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허우범 시민기자의 ‘사라진 도시를 찾아서’ <9> 투르판 교하고성

▲ 폐허로 변한 교하고성 전경.
섬 모양의 토성이 항공모함처럼 우뚝하다. 하천 두 개가 깎아낸 30m 벼랑은 그대로 성벽이 됐다. 고성의 이름도 ‘교하(交河)’다. 교하고성은 길이 1650m, 폭 300m의 천연요새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야르허트’라고 부른다. ‘야르’는 위구르어로 ‘절벽’을 뜻하고, ‘허트’는 몽골어로 ‘도시’라는 뜻이다. 즉, 절벽 위에 세워진 도시인 것이다.

교하고성은 교통의 요충지다. 실크로드 천산북로와 남로가 이곳에서 갈린다. 토지도 비옥하다. 그런 까닭에 고대부터 병가필쟁지지(兵家必爭之地)였다. 이는 고성의 이름이 여러 가지로 불리는 것에서도 알 수 있다. 특히, 한 무제는 이곳을 차지하기 위해 흉노와 전쟁을 다섯 차례 치렀다.

교하고성은 고대 실크로드 서역 36개국 중 하나인 차사전국(車師前國)의 도성이었다. 이 지역엔 차사전국과 차사후국, 산북(山北) 6개국 등, 모두 8개국이 있었다. 국력은 차사전국이 가장 강성했다. 450년, 차사전국은 고창국에 멸망한다. 640년, 당 태종이 고창국을 정벌하고 서주(西州)를 설치했는데, 이 성에 서역 진출을 위한 대본영을 설치했다. 8세기 중엽엔 토번이, 9세기 중엽엔 회홀이 점령했다. 진정 병가필쟁지지임을 알 수 있다.

▲ 천연요새 교하고성 조감도.
이 고성은, 여러 민족이 차지했기에 각각의 지혜가 축적돼 만들어졌다. 도성의 중심대로는 남북으로 이어지고 동서의 도로가 교차되게 했다. 도시 건설도 구획을 나눠 조성했다. 동쪽과 남쪽은 주거지와 상가, 관공서가 빼곡하게 있었다. 서쪽은 묘지 터였다. 북쪽은 광대한 사원을 조성했는데, 사원 터 50여개가 발견됐다. 불법(佛法)을 전파하는 고승들이 불사마다 있었을테니 공양하려는 사람들도 사방에서 운집했으리라.

고성은 다리를 건너 들어간다. 2000년 전 흘렀던 강물은 오리들의 놀이터인 고랑으로 변했다. 고성 안은 폭 1m 정도의 보도블록길이 이어진다. 길 양쪽으로는 무너지고 파인 건물들이 기묘한 형상으로 즐비하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시간을 거슬러 고대의 왕국으로 들어가는 듯하다. 조밀한 성터에는 지하정원도 있다. 커다란 지하 공간에는 회의실과 접견실, 크고 작은 공방 등이 있다. 무더위를 이겨내는 지혜의 소산인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소망과 안녕을 위해 활기차게 거닐었을 거리. 왁자지껄 하루를 시작하고, 따뜻한 다향(茶香)과 함께 고단한 몸을 쉬었을 그들. 좁은 길을 걷고 있노라니, 그들의 빼쭉한 모습이 절터에서, 무너진 흙 담 모퉁이에서 느껴진다. 하지만 그뿐, 왕국과 함께 사라진 텅 빈 고성에는 햇살과 바람, 모래만이 켜켜이 쌓여있다. 오직 변함없는 것은 저토록 시린 창공뿐이다.

▲ 고성의 주거지.

▲ 지하정원으로 내려가는 길.
7세기, 당나라는 중원을 통일하고 강력한 국가체제를 구축한다. 그리고 제국을 향한 본격적인 영토 확장에 나선다. 실크로드의 요충지를 차지하기 위한 서역경영이다. 권력자가 정한 서역경영을 위해 백성이 동원된다. 징집령이다.

장식현이라는 백성이 서역경영에 징집돼 수만 리 떨어진 교하성에 왔다. 모래와 바람이 뿜어내는 변덕스런 날씨가 적보다 더한 공포였다. 어둔 밤을 비추는 달만이 위안이었다. 오늘도 무사히 살아있는가. 부모님과 누이동생은 잘 지내는가. 뒹구는 시체는 백골이 되고 밤마다 고향은 눈물에 잠겼다. 오호라 달구, 오호라 달구. 혼이라도 고향땅에 편히 갈 수 있으려나.

한낮은 산에 올라 봉화를 바라보고
해질녘엔 교하에서 말에게 물을 먹인다.
나그네의 밥솥에는 모래바람이 드세고
공주의 비파소리에는 원한이 깊다.
……
해마다 병사의 뼈는 사막에 묻히는데
포도만 부질없이 한나라로 들어오네.

애간장 녹이는 부모를 대신해 누이동생 아모가 탄원서를 올렸다.

무릎 꿇고 이렇게 눈물로 간청하옵니다. 하나뿐인 오라비가 군역에 들어가 교하거방에 배속됐습니다. 십 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고 생사조차 알 길이 없습니다. 이제 부모는 늙고 병들어 집안도 엉망입니다. 오라비를 대신해 처녀인 저를 잡아가시고 부디 오라비는 집으로 돌려보내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옵고 또 원하옵니다.

▲ 기묘한 형상이 늘어선 고성 산책길.
아모의 탄원은 이뤄지지 못했다. 그녀의 소망은 탄원서(歎怨書)가 돼 그녀와 함께 묻혔다. 천 수백 년이 지나 너무도 서러운 그녀의 소망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아모의 서러운 눈물이런가. 교하고성에 빗방울이 떨어진다. 권력자의 욕심에 희생양이 된 수많은 백성들의 울부짖음인가. 한 방울씩 떨어지던 비가 우산을 쓰게 만든다. 고성의 흙 담이 빗방울에 젖는다. 백성이 피와 땀으로 만든 도시를 통곡의 눈물로 무너뜨리고 있다. 아, 저것이 역사이고 저것이 진리다.

링컨이 말했듯이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가는 오늘날 산재하다. 그런데 정녕코 그러한가. 국가에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역사는 분명하게 알려준다. 권력자의 국가가 돼서는 안 된다는 것을. 국민 또한 심사숙고하고 혜안을 발휘해야한다. 국민의 목숨이 곧 국가이기 때문이다.

▲ 교하고성 북쪽에 있는 대불사 터.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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