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꽃 (17)

노동으로 흘린 땀이 마른 자국이 마치 꽃과 같아 소금꽃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예비)노동자들이 시민기자로 참여해 노동 현장이나 삶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십몇 년 전만 해도 기차여행은 청춘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여름이면 무리를 지어 여행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고, 특히 강촌 가는 기차는 그런 사람들로 버글댔다. 게임과 노래를 즐겼고, 입이 심심해지면 삶은 계란과 과자를 꺼내먹었다. 뭔가 부족할 때면 주전부리 가득 실은 카트가 나타나 부족함을 채워주곤 했다.

그 추억을 다시 느껴보기 위해 또래친구들과 기차여행을 했다. 간 곳은 정동진역. 청량리에서 다섯 시간 반. 추억을 느끼는 것치곤 좀 긴 듯하지만, 오랜만에 만난 무궁화호 덕에 반가운 마음으로 기차에 올랐다.

오전 9시 10분. 기차는 출발했지만 예전의 그 시끌벅적하고 들뜬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저 자거나 이어폰을 끼고 스마트폰만 쳐다보고 있었다. 잠깐 눈을 붙였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원주역이었다.

소란스러운 소리에 눈을 떴는데, 승객 대부분이 내리고 있었다. 기차는 다시 속도를 높였다. 이쯤 되면 카트가 와야 했는데 아무 소식이 없었다. 한참을 기다리다 결국 친구 몇 명과 식당 칸 자판기로 갔다. 식당 칸으로 가는 동안 차량 네 개를 지나왔지만, 카트의 흔적은 없었다. 아마도 장사가 안 돼 이제는 운영하지 않는 것 같았다. 소중한 추억 하나가 또 사라져버렸다.

자판기에서 간식을 먹고 왔는데도 도착까지 아직 두시간이나 남았다. 결국, 의자를 돌리고 마주앉아 우리끼리 게임을 하기로 했다. 소리를 크게 낼 수 없어 흥이 나진 않았지만 지루함을 달래기엔 충분했다.

세계에서 바다와 가장 가까운 기차역 정동진. 저 멀리 고요한 수평선과 가까워질수록 더 크게 일렁이는 바다, 넓게 펼쳐진 모래사장과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 그 모래사장과 맞닿은 기차역과 그곳에서 수평선을 바라보는 사람들. 참 멋진 곳이었다. 그런데 배가 너무 고팠다. 거의 여섯 시간 동안 과자와 음료수밖에 못 먹어 배에서 밥을 달라고 야단이었다. 빠르게 인증사진 몇장 찍고 근처 음식점으로 들어가 점심을 먹었다. 배를 채우고 막걸리 한 사발도 하니 몸이 늘어졌다.

1박 2일 짧은 여행이다 보니 한가하게 있을 시간이 없었다. 바로 허난설헌기념관을 구경하고, 유명하다는 커피거리의 어느 커피숍 3층에서 수다를 떨었다. 기념관에서부터 오던 비는 저녁 무렵이 돼서야 그쳤다. 비 때문에 제대로 돌아다니지도 못했는데 벌써 7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한 일도 없는데 배는 왜 자꾸 고픈지, 감자 옹심이 집을 찾아 저녁을 먹고 숙소에 들어왔다.

이제 뒤풀이다. 시원한 맥주부터 한 모금 하고, 기차에서 눈치 봐가며 했던 게임을 이어갔다. 뭐라고 할 사람 없으니 크게 웃고 떠들 수 있었다. 웃고 떠들고, 나름 진지한 얘기도 나누고 나니 슬슬 술이 떨어져갔다. 대강 자리를 정리하니 새벽 2시. 평소 같으면 하나둘 쓰러져야했는데 희한하게 다들 멀쩡했다.

그냥 자기엔 뭔가 아쉬운 듯해 5분 거리의 바닷가를 구경하러 갔다. 가는 길목에 술집들이 여럿 있었는데 여행지라 그런 것인지, 아니면 우리처럼 아쉬움을 채우기 위한 것인지, 술집의 빈자리는 점점 줄어들었다. 술집들을 지나 어둑한 거리를 가로지르니 바로 경포 해수욕장. 모래사장 여기저기 젊은 무리가 모여 있었다.

큼직한 앰프를 가져와 노래를 틀어 놓고 춤을 추는 무리, 그 옆에서 리듬을 타며 구경하는 무리, 조금 떨어진 곳에선 진지한 듯 술잔을 기울이는 무리까지, 새벽 두시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많은 사람이 나와 있었다.

바닷가에 왔으니 물이라도 적셔야한다며 가위 바위보를 해서 진 사람이 파도가 들어올 때 물 위에 누웠다 나오는 게임을 했다. 물에 빠진 생쥐 꼴로 숙소에 들어왔다. 씻고 나니 새벽 4시. 우리가 뭘 한 거지 하는 생각 조금 허탈하기도 했지만, 오랜만에 만난 젊은 에너지에 새로운 추억 하나를 얻은 것 같아 기분 좋게 잠이 들었다.

/김진수 시민기자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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