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공간] 서구 검암동 ‘우리동네사람들

‘우리동네사람들(이하 우동사)’. 이름이 예뻤다. 자급자족하는 공동체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나 원대한 꿈을 꾸고 있기에 어렵기도 했고 모호하기도 했다. 얘기를 들을수록 같이 살아보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지난 4일 서구 검암동에 있는 커뮤니티 펍 ‘0.4km’에서 조정훈 우동사 대표를 만났다.

귀촌하려던 친구들과 도시에서 공동체를 만들다

▲ 강화도에서 친환경농법으로 쌀 농사를 짓고 있는 ‘우리동네사람들’ 회원들. 손으로 벼를 수확하고 있다.<사진제공·우리동네사람들>
2011년 귀촌을 꿈꾸던 젊은이 여섯 명이 모였다. 일주일 동안 진지하게 회의를 했다. 2년을 준비한 후 시골로 가자고 결심했다. 서울에 살던 이들은 장소를 물색했고 우연히 검암동을 알게 돼 이리로 왔다.

“왜 시골로 가려고 하는지를 고민하다가 ‘편하게 잘 살고 싶어서’라는 결론에 이르렀어요. 그렇다면 굳이 먼 지역으로 갈 게 아니라 수도권도 가능하다는 생각을 했죠. 이곳은 교통도 나쁘지 않고 논과 밭도 있고 집도 넓어서 왔습니다”

2009년 정토회에서 청년회 활동을 하면서 만난 이들은 비슷한 시기에 귀촌을 고민했다. 도시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아등바등 사는 것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때 운명적으로 만났다. 조 대표는 ‘운 때가 맞았다’고 말했다.

“남들처럼 군대 다녀오고 학교 졸업하고 직장에 4년 다녔는데, 뭔가 불만족스러웠어요. 내 길이 아닌 거 같은데 다른 방법은 못 찾겠고요. 고민이 풍선처럼 팽팽했던 어느 날 회사에서 법륜스님 글을 봤는데 이 분이라면 답을 알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정토회를 찾아갔습니다”

그게 계기가 돼 1년 후 직장을 그만뒀다. 다른 삶에 목말라했는데 한 살이라도 젊을 때 그만두는 게 좋겠다는 판단에서였다.

비슷한 고민을 하던 친구들과 집을 구해 같이 살기 시작했다. 우동사에는 현재 집이 다섯 채 있다. 한 채에 방이 서너 개 있고, 여섯 명 정도가 모여 산다. 30여명이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는데 부부도 있다. 같이 살고 있진 않지만 우동사라는 이름으로 여러 모임에 참여하는 동네 사람은 50여명이고, 더 느슨하게 우동사와 연결된 사람들은 100여명이 된다고 한다.

강요와 의무가 없는 곳

이웃해 사는 두 집의 12명은 일주일에 한 번씩 밥상모임을 한다. 밥을 먹고 자기 얘기를 나누고 상대의 얘기를 경청하는 모임이다. 일명 ‘마음나누기’다. 그밖에 탐구모임, 독서모임, 재능 나눔 모임 등, 다양한 모임을 운영한다. 여기서 핵심은 ‘나를 살피는 것’.

“누구나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살고 싶어 해요. 그런데 관계가 나빠지기도 하잖아요. 왜 나빠지는가, 그걸 살피는 게 중요합니다. 일상에서 부대끼는 감정을 살펴보면 상대에게 무엇을 요구하거나 내 생각을 주장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때 자기를 돌아보고 실체를 살펴보는 겁니다. 모든 모임의 핵심은 탐구하는 것입니다”

우동사는 따로 규칙을 만들지 않는다. 더 편하게 살기 위해 만든 규칙이 어느 순간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규칙을 정해서 집안일을 하면 규칙을 어기는 사람에게 지적하게 돼 불편한 사이가 된다. 모두 깨끗한 집을 원하지만 사람마다 방법이 다르거나 사정이 있을 뿐이라고 조 대표는 말했다. 이들은 일본의 대안공동체인 ‘애즈원(as one) 커뮤니티’의 활동에서 많이 배운다.

애즈원은 일본 미에카현 스즈카시에 100여 가구가 모여 사는 공동체를 말한다. 존 레논의 노래 ‘이매진’ 중 ‘…the world will live as one’에서 가져온 이름이라는데 이 공동체는 ‘~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게 없고, 어떤 강요와 의무도 없이 모든 걸 자율에 맡긴다. 애즈원은 인간과 사회를 연구하고 실험하는 공동체다. 규칙뿐 아니라 상하관계도 없다. 이들 중 50여명은 ‘어머니 도시락’이라는 회사에서 일하는데 하고 싶은 만큼만 일한다. 하기 싫으면 언제든 쉴 수 있고 일하지 않아도 뭐라는 사람이 없다. 아무도 명령하거나 강요하지 않는다. 그래도 조직이 굴러가고 수익을 낸다. 돈은 공동 관리한다.

“어려웠던 적도 있었어요. 우동사의 기치가 분명한 것 같았는데 모호해지는 걸 납득하지 못하는 사람도 생겼고, 개인의 욕구보다 집단의 욕구를 따라가면서 갈등이 생기기도 했죠. 애니어그램(=인간학의 일환으로 인간 유형을 아홉 가지로 나누는 분석법)을 하기도 하고 워크숍을 하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풀어야할지 목말라했을 때 에즈원을 알아 공부가 깊어졌고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하면서 사이좋게 지내는 마을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 확장하려고 ‘가출’하고 있습니다”

“한 달에 40만원만 벌면 살 수 있어요”

▲ 조정훈 ‘우동사’ 대표.
‘가출’이라는 공동주거 체험프로그램이 있다. 부담 없이 ‘가볍게 출발해본다’는 뜻의 가출은 3개월간 한 집에 살아보고 좋으면 우동사에 남는 걸 말한다.

