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람] 이광범 조각가

인천 동구 화수동에 있는 집에 작품 1600여점이 있다는 조각가 이광범씨를 지난달 31일 만났다. 나무줄기나 뿌리의 원형을 살려 조각한 독수리와 올챙이 등 다양한 동물에서부터 티라노사우르스 등 공룡들과 태권V 등 만화영화 주인공까지, 작가의 상상력은 끝이 없어 보였다. 갤러리 같기도, 박물관 같기도 한 그의 집에서 작품을 감상하며 인터뷰를 했다. 작품에 담긴 사연까지 덤으로 듣느라 시간가는 줄 몰랐다.

등산객이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진 게 계기돼

▲ 자신이 가장 아끼는 작품 앞에 선 이광범 조각가.
전라남도 나주가 고향인 이씨는 1994년 인천으로 와 동구 화수동에서 24년째 노래방을 운영하고 있다. 노래방에 밤낮없이 갇혀있다시피 사느라 체중이 100kg에 육박하고 고지혈증 등 성인병도 생겨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인천에 있는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18년 전부터 등산을 시작했어요.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스트레스로 인한 질환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때부터 청량산ㆍ문학산ㆍ계양산ㆍ소래산 등, 인천에는 안 가본 산이 없습니다. 처음에는 무의미하게 산만 탔는데 8년 전부터 의미 있는 산행이 됐습니다”

지금은 작품을 위한 재료를 찾기 위해 열심히 산에 오른다. 이 작가는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도 관심 분야가 다르면 그 분야의 것이 유독 잘 보인다고 덧붙였다.

“예전에 이른 아침에 문학산에 오른 적이 있어요. 어느 분이 영지버섯 큰 걸 두 개나 캤더라고요. 나도 눈을 부릅뜨고 산 여기저기를 봤어도 버섯을 본 적은 없거든요. ‘내가 나무뿌리만 보이는 것처럼 심마니는 그것만 보이는 구나’라고 생각했죠”

이 작가에겐 언제부터, 나무뿌리가 그토록 소중했을까?

“8년 전에 연수구에 있는 청량산에 간 적이 있어요. 내 앞에 가던 아주머니 한 분이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져 다쳤어요. 다른 사람도 다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다음날 톱을 가져와 잘랐어요. 잘린 뿌리를 보니까 용이 승천하는 형상이더라고요. 조금 손을 대면 진짜 용이 승천하는 모양의 작품을 완성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호기심으로 조각을 했습니다”

8년 전, 이 작가의 처녀작은 그렇게 탄생했다. 용의 발과 발톱이 닭발 같기도 하는 등, 지금 보면 많이 부족한 작품이지만 이것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해 애착이 많이 간다고 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작품을 더 섬세하게 만들자는 각오도 생긴단다.

그렇게 꾸준히 취미생활로 조각하던 그는 어느 날 티브이에 출연하면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지상파 방송 3사에 모두 출연, 매스컴의 힘 느껴

인천에 온 후 20여 년간 노래방이 있던 건물 2층에서 살던 그는 몇 년 전 같은 동네에 있는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집들이 겸 같은 라인에 사는 이웃들과 인사할 생각으로 집에 초대해 식사한 적이 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SBS> ‘세상에 이런 일이’에 제보해 방송에 출연했다.

“우리 집에 와서 보더니 이런 별천지가 있었냐고 깜짝 놀라더라고요. 며칠 후에 만났는데 방송국에 제보했다고 알려주더라고요. 그리곤 방송국에서 연락이 왔죠”

2013년 8월 8일 ‘세상에 이런 일이’ 754회에 방영됐다. 8년 전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해 그때가 3년째였고, 작품 500여점이 집에 있을 때였다. 당시는 하루에도 두어 작품을 완성할 정도로 빠져 살았을 때였다.

그 후 <KBS> ‘생생정보’와 <MBC> ‘생방송 오늘 저녁’, <OBS> ‘이것이 인생’에도 출연했다. 2014년 4월에는 일본 케이블방송인 <MONDO>에도 출연했다. 처음에는 그가 살아온 인생에 초점을 맞췄다면, 지난해 방영한 <MBC> 프로그램에선 그의 작품이 많이 소개됐다. 지난해 12월엔 CJ헬로비전 ‘명물인생’ 코너에 출연했다.

“처음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오고 놀랐어요. 며칠 후 청량산에 갔는데 사람들이 방송에 나온 사람 아니냐고 묻더라고요. 한번은 산악회 회원들과 안양 쪽으로 해서 관악산에 갔는데 등산객 한 명이 방송에서 봤다며 알은체를 하더라고요. 같이 간 산악회 형도 놀라더라고요. 매스컴이 무섭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그의 집과 그가 운영하는 노래방에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온 영상 장면 몇 개를 현수막으로 만들어 걸어뒀다.

작품 만들 때 기대감과 희열이 좋아

▲ 이광범 작가의 작품은 집안 곳곳에 있다. 부엌에 전시된 작품들.
우연히 용 모양의 나무뿌리를 보고 조각을 시작했다는 이 작가에게는 그보다 더 깊은 나무와의 인연이 있다.

전남 나주의 한 시골에서 3남 1녀 중 첫째로 태어난 그는 보일러가 없어 나무로 난방해야 했기에 소년시절 방과 후에 땔감으로 사용할 나무를 챙기러 산에 다녔다. 괴기하게 생긴 나무나 뿌리 등을 지게에 싣고 집으로 가져와 껍질을 벗겨 마당에 두면 동네 어른들이 손재주 있다고 칭찬했다.

