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전, 한 블로그 이웃이 쿠킹클래스를 연다는 공지를 올렸다. 요리 주제는 세 가지 김밥 만들기. 김밥이라면 너무 흔한데 굳이 강습까지 받아 배울 필요가 있는지 의아할지 모르겠다.

나는 김밥이야 말로 요리 초보생은 범접하기 어려운, 고수들 세계의 요리라 생각한다. 분식집에서 “아줌마 김밥 두 줄이요” 하고 외치면 5분도 안 돼 뚝딱 포장까지 해서 나오니 김밥을 패스트푸드 정도로 여기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하지만 김밥이란 절대 그런 것이 아니다.

평범한 김밥엔 단무지, 계란, 당근, 오이, 시금치, 햄이 들어간다. 우엉조림이나 어묵이 들어가기도 한다. 계란을 풀어 프라이팬을 예열해 지단을 두껍게 부친다. 불 조절이 핵심이다. 불이 너무 세거나 기름을 너무 많이 두르면 지단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이는 깨끗하게 씻고 길쭉하게 썰어 씨를 도려내 소금에 살짝 절인다.

▲ ⓒ심혜진.
당근은 껍질을 벗겨 얇게 채를 썬다. 아마 초보자들은 이 부분에서 당근을 집어던지고 싶은 마음이 솟아오를 것이다. 단단하고 물기가 적은 당근을 얇게 채 써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채칼을 사용하면 시간이 단축도 되지만 이 역시 마냥 쉬운 건 아니다. 요령이 필요하다. 채 썬 당근은 기름 두른 팬에 살짝 볶는다. 그리고 시금치는 먼저 누런 잎을 다듬고 물에 담가 마른 흙을 불린 뒤 흔들어 씻는다.

끓는 물에 소금을 넣고 살짝만 데친다. 찬물에 헹궈 참기름, 소금을 넣고 나물을 만든다. 어묵은 채 썰어 볶고, 햄은 프라이팬에 살짝 굽는다. 우엉까지 조리려면 시간이 너무 많이 드니 과감하게 김밥용으로 만들어진 것을 사용한다.

이에 앞서 밥을 해놓아야 한다. 밥은 질면 안 된다. 평소보다 적게 물을 잡아 밥을 한 뒤 따뜻할 때 소금과 참기름, 통깨를 넣고 섞어 습기를 날린다. 식지 않게 두어야 김밥을 만들 때 밥이 잘 펴지고 말았을 때도 흐트러지지 않는다.

드디어 재료 준비가 끝났다. 김밥을 말고 썰었다고 노동이 끝난 게 아니다. 잔뜩 쌓인 설거지거리와 음식물 쓰레기, 그리고 온갖 비닐봉지들이 널려있다. 남은 재료는 따로 담아 뒀다가 어떻게든 처리해야한다. 단정하고 예쁜 김밥 한 줄에는 이 모든 노동이 집약돼 있다. 경험해보지 않은 이에겐 결코 보이지 않는 노동이다. 힘들게 일한 시간에 비해 먹는 것은 순식간이라 허무하기 그지없다.

이렇게 대규모 노동이 필요한 김밥이 어쩌다 즐거운 소풍의 메인메뉴가 된 걸까. 누군가의 즐거움에 고된 노동이 뒷받침돼야할 이유가 대체 뭐냔 말이다. 게다가 그 노동은 왜 모두 엄마들 차지인지. 엄마들이 머리에 띠 두르고 ‘즐거운 소풍날 김밥이 웬 말이냐, 김밥 도시락 반대한다’는 시위 한 번 하지 않았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쿠킹클래스를 신청했다. 화려한 김밥 따윈 내 관심사가 아니다. 나는 세 가지 김밥 중 쥐포김밥을 배우고 싶었다. 김밥에 쥐포가 들어가는 것도 신기한데 단무지와 미나리, 쥐포만으로 ‘마약김밥’이라 불리는 맛있는 김밥을 만들 수 있다니, 그 맛과 만드는 법이 무척 궁금했다. 김밥을 좋아하면서도 어마어마한 노동에 짓질려 웬만해선 김밥 만들 엄두를 내지 못하는데 이렇게 간단하게 만들어 먹을 수 있다면 좋겠다 싶었다.

강사에게 폐가 안 되는 선에서 최대한 정보를 공유하자면 쥐포김밥에 들어가는 단무지는 압착 단무지다. 웬만한 마트에서 다 구할 수 있다. 압착 단무지를 잘게 채 썰고 미나리는 살짝 데쳐 물기를 살짝만 짠 뒤 잘게 썬다. 쥐포는 가위로 가늘게 잘라 프라이팬에 볶는다. 단무지, 미나리, 쥐포에 매운 고춧가루, 참기름, 통깨를 넣고 버무리면 속 재료 준비는 끝.

일반 김밥 만드는 것에 비하면 간단하지만 쥐포를 자르고 단무지를 채 써는 데 시간이 꽤 걸리고 손목도 아팠다. 맛은 엄지 척! 재료와 양념 비율을 함부로 공개할 수 없어 아쉽다. 하지만 각자 취향에 맞게 만들어먹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세상의 모든 김밥에 정해진 레시피는 없으니 말이다. 단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온갖 노동의 집합체라는 것 아닐까. 김밥, 함부로 먹지 말지어다.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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