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동희 극작가
밤낮을 가리지 않는 폭염에 하염없이 지치는 날들이다. 긴 가뭄 끝에 찾아온 장마조차 더위를 식히기는커녕 지역과 시간을 특정한 듯이 무자비하게 집중해서 쏟아대고는 그 자리를 다시 폭염에 내줬다. 누진제를 바꾸었다고는 하지만 마음대로 냉방기를 틀어 몸을 식히기에는 여전히 전기세 걱정이 앞서 이래저래 뜨거운 여름이다.

그런 와중에 잘나신 어느 도의원 덕분에 느닷없이 레밍이 되기도 했고, 밥하는 아줌마가 어머니를 의미한다는 국회의원의 설명에, 그동안 우리말을 너무 모르고 살지 않았는지 되짚어보며 여름의 한가운데를 꾸역꾸역 버텨내고 있다. 늘 지금 겪는 일이 젤 큰일인 듯싶어 작년보다 올해가 몇 배나 뜨거운 거 같으니 내년은 또 얼마나 무서울지 엉뚱한 오지랖을 넓게 펼쳐본다.

더위가 정점에 있으니 바야흐로 휴가철이다. 무더위를 피해 바다로 계곡으로, 또 해외로 휴가를 떠나고 오느라 고속도로와 공항이 부산하다. 쉬는 일이 올해 여름처럼 의미를 지닌 적이 있었는가, 혹은 그동안 제대로 쉬기는 했는가, 생각해보는 요즈음이다.

때를 같이해서 휴가객들을 불러 모으는 곳이 극장이다. 올해는 우리 민중들이 겪었던 아픈 역사를 스크린으로 살려낸 영화 두 편 ‘군함도’와 ‘택시운전사’가 개봉과 동시에 화제를 모은다. 1000만 관객을 예견하며 우리 영화의 성공을 이어갈 작품이라는 기대가 큰 작품들이다. 영화 감상이나 평가는 보는 이에 따라 다양할 터이다.

하지만 스크린 독점은 생각해볼 일이다. ‘군함도’가 개봉 첫날 99만명을 웃도는 관객을 확보하는 신기록을 세우고 매출액 71%를 쓸어 담는 성공(?)을 거둔 까닭이 제작진과 출연진, 작품내용 등 여러 흥행요소를 잘 버무린 결과라고 엄지를 척 올려주기에는 주저함이 크다.

자본의 힘을 앞세운 스크린 독점으로 전국의 어느 극장에서도 ‘군함도’가 아닌 다른 영화를 보기가 어려운 기형적 구조에서 작품의 매력이나 기대에 끌린 성공이라고 할 수 있을까? 전국 스크린 2500여개 가운데 2027개를 싹쓸이한 ‘군함도’의 배급과 상영을 놓고 오죽하면 동종업계의 한 영화감독이 ‘독과점을 넘은 광기’라며 ‘부끄러움을 알라’고 일갈했을까 싶다.

‘군함도’의 스크린 독점을 보면서 몇 해를 이어온 한국 영화의 성과들이 결국엔 자본의 논리와 입맛에 맞춰지는 게 아닌가, 걱정스럽다. 영화의 본질보다 자본의 본질을 마주하는 게 적잖이 불편하다.

정작 영화의 완성도나 작품성보다 거대한 자본의 위세로 연출을 비롯한 제작진과 스타 배우를 위시한 출연진, 게다가 전국의 스크린을 모조리 휘어잡는 저급한 자본의 욕망을 마냥 허둥대며 쫓아오게 미혹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장르를 불문하고 문화예술은 다양성이 충분히 존중돼야하고, 또 오래 가야 절로 멋이 난다. 관객들이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은 토대 위에서 좋은 문화와 예술이 생겨난다. 내가 다 가지는 것보다 함께 나눌 때 궁극으로 모두 더 큰 걸 얻을 수 있다. 운동장을 독차지하고 혼자 달려서 1등을 해본들 누구에게서 박수를 받겠는가. 두어 달 후에나 ‘군함도’를 볼 작정이다.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