. 어떤 분들인지 궁금한 마음에 가벼운 마음으로 남편 집으로 갔다.

어머님이 한창 음식을 준비하고 계셨다. 모두 시골집에서 싸오신 것들이다. 그 중엔 남편이 가장 좋아하는 산낙지도 있었다. 산낙지 다리를 칼로 탕탕 짧게 쳐서 자르는 모습을 그날 처음 봤다. 도마 위에서 잘린 다리들이 꼬물거렸다. 진한 양념의 파무침과 양념게장도 상에 올랐다.

▲ ⓒ심혜진.
“내가 제일 좋아하는 탕탕이다!” 조카가 낙지 다리 한 조각을 입안에 쏙 넣었다. 아작아작 오도오독 씹는 느낌이 내게까지 전해지는 듯했다. 나는 입안에서 꿈틀거리는 느낌이 불편해 산낙지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 내게 어린 조카의 첫인상은 몹시 강렬했다. 표현을 허락한다면, 기괴했다고 말하고 싶다.

다리를 다 먹고 나자 조카가 낙지 머리를 집어 들었다. “이건 어떻게 먹어요?” 자르지 않은 둥근 머리였다. “그냥 씹어” 남편이 말했다. 조카는 자기 입보다 커 보이는 낙지 머리를 입안에 넣고 씹기 시작했다.

“삼촌, 안 잘려! 뱉어?” “야, 뱉으면 안 되지. 그냥 삼켜” 조카는 잠시 우물거리다가 목구멍에 힘을 줬다. 그때부터다. 조카의 얼굴이 점점 벌게지더니 눈이 가늘어지고 손이 목으로 올라갔다. 낙지가 목에 걸린 것이다.

당황한 나는 어쩌지 못하고 “저기, 저기” 소리만 했다. 바로 옆에 앉아 계시던 시아버지가 조카의 등을 몇 차례 세게 두드렸다. 구토를 하듯 입을 몇 번 움직이자 주먹만 한 낙지 머리가 입 밖으로 밀려나왔다. 조카는 눈물 콧물을 쏟으며 서럽게 울었다.

“그날 이후로 산낙지를 못 먹는다고요. 삼촌, 책임져요” 시부모님도 자칫 손녀딸을 잃을 뻔했다는 생각 때문인지, 다시는 여행길에 조카를 데리고 다니지 않으셨다고.

8년 전 진실을 이제야 알다니. 생각하면 아찔하다. 그런데, 누군가에게 큰 상처가 된 일이 다른 사람에겐 전혀 다른 상황을 가져올 수 있다. 내가 산낙지를 좋아하게 된 건 그날 내 앞에서 꿈틀거리는 낙지를 오독오독 맛있게 씹어 먹던 조카 덕분이란 말은 속으로 꾹 삼켰다.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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