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영일 인하대 명예교수
미국이 오는 8월 워싱턴 D.C.에서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협상을 개시하자고 공식 통보해왔다.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이 ‘한ㆍ미 FTA는 미국에 불리하다’고 비난한 배경 때문에, 우리 사회엔 은연중 한국이 FTA 수혜국이고 체결이 성공적이었다는 오류도 나타났다.

국제무역협정은 언뜻 당사국 간 이해관계로 보이지만, 일국 내 산업 간 이해관계이기도 하다. 한ㆍ미 FTA의 경우, 우리는 미국보다 제조업은 비교우위, 농산물과 서비스부문은 비교열위에 있다. 자동차ㆍ철강 등 재벌대기업의 대규모 장치 제조업에서는 유리했지만, 농업과 농민은 지난 대선 후보들의 공약에서조차 무시될 정도로 황폐화됐다.

거기다 한ㆍ미 FTA는 공공성 증대와 공공부분 확대를 위한 경제ㆍ사회정책을 제약하는 수많은 독소조항을 담고 있다. 미국이 아니라 한국에 ‘끔찍한’ 불평등 협정이다. 백남기 농민이 죽임을 당한 2015년 전국농민대회는 농민들의 생존권 투쟁이었다. 다만 극도로 편향된 언론 지형으로 피해를 당한 사회ㆍ경제적 약자들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뿐이다.

설령 무역이익이 있더라도 그게 시장기능 만으로 전 사회에 고르게 분배되지 않는다. 경제가 동력을 잃은 저성장일 때는 더욱 그렇다. 따라서 정부가 나서 제도적 장치를 강구해야 한다. 국제무역이 현실적으로 국내정치문제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트럼프가 자신의 지지기반인 러스트벨트지역 백인노동자를 위해 자동차ㆍ철강 수입 확대만 콕 집어낸 것이 바로 이런 이치다.

그래서 국제무역협정은 국민경제의 경제ㆍ사회적 가치 지향과 떼려야 뗄 수가 없다. 우리 경제의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ㆍ경제적 양극화를 심화하고 공공성 확대에 필요한 산업ㆍ복지ㆍ환경ㆍ지역분권 정책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조항은 바뀌어야한다.

예를 들면, 일방적인 투자자ㆍ국가소송제(ISD), 의약품에 과도한 지적재산권 조항, 친환경자동차 보조금 금지, 중소기업 적합업종제 지정 제약 등은 철폐돼야한다.

이런 맥락에서 트럼프 정부의 FTA 개정 요구는 우리에겐 불감청(不敢請)이언정 고소원(固所願)이다. 이번이 한국경제의 근본문제, 헬조선의 근원인 양극화 현상을 완화할 기본 틀을 마련할 절호의 기회다.

트럼프 정부는 좌충우돌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할 뿐, 국제규범과 질서는 안중에 없는 것 같다. 그 기세에 눌려 지난달 정상회담 기간에 대규모 투자와 수입을 약속하고 미국산 셰일가스를 수입하는 첫 아시아 국가가 된 점은 유감이다. 이제 우리도 경제논리를 가지고 당당하게 FTA 개정 협상에 임하자. 법과 절차를 제대로 지켜 피해산업의 목소리를 협상에 반영하자. 여의치 않으면 폐기까지도 각오하자. 한편으론 통상 협상을 안보와 연계하려는 수구기득권세력의 기도를 경계하면서.

한국의 협상 대표는 미국 앞에만 서면 주눅이 들고 굴욕적인 태도를 취하곤 했다. 이제 촛불민심을 믿자. 미국의 공식 요구를 받은 후,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한ㆍ미 FTA 개정 협상, 당당하게 임하라,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준비하자”는 문 대통령의 말씀에 거는 기대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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