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꽁초에 손을 댔다가 엄마한테 혼이 났다. 초등학교 1~2학년 무렵이었다. 집에 있으면 늘 심심했고,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이 장난감으로 보였다. 그날 아빠 재떨이가 눈에 들어 왔나보다. 꽁초를 감싸고 있는 종이를 벗겨 남은 담뱃가루를 털어냈다. 담배가루 아래엔 폭신폭신한 것이 있었다. 누런 솜을 압착해놓은 것 같았다. 필터였다. 이것을 손으로 쪽쪽 찢으며 모든 신경을 집중해 놀고 있는데 엄마가 들어왔다. 엄마는 더럽다고 몸서리를 치며 다시는 만지지 말라고 했다.

그만 하란다고 그만 두면 아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세상에 널린 게 담배꽁초다. 한동안 동네 공터의 꽁초란 꽁초는 죄다 찢고 뜯어 작살을 냈다. 실험(?) 결과, 필터는 두 종류였다. 대부분 집에서 본 것과 같은 재질이었지만 드물게 주름모양의 얇은 종이가 돌돌 말린 것도 있었다. 감겨 있던 종이필터를 끊기지 않게 조심조심 길게 펼치는 것은 시험이자 도전이었다.

 
지금처럼 담배 끝에 필터를 연결한 형태는 1930년대 처음 선보였다. 이때 필터 재료는 코르크였는데 지금과 용도가 달랐다. 담배가루가 침에 묻어 입안에 들어오는 것을 막는 수단이었다. 흡연이 폐암을 일으킨다는 연구결과가 나온 후 많은 이들이 금연에 도전했다. 하지만 니코틴은 사람을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흡연자들은 좀 더 안전한 담배를 피우기를 원했다. 특히 관심을 받은 것은 타르와 니코틴이었다.

1950년대부터 타르와 니코틴을 거를 수 있는 필터를 장착한 담배가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필터는 솜과 레이온, 양모와 같은 섬유나 종이로 만들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종이와 면으로 만든 국산 필터를 단 ‘아리랑’이 1958년 시판됐다. 1960년대부터 셀룰로오스 아세테이트라는 인조섬유가 필터 주재료로 사용되고 있다.

담배를 피우면 필터 가운데 부분이 갈색으로 변한다. 담배가 타면서 생기는 기체 성분 중 일부가 들러붙은 것이다. 필터의 원리는 촘촘한 체로 굵은 무언가를 완벽하게 걸러내는 방식이 아니다. 담배연기 입자의 크기에 비해 필터에 난 구멍이 훨씬 커서 연기는 막힘없이 줄줄 흘러 입안으로 들어온다. 다만 일부가 필터에 달라붙어 덜 들어오는 정도다. 필터는 재질에 따라 발암물질인 페놀은 48~67%까지 여과하지만 타르는 고작 26~35% 정도 막는 데 불과하다.

필터 길이가 길수록 몸에 좋지 않은 성분을 걸러낼 확률이 높다. 그래서 필터 길이는 점점 길어지는 추세다. 흡연자들의 건강을 생각해 담배회사가 필터를 길게 만드는 것이라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길어진 필터는 흡연자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 조금 과장하자면, ‘필터가 나를 폐암으로부터 지켜줄 것’이라는 착각을 하게 만든다. 필터는 불안감과 죄책감을 덜어내 담배에 대한 거부감을 줄여주는 장치일 뿐이다.

너무 과한 해석 아니냐는 물음엔, 그렇다면 필터에 굳이 캡슐까지 집어넣는 이유는 무엇인지 되묻고 싶다. 필터에 박하ㆍ과일향 성분을 담은 캡슐을 넣어 흡연 시 터지게 하는 ‘캡슐담배’가 청소년 사이에서 인기란다. 2012년에 비해 2015년 판매량이 다섯 배나 뛰었다. 국산 담배 중 레종, 에쎄, 필(PEEL) 등이 이에 속한다. 일반담배보다 덜 해롭다는 생각에 이런 담배를 선택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지난 1월 질병관리본부에서 심각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현재 판매 중인 캡슐담배 전체 성분을 조사한 결과 고농도로 인체에 노출될 경우 피부와 호흡기 자극, 폐 손상을 일으킬 수 있는 성분이 캡슐에 들어 있음이 밝혀졌다. 발암 물질은 물론 살충제나 곤충 기피제에 쓰이는 성분도 적지 않았다.

정부는 캡슐담배의 제조와 유통을 규제할 법을 내년쯤 만들 예정이라고 한다. 그 사이 캡슐담배는 계속 팔려나가겠지. 담배, 정말 이별할 방법은 없을까?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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