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람] 연극배우 이병철(2회 대한민국연극제 최우수연기상 수상)

극단 ‘문(門)’ 대표이자 지난달 열린 2회 대한민국연극제에서 최우수연기상을 받은 이병철(46)씨를 만났다. 인터뷰하는 내내 부끄럼을 타는 것인지 낯가림을 하는 것인지 목소리가 작고 어색해했다. 하지만 기사에 실을 인물 사진과 8월에 할 공연 연습장면을 찍을 땐, 카메라 앞에서 돌변했다. 천생 배우였다.

이씨는 요즘 인천 남구 도화동에 있는 인천공연예술연습공간에서 극단 ‘아토’와 함께 가족극 ‘옹고집전’을 준비하고 있다. 8월 18일부터 20일까지 중구 신포동 소극장 ‘다락’에서 선보일 ‘옹고집전’은 고전인 옹고집전을 마당극 형식으로 각색한 것이다. 초등학생과 교사, 부모가 같이 볼 수 있는 흥겨운 작품이라고 한다. 이씨는 이번 연극에서 주인공인 옹고집 역을 맡았다.

지난 18일 연습하다 잠시 쉬고 있는 그를 만났다. 인터뷰 중에 인천의 한 잡지사 사진작가가 그를 만나러 와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는 요즘 인천에서 가장 핫(HOT)한 사람 중 한 명이다.

최우수연기상 받을 때 로또 맞은 기분

▲ 연극배우 이병철씨.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요. 폐막식 전날, 마지막 공연 끝나고 숙소에 있는데 영화제 관계자한테 전화가 왔어요. 내일 폐막식 때 참석하라고요. 전 누구한테나 다 전화하는 줄 알았죠. 아무 생각 없이 폐막식에 갔어요. 그런데 신인배우상 수상자로 ‘김병철’을 부르는데 성은 다르지만 내 이름과 같아 나 인줄 알고 깜작 놀랐어요. 우수연기상 후보로 생각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고요. 그런데 수상자 둘의 명단에 제가 없어서 ‘역시나’라고 생각했죠. 최우수연기상은 정말 눈곱만큼도 생각하지 못했어요. 제 이름이 불리는데 다리가 풀리고 눈물이 났어요. 로또 맞으면 이런 기분일까라는 생각을 했으니까요”

이씨는 최우수연기상을 받은 후 여러 언론과 인터뷰했고 라디오방송 출연도 했다. 인천시 문화관광체육국장이 불러 인사하러 다녀오기도 했다.

한국연극협회 등이 주최한 전국연극제는 35년 전에 처음 열렸다. 서울을 제외한 16개 광역시ㆍ도에서 지역예선을 거치고 올라온 대표 팀이 경연을 벌인 행사였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서울을 포함해 ‘대한민국연극제’라는 이름으로 행사가 열린다.

“예전에는 서울과 다른 지역들의 격차가 커서 서울을 이길 수가 없었어요. 잘한다는 사람이 서울에 다 모였거든요. 그래서 서울을 뺏는데, 지금은 지역에서 연극하는 사람도 많아지고 실력도 비등해서 굳이 서울을 뺄 이유가 없어서 함께하는 것입니다”

올해 연극제는 지난 6월 4일부터 19일까지 대구에서 열렸다. 해마다 광역시ㆍ도를 돌아가며 개최하는데, 올해 행사는 예년에 비해 예산이 두 배가량 소요됐다. 대구문화재단과 대구시의 적극적인 협조로 성황리에 열렸다고 한다.

이씨는 극단 ‘연극을 만드는 사람들(연만사)’이 만든 ‘워낭을 찾는 사람들’이라는 공연에 합류했다. 지난 4월 열린 인천 예선에 참가한 6개 팀 중 1위를 해 인천 대표로 전국대회에 나간 것이다.

어릴 적 아픔이 이 작품을 선택하게 해

연극 ‘워낭을 찾는 사람들’은 농촌에서 키우던 소가 구제역에 걸려 ‘살’처분된 사연을 다뤘다. 이씨는 이 작품에서 싸움소를 훈련시키는 주인공 ‘기수’ 역을 맡았다.

