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 싶은 인천만들기 네트워크, 토론회 열어
“정치 실패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헌법의 실패”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 개헌도 국민으로부터”

개헌 본격화되는데 '촛불 국민'은 밀려나

▲ 지방분권 개헌 토론회

문재인 대통령이 내년 6월 지방선거 때 개헌을 국민투표로 추진하겠다고 했다. 국회는 헌법개정특별위원회(이하 개헌특위)를 구성한 뒤 개헌특위에 자문위원회를 두고 개헌안을 마련 중이다.

국회 개헌특위 활동 계획과 흐름을 보면, 개헌특위 소위원회 공청회 개최와 온라인 국민의견 수렴을 거쳐 7월 17일 제헌절에 개헌특위 홈페이지를 열고, 8~9월에 지역별 순회 공청회를 열 예정이다.

개헌 절차를 보면, 개헌안을 국회 또는 대통령이 발의하면 20일간 공고한 후 60일 안에 국회 의결을 거친다. 이어서 30일 안에 국민투표를 실시해야한다.

즉, 개헌안 국민투표일이 내년 6월 13일이라고 했을 때 개헌안 국회 의결은 최소한 5월 13일 이전에 해야 한다. 국회 의결을 위해서는 대통령의 공고 기간을 포함해 약 40~80일 필요하니, 적어도 내년 초에는 개헌안을 발의할 가능성이 높다.

국회와 정부는 개헌 논의 과정에 국민들의 참여를 보장해 상향식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지만, 일부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국회 개헌특위 자문위에 참여하고 있을 뿐, 국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계기는 지역별 순회 공청회가 전부라 할 수 있다.

특히, 문재인 정부가 ‘연방제 수준의 지방분권’ 개헌을 내년 지방선거 때 국민투표로 추진하겠다고 했지만, 지방분권 개헌안에 대해선 알려진 게 거의 없다.

사실 개헌 논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정농단’ 사건을 피해가기 위한 정치적 술수로 개헌을 제시하면서 촉발됐다. 하지만 박 전 대통령의 개헌 제안은 국민들의 압도적인 탄핵 촉구 여론과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에 수장됐다.

이 대신 국회 등 정치권에선 ‘대통령에 권한이 집중돼있기 때문에 국정농단이 발생한 것’이라고 주장, 4년 중임제 또는 이원집정부제 등 대통령 권한을 나누는 것을 골자로 한 개헌안이 부각했다.

그 뒤 국회가 지난해 12월 개헌특위를 구성하면서 개헌 논의가 공론화됐고, 문재인 대통령이 지방선거 때 개헌을 추진하겠다고 하면서 더욱 본격화됐다.

국회는 개헌특위에 시민단체 활동가와 법학자 등이 참여하는 자문위를 구성해 기본권을 확대하고, 국민입법권과 국민투표권, 국민발안권을 보장하며, 지방분권을 확대하는 개헌안을 마련하고 있다.

한편, 이와 별도로 각 정당도 개헌안을 만들고 있다. 이로 인해 국회 개헌특위 자문위가 국민의견 수렴을 거쳐 제출한 개헌안을 국회에서 논의하기 보다는 각 정당의 개헌안을 중심으로 논의가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개헌 논의에 국민들은 객으로 물러나게 되는 셈이다.

“정치 실패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헌법의 실패”

‘살고 싶은 인천 만들기 네트워크’와 인천평화복지연대는 개헌 논의에 국민 참여를 확대하기 위한 일환으로 지난 27일 지방분권 개헌을 주제로 한 토론회를 열었다.

