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 주> 1950년생 ‘전쟁둥이’인 이입분(68)씨는 두레박으로 퍼 올린 우물물부터 프랑스 산 ‘에비앙’ 생수까지 모두 맛본 세대다. 그가 온몸으로 통과한 현대생활사를 물건으로 되짚어보려 한다. 이입분씨는 내 엄마다.

“블랙 스파게티 같은 게 나와!”

이 글을 읽는 지금, 부디 식사 중이 아니기를 바란다. 위에 인용한 글은 가수 헨리가 어느 방송에서 한 말이다. 외국계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캐나다에서 자란 그가 가수 데뷔를 위해 우리나라에 와서 난생 처음 때 미는 것을 경험했단다. ‘블랙 스파게티’는 꽤 오랜 시간 그의 몸을 덮고 있던 거무스름한 때였다.

어렸을 때 목욕탕에서 양육자와 때 미는 일로 실랑이를 벌이다 등짝 맞아본 이가 꽤 많을 것이다. 내 경우, 그 역할을 전담한 이는 엄마다. 엄마의 큼지막한 손에 끼워진 새빨간 이태리타월은 공포 그 자체였다. 어찌나 세게 미는지, 이태리타월이 지나간 자리엔 때와 함께 벌건 자국이 남았다.

엄마가 어렸을 때도 이태리타월이 있었을까?

“이태리타올? 그런 게 어디 있어. 나는 냇가에서 고운 돌 주워다가 그걸로 밀었어”

아, 어쩐지! 만일 엄마가 누군가에게 때밀이를 당해봤다면, 내 몸을 그렇게 세차게 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돌까지 이용해서 때를 밀었다니 좀 심한 것 아닌가?

“겨울엔 손발이 터서 새까매져. 때를 안 밀면 너무 지저분하잖아. 세숫대야에 뜨뜻한 물 담아서 손발을 좀 불린 다음에 돌로 살살 밀었어. 아, 그 전에 비누칠을 꼭 해야 해. 안 그러면 너무 아프니까. 다른 애들은 그냥 손이 튼 채로 다녔어. 목욕도 한 달에 한 번 할까 말까인데 뭘”

엄마의 이야기론, 1950~1960년대엔 목욕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나마 여름엔 냇가에서 자주 씻을 수 있었지만 추운 계절엔 물을 데워 몸 전체를 씻는다는 게 여간 춥고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다. 으레 설날과 추석 명절을 드물게 목욕하는 날로 여길 정도였다니, 꽤 많은 이들에게 목욕은 그야말로 연중행사였나 보다.

“그래도 때를 민 기억은 있어. 엄마(=나의 외할머니)가 그냥 손으로 밀었어. 물에 몸 담그고 있으면 때가 불잖아. 손끝으로 문지르면 때가 밀려 나오지. 너 그거 얼마나 아프고 힘든지 알아? 이태리타올은 댈 것도 아니야”

엄마 한 사람의 증언만으론 아무래도 신빙성이 떨어진다. 어쩌면 엄마가 돌로 때를 민 것처럼 외할머니만 특이하게 손을 사용했을지 모른다. 엄마가 친구인 순이 아주머니에게 확인 전화를 했다. 그분 역시 즉각 튀어나온 대답은 “목욕 자주 못했고, 어쩌다 할 때는 대충 손으로 밀리는 부분만 밀었지”였다. 오, 정말 그랬구나.

‘때를 적당히 밀자’

목욕도 제대로 못했다는데, 때 미는 문화가 언제부터 생겼을까 하는 의심을 했다. 혹시, 이태리타월이 나온 이후부터 때를 박박 밀게 된 건 아닐까?

