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동희 극작가
여름과 가을이 끝자락을 슬쩍 겹친 듯이 한낮에 남아 있는 햇살엔 따가움이 남아있지만 아침저녁으로 부는 바람은 한결 상쾌하다. 9월이 되면서 공연계가 부쩍 바쁘게 움직인다. 추석이 낀 다음 달엔 연휴가 열흘에 이를 정도로 긴 까닭에 미리 무대에 오르는 공연이나 며칠을 당긴 축제도 많다.

대체로 명절이 포함된 연휴에는 공연을 꺼리는 경향이 두드러지는데, 인천의 공공 공연장들도 명절 당일과 앞뒤 날 정도는 쉬는 것이 일반적이다. 연휴기간 시민들의 이동이 많을뿐더러 휴일이 주는 편안함이 오히려 시간 활용을 불규칙하게 만들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반면에 아주 드물긴 하지만 작정하고 연휴기간에 공연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 ‘관객’을 자신하기는 어렵다.

이러한 가운데 추석연휴를 포함해 한 달이 넘는 장기공연에 들어간 연극 한 편이 인천 연극인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근래에 인천에서는 보기 드문 장기공연인 데다 공연장소가 일반 극장이 아닌 카페여서 또 다른 이야깃거리가 되고 있다.

중구 신포동의 북카페인 ‘북앤커피’에서 공연 중인 극단 십년후의 ‘사랑소묘’가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지난 9일 첫 공연을 시작으로 다음달 15일까지 이어가는 이 공연에는 몇 가지 주목할 만한 점이 있다.

무대와 객석, 그리고 음향과 조명 등의 장치를 제대로 갖추고 공연하는 게 일반적인 형태인데, 이와는 달리 무대나 객석의 형식이 충분하지 않은 카페나 레스토랑, 강당 등에서 진행하는 공연을 쌀롱극이라 한다. 관람의 엄숙주의를 걷어낸 쌀롱극은 일반 소극장보다 훨씬 깊은 현장성을 느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극단 십년후의 ‘사랑소묘’는 이러한 쌀롱극의 형태를 띠고 있다. 이렇게 된 과정을 짚어보면 인천 공연계의 약점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의도적으로 쌀롱극 공연을 진행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인천에서는 레퍼토리 작품을 한 달 이상 공연할 만한 공연장을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울러 극단 십년후가 굳이 장기공연을 고집한 이유 중 하나가 인천에서 장기공연 활성화와 이를 위한 소극장 마련의 계기를 확인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인천에서 소극장 공연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는 19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으로, 신포동에서 경동과 배다리로 이어지는 공간에 소극장 일고여덟 개가 자리를 잡고 다양한 공연으로 시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후 대형 공연장들이 들어서면서 소극장들은 하나둘 사라졌고, 간헐적으로 생겨난 소극장들도 오래 버티지 못하고 자취를 감췄다.

연극계에서 소극장 공연, 특히 장기공연을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오랜 공연으로 관객과 소통하며 제대로 된 레퍼토리 공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불과 2~3일의 짧은 공연으로는 충분한 공연상품을 만들기 어렵다.
이번 실험이 특정 개인이나 단체의 실험에 머물지 말고, 인천의 소극장과 장기공연에 대한 지역 연극계의 오랜 바람을 되살리는 바탕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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