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주 시민기자의 영화읽기 - 안녕 히어로

한영희 감독|2017년 개봉

 
2009년 6월 8일 쌍용자동차 노동자 976명에게 해고가 통보됐다. 쌍용자동차노동조합은 해고노동자들과 함께 투쟁했고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에는 엄청난 경찰병력이 투입됐다. 헬기, 물대포, 폭력, 그리고 연이은 구속. 그 뒤로 이어진 해고노동자들과 가족들의 죽음. 한겨울 공장 굴뚝 위의 농성. 많은 이들이 기억하는 쌍용자동차의 지난 시간들이다. 2015년 노사 합의로 순차적이고 부분적인 복직이 이뤄졌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여전히 남아 있는 해고노동자들이 투쟁하고 있다는 소식도 간간이 들었다. 그렇게 쌍용자동차는 기억에서 희미해졌다.

‘안녕 히어로’의 한영희 감독은 정리해고 이후 연이은 죽음으로 자신의 고통을 알렸던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을 만나기 위해 2012년 평택을 찾았다. 오랜 기간 대답 없는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해고노동자들에게 가장 힘든 점이 무엇일까 고민하던 감독의 눈에 들어온 것은 해고노동자의 가족들. 해고노동자들은 자신의 투쟁이 가족에게 부당한 희생을 요구하는 것 같아 힘겨워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점점 커 가는데 아이들에게 자신의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할지도 난감했다. 영화 속 현우 역시 학기 초마다 작성해가야 하는 가정환경조사서에 아빠의 직업을 뭐라 적어야할지 난감해한다. 무직? 노동운동가? 사회운동가? 정확히 말하자면 해고노동자이지만, 해고자라고 하면 선생님이나 친구들이 이상하게 보거나 불쌍하게 볼까봐 그건 싫단다.

붉은 머리띠 두르고 투쟁조끼를 입고 대열을 지어 구호를 외쳐야만 투쟁이 아니다. 정리해고 이후 7년은 당사자인 해고노동자뿐 아니라 그들의 가족 역시 투쟁해온 시간이었다. 해고, 복직, 투쟁… 평상시에는 쓰지도 듣지도 않았을 말들이 소년에게 일상이 되는 생활. 하루아침에 평범한 일상을 빼앗긴 이들이 살아내는 하루는 살아내는 것 자체가 투쟁이다. 일상의 투쟁. ‘안녕 히어로’는 바로 그 일상, 현우의 일상에 카메라를 들이댄다.

카메라에 잡힌 현우는 말수가 적은 소년이다. 아빠가 갑자기 해고가 됐을 때도, 파업투쟁으로 구속됐을 때도, 밤낮 없이 투쟁현장에 나가 있느라 집에 들어오는 횟수가 줄어들었을 때도, 이렇다 저렇다 별 말이 없다. 그 흔한 ‘아빠 힘내세요’ 류의 응원도 없다. 다만 아빠를 바라보는 눈빛, 아빠가 지친 모습으로 집에 들어오면 아빠의 휴대전화를 받아 충전기에 꽂아두는 무심한 손길, 엄마에게 학원비 걱정을 안 시키려 애쓰는 행동에서 현우의 깊은 속내를 짐작할 따름이다.

현우에게 아빠는 본인이 정리해고 대상이 아닌데도 동료들과 함께 싸우는 정의로운 영웅이기도 하지만, 생활기록부 장래희망 란에 일터에서 쫓겨날 걱정이 없는 ‘공무원’을 쓰게 만드는 존재이기도 하다. 너무 어린 나이에 힘의 정치를 확인한 현우에게 세상은 약육강식의 정글이다. 그래서 아빠를 좋아하고 존경하는 만큼, 아버지처럼은 살고 싶지 않다. 마시면 불끈 용기가 솟아 무슨 일이든 할 수 있게 만드는 음료가 있더라도 자신이 마시고 싶지는 않다.

아들에게 어떻게든 이해를 구하고 아들의 감정에 귀 기울이는 아빠의 모습이나 그런 아버지를 누구보다 존경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현우의 모습은 뭉클했지만, 용기를 내는 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이미 알아버린 소년 현우를 보는 내내 가슴이 쓰렸다. 미안했다.

해고가 일상이 돼버린 시대. 많은 노동자들이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몰린다. 그들의 가족 역시 겪어보지 못했던 일상의 파도를 겪는다. 이 거친 파도 위에서 많은 이들이 쓰러졌고, 우리는 옆에서 파도에 휩쓸리는 이웃들을 돌아볼 새도 없이 어떻게든 나만이라도 살겠다고 아등바등 발버둥 친다.

그 파도 위에 현우가 있다. 정의로운 아빠와 동료 아저씨들을 좋아하고 존경하지만 정의가 승리하지 못하는 현실을 견디며 자라온 소년, 해고 7년 만에 아빠는 복직됐지만 여전히 거리에서 싸우는 아빠의 동료 아저씨들을 지지하고 기억하는 소년 현우가 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현우에게 빚을 지고 있다.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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