“6명 정도 같이 살면서 매주 밥상모임을 하고 생활 속에서 부딪히는 걸 공부삼아 사이좋게 지내는 길을 찾는 거죠. 처음엔 갈등도 많은데 지내다보면 사람들이 말랑말랑해져요(웃음). 완전히 사람이 바뀌지는 않지만 적어도 더 잘 듣고 잘 이해하게 됩니다”

우동사 명의의 집이 다섯 채 있다. 그 중 한 채가 ‘가출’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위해 마련했다. 집 구입비용의 절반은 출자, 절반은 장기 대출로 마련했고, 매달 월세를 걷어 이자와 원금을 갚아가고 있다.

우동사에 백수가 늘고 있다. 직장인이 우동사에 살면서 백수로 신분이 바뀐 경우가 많다. 쓰는 돈이 줄면서 억지로 일하지 않아도 되고, 대신 여유로운 시간에 새로운 삶을 꿈꾸고 어떻게 실현할지를 고민한다.

“6명이 사는데 한 사람당 월세 25만원에 생활비 10만원이면 공과금에 식비까지 모두 해결됩니다. 6년간 살면서 부족하다고 느낀 적도 없고 식비 때문에 돈을 더 걷은 적이 없어요. 한 달에 40만원이면 살 수 있어요”

이들은 강화도에서 직접 논농사를 지어 소비하는 쌀의 100%를 생산한다. 동네에서 텃밭을 일구고 닭 네 마리를 키우기도 한다. 농사와 자급에 관심이 많다. 또한 핸드폰 비용을 줄이는 아이디어를 찾으면 공유해 소비를 줄인다. 삶의 비용이 줄어들면 시간이 남고 그 시간에 모여서 공부하고 논다. 물론 혼자 노는 게 아니라 판을 벌인다.

“백수는 손이 백 개라 뭐든지 잘 할 수 있고, 손이 비어있어서 뭐든 가볍게 할 수 있죠. 모든 건 놀이에요. 시간이 많아지니까 뭐라도 하게 되고 재밌는 걸 찾게 되면서 일상이 놀이가 돼 마음의 거리낌이 없는 자유로운 인간이 됩니다”

놀이는 대부분 동네 안에서 이루어진다. 그래서 돈이 들지 않거나 저렴하다. 가령 스페인어를 배우고 싶다거나 기타를 배우고 싶으면 커뮤니티 공간에 요청한다. 재능기부를 하겠다는 사람과 배우고자 하는 사람이 모여 모임을 만든다. 영화 보러 빔 프로젝터가 있는 이웃집에 가고 차나 술을 마시러 또 다른 집을 놀러간다.

우리나라를 넘어 세계를 주유(周遊)하다

많은 걸 시도하고 시험하고 있는 우동사의 조 대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고 싶은 게 많다.

“사람에 대한 공부를 심도 있게 하고 싶어요. 에즈원 커뮤니티처럼 성인들 대상으로 자기를 살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려는데 강화도에 장소를 물색하고 있습니다. 몸에 대한 공부도 시작했어요. 침술 공부를 하고 있는데 전통 침과 뜸만 다루는 게 아니라 해부학, 뇌 과학 등 다양한 걸 공부하고 있습니다”

우동사는 커뮤니티 펍(community pub) ‘0.4km’를 운영하고 있다. 우동사의 첫 번째 집에서 0.4km 떨어진 곳에 이 가게가 있어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 우동사를 강조하기보다 동네 주민들과 만나고 소통할 요량으로 만든 공간이다. 커뮤니티를 목적으로 맥주를 좋아하는 4명이 처음 시작했는데 고급 수제 맥주를 싸게 마시면서 동네사랑방 같은 역할을 한다.

이곳에서 소소한 문화공연을 하는 걸 인터넷에서 본 터라 구체적으로 물으니 ‘민망하다’고 했다.

▲ ‘우동사’ 회원들이 운영하는 커뮤니티 펍 ‘0.4km’.
“누구나 해보고 싶은 걸 마음대로 하는 거라 소개하는 게 민망할 정도예요. 예술이란 게 공동체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꽃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식물이 있으면 자연스레 꽃이 피는 것처럼 재밌게 놀자고 하면 자연스레 기타를 치고 책을 읽고 그림을 그리죠. 밥 먹듯 너무 일상적이라서 예술이라고 얘기하는 게 어색하다니까요”

우동사는 사람이나 장소를 더 확장하려고 하고 있다. 귀촌의 꿈을 접지 않은 이들은 근교 시골에 터를 잡고 자연을 벗 삼아 사는 꿈을 현실로 만들어가고 있다. 일 년 중 반은 우리 동네인 검암동에서 살고, 그 외에는 시골이나 해외에서 지낼 계획도 가지고 있다. 생애주기에 따라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 많은 공부를 하고 더 넓은 곳을 경험하려는 것이다.

“올 여름에 중국 운남성에 다녀올 예정입니다. 아직도 우리는 미국이나 서구유럽에 초점이 맞춰져있는데 요즘은 중국이나 동남아시아ㆍ인도ㆍ이슬람 문명이 급부상하고 있어요. 세계적 흐름을 못 쫓아가는 거죠. 운남지역에 ‘운남학사’를 지어 세상공부를 하고 싶어요. 이 동네에서 자란 아이들이 세상을 주유(周遊)하면서 많은 걸 보고 듣고 체험하게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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