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현석 인천민속학회 이사
No More Hiroshimas. 역사상 이미지 전환을 시도한 수많은 구호 중에 이처럼 간결하고 명확하며, 해석하기 어려운 문구가 있을까. 일본은 이 구호 하나로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선을 흐릿하게 만들었다. 일본이 원자폭탄의 가공할 파괴력에 ‘평화’라는 단어를 접목시킨 건, 원폭이 떨어진 후 네 해가 지났을 때였다. 1949년 8월 6일 공포된 ‘히로시마 평화기념도시 건설법’이 단초가 됐다. 이 법안에 따라 ‘폭심지를 항구적 평화의 상징 지역으로 정비하기 위해’ 1955년 평화기념공원을 조성했다.

작년 4월에는 미 국무장관이 사상 최초로 이곳 평화기념공원을 방문해 위령비에 참배했다. 일본 방송은 이 장면을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미국은 그 자리에서 미일동맹을 이야기했다. 평화와 전쟁이 교차하는 모습이다. 일본은 지금, 군사력 보유를 금지한 평화헌법까지 손대는 중이다. ‘집단적 자위권’이란 논리 하에 해외파병도 고려하고 있다. 일본에서 ‘평화’라는 단어는 피해자의 지위를 넘어 군국주의 시대의 부활을 상기시키며 폭주하는 중이다.

히로시마에 평화기념공원이 조성된 후 두 해가 지날 무렵, 인천 자유공원에서 맥아더 동상 제막식이 열렸다. 인천상륙작전 7주년 기념식을 겸해 진행된 이날 제막식의 화두는 자유와 세계평화였다. 히로시마가 피폭의 공간에 핵보유국의 관리들을 불러들여 고개를 숙이게 했다면, 인천은 피폭을 겪은 지역 주민들이 찾아가 동상에 고개를 숙인다. 평화의 모습은 이렇게 다르다.

하나만 더 들여다보자. 2008년 4.3평화기념공원이 제주도에 문을 열었다.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에 근거해 만들었다. 그 전에 작성된 ‘제주 4.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가 기초가 돼 희생자의 영령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공간이다. 희생자의 원(怨)이 모여 진실을 밝혀내고, 결국 국가폭력의 현장이 ‘평화와 인권의 성지’로 탈바꿈한 사례다.

평화란 무엇일까. 반전(反戰)인가, 폭력으로부터 해방인가. 생태적 평안일까 아니면 생명과 재산의 항구적 안전을 의미할까. 시대와 문화에 따라 평화의 의미를 달리 해석하기도 하고, 처한 조건에 따라 용어의 정의가 변하기도 한다. 오히려 하나의 의미로 고착되지 못한 정의가 평화라는 단어에 어울릴 법도 하다.

평화를 이야기할 때 그 주체로서 인간의 권리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인권은 어느 시대에도 온전하게 자리 잡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직업과 경제력, 종교와 국적, 성별과 연령 등에 따라 인권은 항상 침해를 받았다. 소수의 인권이 보장되고 개개인이 평화를 누릴 수 있는 날은 요원해 보인다. 그렇기에 평화와 인권을 위한 일상적 시도는 멈출 수 없다. 평화공원과 같은 공간은 그런 의미에서 가치를 갖는다.

부평공원 일대를 평화공원으로 전환하려는 움직임이 빠르게 진행 중이다. 부평공원뿐이랴. 조만간 반환될 미군기지를 포함한 주변 일대는 반(反)평화, 반(反)인권이 반복돼온 역사 공간이다. 부평에 평화공원이 조성된다면 사람들은 이곳에서 평화 이야기를 이어갈 것이다. 다만, 개명(改名)이 평화 정착을 의미하지는 않을 터, 평화공원을 넘어 평화도시, 인권도시의 전망을 담는 과정이 함께 고민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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