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전, 한 블로그 이웃이 쿠킹클래스를 연다는 공지를 올렸다. 요리 주제는 세 가지 김밥 만들기. 김밥이라면 너무 흔한데 굳이 강습까지 받아 배울 필요가 있는지 의아할지 모르겠다.
나는 김밥이야 말로 요리 초보생은 범접하기 어려운, 고수들 세계의 요리라 생각한다. 분식집에서 “아줌마 김밥 두 줄이요” 하고 외치면 5분도 안 돼 뚝딱 포장까지 해서 나오니 김밥을 패스트푸드 정도로 여기는 사람도 많은 것 같다. 하지만 김밥이란 절대 그런 것이 아니다.
평범한 김밥엔 단무지, 계란, 당근, 오이, 시금치, 햄이 들어간다. 우엉조림이나 어묵이 들어가기도 한다. 계란을 풀어 프라이팬을 예열해 지단을 두껍게 부친다. 불 조절이 핵심이다. 불이 너무 세거나 기름을 너무 많이 두르면 지단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오이는 깨끗하게 씻고 길쭉하게 썰어 씨를 도려내 소금에 살짝 절인다.
당근은 껍질을 벗겨 얇게 채를 썬다. 아마 초보자들은 이 부분에서 당근을 집어던지고 싶은 마음이 솟아오를 것이다. 단단하고 물기가 적은 당근을 얇게 채 써는 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채칼을 사용하면 시간이 단축도 되지만 이 역시 마냥 쉬운 건 아니다. 요령이 필요하다. 채 썬 당근은 기름 두른 팬에 살짝 볶는다. 그리고 시금치는 먼저 누런 잎을 다듬고 물에 담가 마른 흙을 불린 뒤 흔들어 씻는다.
끓는 물에 소금을 넣고 살짝만 데친다. 찬물에 헹궈 참기름, 소금을 넣고 나물을 만든다. 어묵은 채 썰어 볶고, 햄은 프라이팬에 살짝 굽는다. 우엉까지 조리려면 시간이 너무 많이 드니 과감하게 김밥용으로 만들어진 것을 사용한다.
이에 앞서 밥을 해놓아야 한다. 밥은 질면 안 된다. 평소보다 적게 물을 잡아 밥을 한 뒤 따뜻할 때 소금과 참기름, 통깨를 넣고 섞어 습기를 날린다. 식지 않게 두어야 김밥을 만들 때 밥이 잘 펴지고 말았을 때도 흐트러지지 않는다.
드디어 재료 준비가 끝났다. 김밥을 말고 썰었다고 노동이 끝난 게 아니다. 잔뜩 쌓인 설거지거리와 음식물 쓰레기, 그리고 온갖 비닐봉지들이 널려있다. 남은 재료는 따로 담아 뒀다가 어떻게든 처리해야한다. 단정하고 예쁜 김밥 한 줄에는 이 모든 노동이 집약돼 있다. 경험해보지 않은 이에겐 결코 보이지 않는 노동이다. 힘들게 일한 시간에 비해 먹는 것은 순식간이라 허무하기 그지없다.
이렇게 대규모 노동이 필요한 김밥이 어쩌다 즐거운 소풍의 메인메뉴가 된 걸까. 누군가의 즐거움에 고된 노동이 뒷받침돼야할 이유가 대체 뭐냔 말이다. 게다가 그 노동은 왜 모두 엄마들 차지인지. 엄마들이 머리에 띠 두르고 ‘즐거운 소풍날 김밥이 웬 말이냐, 김밥 도시락 반대한다’는 시위 한 번 하지 않았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쿠킹클래스를 신청했다. 화려한 김밥 따윈 내 관심사가 아니다. 나는 세 가지 김밥 중 쥐포김밥을 배우고 싶었다. 김밥에 쥐포가 들어가는 것도 신기한데 단무지와 미나리, 쥐포만으로 ‘마약김밥’이라 불리는 맛있는 김밥을 만들 수 있다니, 그 맛과 만드는 법이 무척 궁금했다. 김밥을 좋아하면서도 어마어마한 노동에 짓질려 웬만해선 김밥 만들 엄두를 내지 못하는데 이렇게 간단하게 만들어 먹을 수 있다면 좋겠다 싶었다.
강사에게 폐가 안 되는 선에서 최대한 정보를 공유하자면 쥐포김밥에 들어가는 단무지는 압착 단무지다. 웬만한 마트에서 다 구할 수 있다. 압착 단무지를 잘게 채 썰고 미나리는 살짝 데쳐 물기를 살짝만 짠 뒤 잘게 썬다. 쥐포는 가위로 가늘게 잘라 프라이팬에 볶는다. 단무지, 미나리, 쥐포에 매운 고춧가루, 참기름, 통깨를 넣고 버무리면 속 재료 준비는 끝.
일반 김밥 만드는 것에 비하면 간단하지만 쥐포를 자르고 단무지를 채 써는 데 시간이 꽤 걸리고 손목도 아팠다. 맛은 엄지 척! 재료와 양념 비율을 함부로 공개할 수 없어 아쉽다. 하지만 각자 취향에 맞게 만들어먹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세상의 모든 김밥에 정해진 레시피는 없으니 말이다. 단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온갖 노동의 집합체라는 것 아닐까. 김밥, 함부로 먹지 말지어다.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심혜진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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