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현석 인천민속학회 이사
8월 12일, 일제강점기 징용노동자상 제막식이 부평공원에서 열린다. 부평공원은 미쓰비시제강 인천제작소가 있던 곳이고, 길 건너 미군기지는 일본육군조병창 터다. 공원 한쪽에 이미 평화의 소녀상이 자리를 잡고 서 있다. 조병창 터를 응시하며 주먹을 불끈 쥐고 있는 소녀상 바로 옆에 징용노동자상이 들어선다.

소녀상은 홀로 서 있는데 징용노동자상은 둘이다. 불안한 표정의 어린 소녀가 노동에 지친, 하지만 결의 가득한 눈빛의 아버지를, 두 팔로 붙잡고 있는 형상이다. 인천의 징용노동자상이 두 명인 데에는 이유가 있는데, 인천은 성별과 세대를 떠나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이 광범위하게 일어난 지역이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해 조선에서 그런 경험을 겪은 곳이 인천뿐이겠는가. 인천시민들이 인천의 징용노동자상은 군중의 모습이어야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라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시민들의 믿음이 일제강점기 강제동원을 두 명의 인물상으로 표현했다는 건 꽤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단순한 예술 작품에 머물게 하지 않고 군중의 기억을 한 곳으로 모아 현장의 역사로 재탄생시켰기 때문이다. 징용노동자상 설립운동 과정을 되짚어보면 그런 의미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징용노동자상은 인천에만 세우는 것이 아니다. 서울·부산·제주 등 전국에서 추진위원회가 발족해 설립운동을 본격화하고 있다. 차후에는 평양에 설립할 계획도 구상하고 있다. 징용노동자상 설립운동의 역사는 2014년부터 시작한다. 우키시마호 징용희생자 위령제를 아무 연고도 없는 일본 현지 주민들이 지내왔다는 사실을 한국의 노동자들이 알고 충격을 받았다. 우리는 무엇을 했는가? 징용노동자상 설립운동은 이 질문에서 시작했다.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그리고 이 질문을 곱씹는 중이다.

뼈아픈 반성 속에서 2016년 일본 단바 광산에 징용노동자상이 건립됐다. 광산 희생자들과 한국의 노동자들, 현지 주민들, 교포들의 뜻이 모인 결과다. 지금의 국내 징용노동자상은 그러한 운동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런데 왜 동상일까. 아픈 기억을 예술적 아름다움으로 승화하기 위해서일까. 그런 측면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으나 일제강점기 징용노동자상은 그런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동상은 기억의 공간일 뿐이다. 우리는 징용노동자상이 서 있는 공간에서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그런 기억들을 공유한다. 그리고 지금 노동자들은 어떠한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게 될 것이다. 아이들과 그런 이야기들을 나누고 아이들은 다시 다음 세대에 또 전할 것이다.

‘군함도’란 영화가 인기를 얻으면서 덩달아 징용노동자상도 언론에 자주 오르내린다. 분노하되 냉정은 버리지 말고, 슬퍼하되 사실을 왜곡하지 말아야한다. 인천의 징용노동자상은 인천시민들과 단체들의 뜻이 모여 가능했던 것이다.

동상이 주목받아야하는 이유는 동상을 세우고자하는 시민과 단체들의 ‘마음’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천의 강제동원 실태 조사는 앞으로 과제다. 동상은 누가 세우는가? 시민과 노동자들이다. 지역 언론만이라도 ‘국내 최초’나 ‘일제의 만행’이라는 것으로 타이틀을 뽑거나 작품의 형상에만 주목하지 말고, 그 안에 담긴 시민들의 ‘마음’을 읽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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