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주여성들과 글쓰기 수업을 할 때였다. 수강생 10여명 중 캄보디아와 베트남에서 온 두 사람을 빼면 모두 중국이 본국이었다.

어느 날, 수업을 마치고 수강생들과 교실 뒷정리를 하고 있었다. 누군가 강의실로 채소 한 무더기를 들고 왔다. “우와, 이거 어디서 났어요? 상차이네” 중국에서 온 분들이 단번에 알아봤다. 상차이는 고수라는 채소다. 향채라고도 하는데 온갖 중국요리에 빠지지 않고 들어간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대파 정도의 지위라고 해도 될까? 호불호가 갈리는 탓에 우리나라에선 음식에 흔하게 넣지 않는다. 시장이나 동네 마트에서 찾기도 어렵다.

저마다 상차이를 코에 갖다 대고는 탄성을 내뱉는다. 중국음식점에서나 겨우 맛볼 수 있다니 그 맘이 이해가 간다. 봉지에 나눠 갖는가 싶더니 나를 가리키며 소곤거린다. “이리 오세요. 이것 좀 가져가세요”

 
나는 한 번도 고수로 요리를 해본 일이 없다. 향을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아주 즐기지도 않는다. 나보다는 좋아하는 사람이 더 많이 가져가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일단 나도 냄새나 맡아보자 싶어 그리로 갔다. “이거 먹을 줄 아세요? 한국 사람들은 이거 싫어하는 사람 많던데” “아, 네…. 먹어 보긴 했지요” 비닐봉지에 잔뜩 담으려는 걸 식구가 없으니 조금만 가져가겠다며 겨우 말렸다.

집에 돌아와 인터넷으로 고수 먹는 법을 검색했다. 그러다 떠오른 요리, 바로 토마토계란국이다. 중국에서 회사를 다닌 친구가, 술 마신 다음날 자주 사먹었다며 해장엔 최고라고 추천했던 음식이다. 토마토로 국을 끓인다니 상상하기 어려웠다. 절대 해먹을 일 없을 거라 장담했는데 중국에선 즐겨 먹는 요리라고 하니 아주 이상할 것 같지는 않았다. 마침 냉장고에 물러 터지기 직전인 토마토가 있었다.

요리법은 간단하다. 대파를 다져 기름에 볶다가 큼직하게 자른 토마토를 넣어 으깨면서 볶는다. 물을 붓고 간장, 소금, 후추를 넣고 끓이다가 계란을 풀어 휘젓는다. 마지막에 고수를 취향대로 올리면 끝. 오, 생각보다 맛이 괜찮다. 후루훅 후루룩 부드럽게 넘어가는 것이 먹을수록 당긴다.

수강생 단체 대화방에 토마토계란국 사진을 올렸다. 반응이 뜨거웠다. 고향 음식이라며 반가워했고 내일 해먹어야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다음 날, 토마토계란국 사진 여러 장이 올라왔다. 역시, 내가 끓인 것보다 훨씬 먹음직해 보였다. 요리 팁도 알려줬다. 계란 한 개 당 토마토 두 개를 넣으면 비율이 적당하고, 설탕이나 식초를 넣기도 한단다.

새로운 문화를 만난 느낌이었다. 뿌듯했다. 그동안 한국에 대한 가르침만 받았을 그들. 나 역시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생각을 못했다. 그날 이후 나는 수업 방향을 바꿨다. 내가 말하기보다, 저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쓰게 하자고 다짐했다.

3년째 기자단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문장력이 좋아진 건 당연하다. 그보다, 우린 서로 가족의 안부를 물을 만큼 가까워졌다. 낯선 땅에서 온몸을 부딪치며 살아가는 그들에게 힘을 얻을 때가 많다. 수업을 하고 오는 날엔 마음이 따뜻해진다. 다른 나라 언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친구가 이렇게 여럿 생길 줄은 몰랐다. 내겐 이점이 가장 소중하다.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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