실제로 이태리타월이 처음 세상에 나온 1967년 이전 신문 기사에선 때를 밀어 몸을 깨끗하게 한다는 내용을 찾을 수 없다. ‘목욕’ ‘때’ 등 여러 키워드로 검색해봤지만 ‘공중목욕탕에 들어가 앉아 때를 밀지 말자’는 내용의 기사가 드물게 나올 뿐이다. 대부분 ‘목욕은 가장 좋은 미용법. 더운 물에서 오래 땀을 내면 체내의 불순물이 배설되는 한편 혈액순환에 좋고 관절의 움직임이 부드러워지는데(후략)’(<경향신문> ‘균형 있는 몸매’ 1967.3.15.) 또는 ‘겨울에 목욕을 자주 시키고 피부를 마찰하여 저항력을 길러 주어야 합니다’(<동아일보> ‘봄바람과 어린아이 감기’ 1927.3.5.) 정도가 목욕에 대한 설명이다. 이 기사들로 추측컨대 당시 목욕은 전신을 비누칠해 물에 헹구는, 요즘의 샤워와 비슷한 의미였다.

1970년대부터 ‘때를 심하게 밀지 말자’는 내용의 기사가 부쩍 자주 등장한다.

‘이태리타월을 사용하는 것은 살갗에 스카치테이프를 20~30번 붙였다 떼어내는 것과 마찬가지의 역할을 하므로 아기는 물론 어른들도 사용을 금하는 것이 피부보호를 위해 좋습니다’(<경향신문> ‘어린이 목욕은 머리부터 감긴 뒤에’ 1971.8.14.)

심지어 ‘때를 적당히 밀자’는 캠페인까지 했던 모양이다.

‘“때는 적당히 밀자”는 좀 색다른 보건캠페인이 벌어지고 있다. 이 캠페인은 때를 과하게 밀면 건강을 해친다는 것이다. (중략) 때를 너무 밀지 말고 땀과 개기름을 물과 비누로 깨끗이 씻고 목욕하는 시간은 10~20분으로 짧게 하는 것이 피부에 오히려 좋다.’(<매일경제> ‘때는 적당히 밀자’ 1971.8.28.)

이쯤 되면 수많은 어린이들을 공포에 떨게 만든 ‘때 미는 문화’를 만든 주범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다. 이태리타월이다.

이탈리아에서 수입한 실, 그래서 이태리타월

이태리타월은 부산의 직물공장인 ‘한일직물’(대표 김원조)에서 처음 개발했다. 이탈리아에서 비스코스 레이온이라는 실을 수입해 천을 만들었는데 ‘이태리타올’이라는 이름은 실 생산국에서 따온 것이다. 원래 옷을 만들기 위해 들여온 실이었지만 실로 만든 천이 너무 거칠어 옷에는 적당하지 않았다. 수입한 실을 처리할 방법을 연구하던 중 탄생한 것이 이태리타월이다.

이태리타월을 만든 이에 대해선 기록이 엇갈린다. 이태리타월공사 대표를 지낸 김필곤씨가 발명했다는 것이 두루 알려진 내용이다. 하지만 김필곤씨는 부산에서 놋그릇 장사를 하던 사람이고 이태리타월의 영업을 맡았을 뿐 실제 개발자는 한일직물의 김원조 대표라는 주장도 있다.

김필곤씨와 김원조씨는 서로 친척관계인데, 원 개발자인 김원조 대표가 다른 사업으로 부도가 난 뒤 오랫동안 연락이 끊기자 김필곤씨는 김 대표가 죽은 것으로 생각하고 자신이 이태리타월의 개발자라며 각종 방송과 언론에 밝혔다는 것이다. 김필곤씨가 섬유에 대해선 문외한이었다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출처 <위키백과> ‘이태리타월’)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이미 세상을 떠나, 어느 것이 진실인지 영영 알 수 없게 됐다.

이태리타월은 출시되자마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1973년 5월 16일자 <매일경제신문>에 ‘이태리타올은 30원에 거래’라고 나온다. 1974년 2월 서울시 일반인 버스요금이 30원이었으니 지금으로 치면 1200~1300원 정도라고 생각하면 될까. 김필곤씨는 이태리타월 하나 만으로 큰돈을 벌어 부산에 아리랑관광호텔을 지었다. 그야말로 ‘때돈’이다. 참고로 요즘 이태리타월의 인터넷 판매가는 200원 안팎이다.