“중학교 1학년 다닐 때였나? 아버지 친구 중 한 분이 용돈을 주고 사가셨어요. 진달래 뿌리가 얽혀있던 거였는데 작품이라고 생각하셨나봐요”

이 작가는 어릴 때 그림에도 소질이 있었다고도 했다. 초등학교 때 만화를 접하고 무심결에 그렸는데 비슷하게 그렸다. 한번 빠지면 집착하는 습성이 있는 그는 한동안 밤새 원본을 따라 그림을 왕창 그렸다. 이 작가의 모친은 그의 그림을 보며 혀를 차면서 다음날 불쏘시개로 사용했다.

“저는 뭔가에 빠지면 해도 해도 질리지가 않아요. 작품도 그렇게 만들었어요. 8년간 작품 1600여점을 만들었습니다. 어떤 작품이 나올까라는 기대감과 완성됐을 때의 희열은 안 해본 사람은 몰라요. 내 생각대로 작품이 나올 땐 정말 즐겁습니다”

광주와 목포에서 학교를 다닌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그의 아버지와 함께 몇 년간 소를 키웠다. 그러다 소 파동으로 힘든 시절을 겪기도 했다. 사회생활을 경험하고 싶어 고향에서 만난 아내와 1993년 서울로 왔고 이듬해 결혼했다.

소만 키우며 살다 서울서 처음으로 얻은 직장에선 돈을 떼이기도 하는 등, 쉽지 않은 일도 겪으며 인생 공부를 한 이 작가는 1994년 인천에 정착하는 동시에 노래방을 열었다. 당시 빚이 1억원이 있어 정말 열심히 살았다. 3년 만에 빚은 다 갚았지만 대신 불규칙한 생활로 건강에 빨간 불이 켜졌다.

이 작가의 작업 공간은 노래방 복도 한 쪽에 있는 책상이다. 노래방에서 작업해 완성하면 집에 보관한다. 노래방 위 2층에 살 땐 집이 좁아 식구들이 본의 아니게 부러뜨리는 경우가 있었는데 자식 같은 작품이 부러지면 참을 수 없었다고 했다.

“작업을 하면서 응급실에 네 번이나 실려 갔어요. 커터 칼로 작업하는데 칼에 베이기도 하고 나무뿌리에 다쳐 열두 바늘을 꿰맨 적도 있어요. 그런데 실밥을 풀면 어느 순간 내 손에 또 커터 칼이 잡혀있더라고요. 중독인거 같아요”

자연존중 사상의 원칙으로 작업에 임해

▲ 8년 전 만든 첫 작품. 이광범 조각가는 지금 보면 많이 부족하지만 애착이 많이 간다고 했다.
이 작가는 부인이 반대했다면 작품 활동을 계속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하며 부인과 아이들한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처음엔 아내가 반대했죠. 여자들은 깔끔하고 아기자기한 걸 좋아하는데 나무뿌리로 조각한 곤충이나 온갖 동물들이 집안 곳곳에 있으니까 좋아할 리가 없죠.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지도 않더라고요. 그러다 내 작품을 인정하기 시작했어요. 지난해 한국미술협회 인천시지회가 주최한 인천시미술대전에 참가해 입선하고 왔을 때부터 인 거 같아요. 작품성이 있다고 인정한 거죠. 아직도 제 작품을 징그러워하긴 해요. 집안 여기저기에 눈만 뜨면 공룡이 이빨을 드러내거나 뱀이 혀를 날름대는 걸 거 봐야 하니까요. 나는 내 자식 같은데, 아내와 자식은 싫어합니다. 그래도 작품을 완성하면 아내한테 제일 먼저 보여줘요. 부족한 거 같으면 피드백을 주는데, 무진장 힘이 돼요. 지금까지 살면서 단둘이 여행을 간 적도 없어 많이 미안하죠”

2~3일에 하나씩 작품을 꾸준히 완성하는 이 작가는 소박하면서도 원대한 꿈을 꾸며 그걸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다. 갤러리나 박물관을 만드는 꿈이다.

“노래방을 정리하고 3층짜리 건물에 갤러리를 만들고 싶어요. 1층과 2층은 카페나 음식점으로 사용하고, 3층은 내 작품이나 작품성은 있지만 돈이 없는 작가들에게 대관료 없이 무료로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싶습니다. 내 작품에는 다양한 동물이 많은데 곤충전, 공룡전 등 작품 종류에 따라 여러 전시를 하고 싶습니다”

그는 갤러리에 만족하지 않고 좀 더 원대한 꿈도 품고 있다. 제주도에 뿌리 박물관을 건립하는 게 그것이다.

“지금 당장은 아니고요. 평생 놀지 못하고 일만 했으니까 노후에 제주도에 정착하면서 내가 만든 작품을 다 갖고 가 박물관을 세우려는 거죠. 물론 갤러리나 박물관 건립을 돈을 목적으로 하진 않아요. 스트레스 덜 받으면서 사람들과 소통하는 공간을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

이 작가는 빠르면 3시간 만에 한 작품을 만들기도 하지만 대작은 6개월이 걸리기도 하는데, 작품에 어울리는 나무를 구하려면 그만큼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좋은 재료를 얻기 위해 산 구석구석을 돌아다닙니다. 내게 원칙이 있어요, 절대로 살아있는 나무는 재료가 좋아도 얻지 않는다는 거죠. 두 번째는 최대한 나무 본래의 모습을 변형하지 않는 겁니다. 가공보다는 굴곡 등을 살리는 건데 자연존중 사상을 나름대로 원칙으로 세워 작업하고 있습니다”

이 작가는 언젠가 작품 활동을 하고 난 후 이렇게 소회를 밝힌 걸 메모로 남긴 적이 있다.

‘죽음의 시간 그리고 또 다른 생명의 탄생, 죽은 나무뿌리에서 동물이나 곤충의 캐릭터와 형상을 잡아서 깎고 다듬고 붙여 다양한 생명체를 만들어내는 게 내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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