조용한 시골마을에 소를 키우는 할아버지와 싸움소를 훈련시키는 기수가 살았다. 기수는 소를 가족처럼 여기는 노인과 친구처럼 지냈고, 그 집 아들이 기수의 친구였다. 친구는 방역업무를 하는 공무원이었다. 어느 날 마을에 구제역이 돌고 소싸움 훈련에 한창이던 기수가 잠시 동네를 비운 사이 기수의 소가 친구의 손에 ‘살’처분된다. 친구네 집에 쳐들어간 기수와 공무원 신분으로 어쩔 수 없이 공무를 수행한 친구의 상황에 관객들이 공감해 많이 울었다고 이씨는 전했다. 노인의 소도 죽는다.

“구제역을 다룬 작품은 처음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 작품을 선택한 계기가 있어요. 제가 초등학생일 때 경기도 수원에서 살았어요. 아버지가 돼지농장을 했는데 콜레라에 걸려 몇 백 마리가 ‘살’처분되는 장면을 목격했어요. 아버지는 그 충격으로 2년 뒤 돌아가셨고요. 몇 작품이 들어왔는데 이 작품의 대본을 보면서 누구보다 내가 잘 표현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20여 년간 연극을 해왔고 앞으로도 평생 연극할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이씨는, 하지만 생계 차원에서 드라마나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tvN의 드라마 ‘명불허전’과 KBS의 드라마 ‘7일의 왕비’에 단역으로 출연했다.

“연극만 하기에는 경제적으로 힘들어 아내와 수봉공원 근처에서 통닭집을 하고 있어요. 연극은, 일 년에 한두 작품은 꼭 하고 싶고, 기회가 된다면 비중 있는 역할로 스크린에도 도전하고 싶습니다”

무대에 서보지 않은 사람은 모르는 희열

▲ 지난 6월 대구에서 열린 2회 대한민국연극제에 참가한 극단 ‘연극을 만드는 사람들’의 작품 ‘워낭을 찾는 사람들’의 한 장면.<사진제공·이병철>
1972년생인 이씨는 인천제일상업고등학교(현 제일고교)를 졸업했다. 1994년 극단 ‘공감’에 들어가 10년간 활동하다 극단 ‘한무대’로 옮겼다. ‘한무대’에서 나온 후엔 프리랜서로 여러 작품을 하다가 대한민국연극제 최우수연기상을 안긴 작품을 만난 것이다.

이번에 극단 ‘아토’가 준비하고 있는 마당극 ‘옹고집전’에 배우로 합류한 건 이화정 ‘아토’ 대표와 친분이 두터워서다.

이씨는 극단 ‘공감’에서 배우이자 은사인 정주희씨를 만나 연극과 인생을 배웠다고 고백했다.

“사실 어릴 때 제가 말썽꾸러기였어요. 매형이 정 선생님을 소개해줬는데, 매형의 친누나였죠. 연극하면서 저를 제대로 된 사람으로 만들어보려고 하셨는데, 정말로 저도 고생 많이 했습니다. 분에 못이겨 혈압이 올라 두 번 쓰러진 경험도 있어요. 처음에는 오기로 한 작품만 끝내고 떠나려고 작정했어요. 그런데 작품을 끝내고 해냈다는 성취감에 눈물이 나오더라고요. 그만두려고 했는데 계속 ‘다음 작품까지만’이라고 하다가 지금까지 왔습니다”

오기와 인내만으로 20년을 버틸 수는 없는 법. 배우로서 기질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올 수 있지 않았을까?

이씨는 “촉(觸)이라고 해야 하나요? ‘나도 이렇게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그렇게 되는 거 같아요. 나도 언젠가는 티브이에 배우로 출연해 옛 친구를 찾는 상상을 했는데 비슷하게 다가가고 있는 거 같아요. 이번에 상을 받은 것도 받고 싶다는 생각을 하니까 현실이 됐어요”라고 한 뒤 “우리(배우)끼리 하는 얘기인데, ‘연극 중독’이라는 말을 해요. 관객들이 내 말 한 마디에 울거나 웃을 때 희열을 느낍니다. ‘커튼 콜’ 요청으로 박수를 받을 때도 그렇습니다. 무대에 서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거예요”라고 했다.

