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영일 인하대 명예교수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가 일촉즉발의 위기로 치달으면서 나라 안팎에서 한미동맹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강조되는 작금이다. 그러나 왜, 무엇을 위한 한미동맹인지에 대한 인식은 결여돼왔다. 우리에게 미국은 식민지배에서 해방시켜주고 북한의 침략에서 구해준 더할 나위 없이 고마운 나라다. 동시에 역사의 중대한 고비 때마다 우리의 기대를 저버린 배신자였다.

가쓰러-태프트 밀약이 그렇고, 해방과 동시에 민족분단과 한국전쟁, 뒤이은 냉전체제에서 지속돼온 남북대치 상황에서 미국의 동북아전략이 그렇다. 미국 CIA 한국지부 총책을 맡았던 그레그 전 주한 미국대사가 <한겨레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한국의 분단은 미국에 상당한 책임이 있다’며 ‘미안하다’고 인정한 바다. 병을 주었을망정 뒤늦게나마 약을 준 것은 고맙지만, 우리의 운명을 미국에만 맡기기에는 배신의 상흔이 너무 깊고 크다.

한편, 북한 정권의 성격이나 정황으로 봐 북한의 위협은 지속적으로 고조될 수밖에 없는 현 상황에서 한미동맹이 전쟁 재발을 막는 가장 유효한 장치라는 점도 엄연한 현실이다. 물샐틈없이 굳건한 한미동맹이 필요한 이유다.

한미의 북한에 대한 기본 인식이나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러나 국익이 다르고 때로는 대립할 수도 있는 독립국 간 동맹인 이상 시각과 입장, 지향하는 바가 다른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이 다름을 관리하고 조정할 수 있을 때 동맹관계는 건강하게 지속될 수 있다. 예를 들면, 미국은 맘만 먹으면 북한 핵을 얼마든지 제거할 수 있다. 그러나 무력에 의한다면 한국엔 치명적인 대재앙이다. 한반도는 전쟁터가 될 것이고 죽어가는 것은 우리다.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라는 구실로 추진되는 일본의 군사대국화에 대해서도 견해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일부에선 미국과 조금이라도 다른 목소리를 내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야단법석을 떨곤 한다. 이명박ㆍ박근혜 정부는 안보와 국방을 미국에만 매달릴 수밖에 없는 현실을 만들었다. 북한과의 모든 대화채널을 차단한 후 북한을 매도하고 폄훼하는 것이 그들의 대북정책이고 안보정책이었다.

진정한 동맹은 지배ㆍ종속관계가 아니다. 문재인 정부를 낳은 촛불이 바라는 ‘나라다운 나라’는 자주적인 외교주권을 포함한다. 미국에 대해서도 아닌 것은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할 수 있고, 우리의 창의적 전략과 생각을 당당하게 제시할 수 있어야한다. 그것이 미국에도 유익하고, 한미동맹이 굳건해진다.

문재인 대통령은 선제타격론ㆍ예방전쟁론이 회자될 때 ‘한반도 전쟁은 반드시 막겠다’고 굳은 의지를 표명하고 관계부처에 ‘한반도 평화는 우리가 지킨다는 주인의식으로 접근하라’ 고 지시했다. 이런 당연한 소신과 가치에 감동하는 건 왜일까.

돌이켜보면, 70년에 이르는 한미동맹의 역사상 그런대로 건강하고 굳건한 시기는 한국이 대북정책을 주도하고 미국이 뒤에서 지원했던 김대중ㆍ클린턴 시절의 3년에 불과하다. 북핵 문제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은 한반도의 평화체제 확립이고, 한반도 평화체제는 북미관계의 정상화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 사실을 미국에 기탄없이 말할 수 있을 때 건강하고 정상적인 한미동맹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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