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1학년을 마치고 등록금을 모으기 위해 휴학했다. 1년 동안 빵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빵집은 중ㆍ고등학교가 몰려 있는 번화가 중심에 있었다. 사장을 포함해 제빵사, 배달과 주방 담당 직원, 아르바이트생 등 모두 여섯 명이 일하는 규모가 꽤 큰 프랜차이즈 빵집이었다.
당시 환갑이었던 사장은 빵에 대한 열정이 남달랐다. 본사에서 보내주는 굽기 직전 반죽 상태의 빵을 그냥 굽는 법이 없었다. 땅콩가루를 얹든, 시럽을 바르든, 계피가루를 뿌리든, 맛과 향을 끌어올릴 재료를 더해 오븐에 넣었다. 직원들에겐 엄격했지만 박하게 굴지는 않았다. 아르바이트생인 내게도 고용보험을 들어주고 손님이 많아 바빴던 날엔 퇴근길에 큼지막한 빵을 챙겨줬다.
그 지역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빵집으로 자리 잡았고, 시내버스회사와 주변 여러 점포에 빵과 케이크를 납품했다. 직원이 자주 바뀌지도 않았다. 칠순을 바라보는 주방 담당 직원은 이 빵집이 생길 때부터 쭉 함께 일하는 중이었고, 나 역시 대학을 졸업하기 전까지 3년간 틈이 날 때마다 이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오래된 직원 이야기론, 이 빙수엔 사장이 직접 만든 독특한 시럽이 들어간단다. 하지만 아무도 그 성분과 비법을 알지 못한다고 했다. 중독성이 있는 뭔가를 넣은 것이 분명한데 어쩌면 마약일지도 모른다며 목소리를 낮췄다. 곧이곧대로 믿어도 좋을 만큼 독특하고 오묘한 것이 무척 끌리는 맛이었다.
드디어 개시 날. 빵집은 도떼기시장이 됐다. 아침부터 빙수 배달 주문 전화가 쉴 새 없이 걸려왔다. 빙수를 먹고 가려는 사람들이 빵집으로 밀려 들어왔다. 대부분 오래된 단골인 듯했다. 밤새 커다란 제빙기 가득 얼음을 얼려도 오후가 되면 동이 났다. 얼음을 사다가 제빙기에 쏟아 부었지만 얼음은 계속 부족했다. 나는 정신없이 빙수를 나르고 탁자를 치웠다. 월급날 사장님이 특별 휴가비를 챙겨줬다.
그해 11월 IMF 외환위기가 터졌다. 빵집에 손님이 확 줄었다. 여름에 미리 주문을 넣어두었던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절반도 팔지 못했다. 케이크는 썩어 나갔고, 사장은 담배를 자주 물었다.
IMF만 문제가 아니었다. 사람들은 예전만큼 빵과 우유를 먹지 않았다. 빵집 건너편 넓은 매장엔 유명한 햄버거 가게와 국내 최대 피자집이 들어섰다. 도넛가게도 새로 문을 열었다. 사장은 타개책을 찾기 위해 근처 가게를 얻어 케이크와 커피를 함께 판매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그곳엔 이미 피자뷔페가 개장을 앞두고 있었다. 궁여지책으로 큰 케이크를 잘라 조각으로 나눠 팔았지만 반응은 시원찮았다. 사람들은 조각케이크를 영 낯설어했다. 아직 케이크는 기호식품이라기보다 특별한 날을 기념하는 행사용에 가까웠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주변 학교들이 하나 둘 신도시 쪽으로 이전하기 시작했다. 그곳은 이제 ‘구도심’으로 불리게 됐다.
빵집은 그곳에서 10년을 더 버텼다. 그 사이 사장은 백발의 할아버지가 됐다.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친 또 다른 프랜차이즈 빵집에 밀려, 결국 얼마 후 문을 닫았다.
언제부턴가 거의 모든 카페에서 조각케이크와 빵을 커피와 함께 팔기 시작했다. 빙수 맛집도 곳곳에 생겨났다. 작은 사치의 행복을 당당히 누리고 싶은 이들은 밥 한 끼 가격을 훌쩍 뛰어넘는 빙수와 조각케이크에 거리낌 없이 지갑을 연다. 그 사장이 꿈꾸던 세상이 이제야 도래했다.
박하향 나는 빙수를 먹기 위해 사람들은 핸드폰 지도앱으로 빵집 주소를 검색하고, 열심히 빙수그릇을 나르는 젊은 아르바이트생은 월급 날 특별 보너스와 함께 커다란 빵봉지를 선물 받았을 텐데. 하지만 빵집은 사라졌고, ‘마약’이 들었다는 달콤하고 알싸하던 빙수 맛은 영원히 내 기억 속에만 남게 됐다.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심혜진 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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