‘때밀이 수건’ 열풍에 가짜도 속출

돌로 때를 밀던 엄마도 자식들이 태어난 뒤엔 이태리타월을 썼다. “이태리타올로 미니까 때가 줄줄 나오고 힘이 하나도 안 드는 거야. 이게 웬일인가 싶었지” 하지만 단점이 있었으니 아쉽게도 너무 빨리 해어지고 찢어진다는 것이다. “도저히 쓸 수 없을 때까지 썼어. 뭐든 구멍 났다고 버리던 시절이 아니니까” 급기야 서울에 사는 김경례씨가 <동아일보> ‘독자가 만드는 독자란’에 이 문제를 지적하는 글을 투고했다.

‘목욕을 갈 때마다 매번 이태리타월(때 미는 수건)을 다시 사야 된다. 아빠가 한 번 사용한 수건을 다음번엔 재사용할 수가 없다. 새로 산 타월도 두 딸아이를 밀고나면 한쪽 옆이 삐죽 밀리면서 뜯어지니까 정작 목욕탕에서 때도 깨끗이 씻을 수가 없다. 타월 양옆에 여분을 좀 두고 두세 번 박으면 견고해서 오래 사용이 가능할 텐데도 왜 그렇게 꼭 만들어야 되는지 모르겠다’(1983.5.21.)

아마도 너도나도 이태리타월을 만들게 되면서 생긴 문제가 아닐까 싶다. 이태리타월의 특허권이 1976년 소멸해 이후부턴 누구든 이 물건을 만들 수 있게 됐다. ‘송월타월’ 등 수백 개의 업체가 때밀이 수건 사업에 참여했다.(<경향신문> 1997.2.19.) 하지만 특허권이 풀리기 3년 전인 1973년에도 이미 ‘가짜’ 이태리타월이 시중에 돌아다니고 있었다.

목욕탕 주인인 서울 성북구의 김봉자씨가 ‘한국부인회 소비자보호부 불만의 창구’에 이를 고발한 내용이 <경향신문>(1973.1.30.)에 실렸다.

‘목욕탕을 경영하는 김씨는 지난 22일 동네잡화상에서 실용신안3785호로 등록된 한이직물교역공사(한일직물) 제품인 이태리타월 20장들이 1세트를 600원에 구입했는데 4장마다 1장이 엉터리였다는 것. 이 엉터리 제품은 비스코스사가 덜 들어서인지 깔깔한 맛이 없어 때도 잘 밀어지지 않았으며 색깔 규격 등이 진짜와 다르더라는 것. 이에 대해 <이태리 타월> 메이커인 한이직물교역공사 측은 “한국부인회에 보관된 고발품이 자기네 제품과는 전혀 다른 가짜”라고 해명했다. 동 회사는 단가를 낮게 매긴 유사품이 나돌고 있다면서 이 회사에서는 유사품 근절에 힘을 써왔다고 말했다’

아직도 이태리타월을 쓰는 엄마

이태리타월은 정말 대단한 물건이다. 우리나라를 ‘때 미는 문화’를 가진 세계 유일한 나라로 만들었으니 말이다. 요즘은 예전처럼 온 몸의 때를 박박 밀고 사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나도 이태리타월을 안 쓴 지 10년이 넘었다. 가끔 인견천으로 만든 부드러운 때수건을 쓰기도 하지만 아주 드문 일이다. 비누칠을 하고 헹구면 끝. 이게 ‘서양식 샤워’인 줄 알았더니 사실 이태리타월이 나오기 전엔 우리도 다 그렇게 살았다. 물론 횟수의 차이는 크지만 말이다. 어쩌면 서양인들도 100년 전엔 지금처럼 목욕을 자주 못했을지 모른다. 누가 아나? 그 시절엔 그들 역시 손으로 때를 밀었을지.

엄마는 아직 이태리타월을 쓴다. 어쩌다 엄마 집에 가면 등과 옆구리를 싹 밀어드리기도 하지만 이건 정말 극히 드문 일이다. 벌겋게 된 엄마 등을 보고 있자면, 내 살이 다 쓰린 듯하다. 엄마는 개운하고 시원하기만 하단다.

요즘도 차가운 계절이 오면 이태리타월로 때를 심하게 밀지 말라는 기사가 어김없이 실린다. ‘때 미는 문화’ ‘때 미는 나라’라는 수식어는 언제까지 존재할까. 이쯤에서 궁금해진다. 당신이 때를 마지막으로 민 건 언제인가요?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