한 작품만 하고 끝내려던 연극 인생을 25년 넘게 이어오고 있고, 지난 2011년에는 극단 ‘문(門)’을 창단하기도 했다.

“문(門)이라고 지은 건, 모든 배우가 편하고 자유롭게 들락날락할 수 있는 곳이라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현재 ‘동인제(=모든 단원이 극단에 대한 권리와 의무를 동시에 지는 운영 방식)’형식으로 5명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어떤 배우이든 여유 있는 시간과 공간에 함께할 수 있는 곳이죠”

어머니한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

▲ 연극인 이병철(맨 왼쪽)씨가 8월 18일부터 20일까지 공연하는 마당극 ‘옹고집전’ 연습에 한창이다.
무대에서 느끼는 희열 못지않게 지금의 이씨를 있게 한 힘은 어머니다.

“어머니가 저를 늦게 낳으셨어요. 제가 처음 무대에 설 때 어머니 나이가 60대였고, 지금은 85세입니다. 학창시절 말썽꾸러기였던 제가 연극하면서 자랑스러운 아들이 됐죠. 어머니는 요즘도 제가 하는 연극을 보러 지팡이를 짚고 오십니다. 제가 어머니한테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무대에서 연기하는 거예요. 그때 제일 행복해하셨어요”

지금도 경제적으로 안정적이진 않지만, 그는 더 어려운 시절을 견뎌내야 했다. 1997년 IMF 외환위기 때 집안에서 하던 사업이 망했고, 비슷한 시기에 어머니가 대장암 말기 선고를 받았다. 그때도 연극을 계속하고 있는 이씨를 형제들은 ‘미친놈’ 취급했다

“선배들이 연극하면서 연극한다는 핑계로 거지 소리는 듣지 말라고 가르쳤어요. 연극만으로는 수입이 안 되니까 막노동 등 무엇이라도 하라고 했죠. 연극할 시간이 확보되지 않는 직장에는 들어갈 수 없어서 대리운전이나 노점 장사를 했습니다. 그러다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아내와 할 수 있는 통닭집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20~30대엔 화물차를 끌고 다니면서 장사를 하다가 장사를 멈추고 공연을 연습했다. 연습이 끝나면 대리운전을 하면서 버틴 시절이었다.

“당연히 힘들었죠. 하지만 즐겼어요. 긍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지치니까요. 앞으로도 즐길 겁니다. 성격이요? 긍정적인 편이예요. 제가 무슨 일이든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한테 하는 충고가 있어요. ‘그냥 가는 시간은 없다’고요. 내가 힘들고 지칠 때 이 문구를 봤는데 내 얘기 같더라고요. 지금 이 순간은 힘들지만 앞으로 가고자하는 길에 도달하려면 이 시간도 필요한 겁니다”

‘연극은 씨앗이다’라고 말하는 이씨는 그 이유로 ‘무엇을 심는가에 따라 자라는 게 다르다. 내 마인드에 따라 나오는 작품도 다르다’고 했다. 아무리 힘들고 쪼들려도 그냥 가는 시간이 없듯이 모든 게 마음가짐에 따라 연극으로 표현된다는 말로 들렸다.

관객이 연극을 보러와 조는 일이 없는, 재밌고 편안한 연극으로 관객과 소통하고 싶다는 연극인 이병철씨는 오는 8월 ‘옹고집전’으로 관객을 만난다. 12월에는 단역이 아닌 조연으로 캐스팅된 영화 촬영을 시작할 예정이라는데 ‘영화는 들어가야 들어간다’는 동종업계의 말이 있듯이 확실하지는 않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극단 ‘문’에서 만든 좋은 작품으로도 쉬지 않고 시민들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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