발제를 맡은 국회 개헌특위 자문위원이자 지방분권개헌국민행동 상임 의장인 이기우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승자독식의 정치권력 구조다. 새 대통령이 취임하고 5년 뒤에 할 선거운동이 이미 시작됐다. 그전에도 그랬다. 갈등은 권력 집중에서 비롯한다. 문제가 있는 헌법이다. 시장의 실패보다, 정치의 실패보다, 정부의 실패보다 더 중요한 문제는 헌법의 실패다”라고 개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대선 때 모든 후보가 ‘내가 좋은 운전기사’라고 경쟁했다. 대선이 끝나고 보니 차가 엉망이다. 즉, 헌법이 엉망이다. 헌법이 다 잘못됐다는 게 아니다. 일부 잘못된 부분을 고치자는 것이다. 그중 하나가 지방분권이다”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제퍼슨 미국 3대 대통령은 19년마다 헌법이나 법률을 개정해야한다고 했다. 한 세대마다 자기 세대에 맞는 규범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뜻이다”라며 “(대한민국은) 1987년 개헌할 때 세계화와 지식정보화시대를 몰랐다. 당시 사회는 산업사회로, 1인당 국민소득은 3300달러였다. 지금은 국제화시대고 소득도 2만~3만 달러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개헌이 정치ㆍ경제의 불안정을 야기한다는 우려에 대해선 “(선진국) 독일은 1948년 이후 60여 차례 개헌했다. 스위스는 1848년 이후 150여 차례 연방헌법을 개정했으며, 주 27개의 헌법 개정까지 포함하면 매해 개헌한 셈이다. 미국도 1787년 제헌 이후 18차 개헌을 했다. 모두 안정돼있고 잘 산다. 대한민국은 1948년 제헌 이후 9차 개정을 했다. 집을 자주 손질해야 유지되듯이 헌법도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개헌은 왜 지방분권 개헌이어야 하나

한국은 지방자치제도를 실시하고 있지만, 지방자치는 헌법 117조와 118조에 따라 법에 묶여 있다. 헌법 117조와 118조를 보면, 지방자치단체는 조례 입법권을 가지고 있지만, 국회법이 정한 범위 안에서만 인정된다.

이에 따라 지자체의 사무와 조세, 조직 등은 국회와 중앙정부가 정하고 시키는 것만 하게 돼있다. 지역경제 활성화 또는 복지 확대를 위해 조례를 제정하려해도 국회법과 충돌할 경우는 할 수 없게 돼있다.

일례로 인천시가 공무원 정원 1명을 늘리려면 한 달 전부터 행정자치부와 협의해야하고, 협의가 안 되면 국회의원을 동원해 정부를 설득해야하는 게 지방자치의 현주소다.

또, 광역단체는 기초단체를 통제하고 있다. 각 자치군ㆍ구가 사업소(소장 사무관급)를 신설하려면 시의 승인을 받아야한다. 일례로 옹진군이 안보수련원을 지으려할 때 시의 승인을 받아야하는데, 시는 이를 검토하기 위한 자료를 요구해야 하느라 행정력을 낭비하게 된다. 이 같은 현상은 정부와 지방정부 사이에 비일비재하다.

이기우 교수는 “(국회)법에 정해진 것만 하라는 게 현재 지방자치다. 이를 개혁해 정부와 지방정부가 각각 입법권을 갖게 해야 한다. 지방정부(광역시ㆍ도, 자치 시ㆍ군ㆍ구 등)가 민주적인 절차를 거쳐 자치법률을 제정할 수 있게 해야 하고, 국회법에도 불구하고 일정하게 자율적으로 주민 권리를 제한하거나 의무를 부과할 수 있어야한다. 조세도 마찬가지다”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중앙정부의 법률이 지방정부의 법률보다 우위에 있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 이어서 중앙정부 입법권을 제한해 전국적으로 통일성이 필요한 경우에만 법률로 정하자고 했다.

이 교수는 외교ㆍ국방ㆍ국가치안ㆍ국세ㆍ국가조직ㆍ통화ㆍ금융ㆍ통상ㆍ물가ㆍ도량형ㆍ우편ㆍ철도ㆍ국도ㆍ항공ㆍ기상ㆍ원자력과 그밖에 성질상 중앙정부만 입법권을 갖는 게 법률로 정해진 사항을 제외한 나머지 사항에 대해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각각 입법권을 지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지방정부는 중앙정부와 법에 손발이 묶여서 일을 하려해도 못하고, 중앙정부는 과부하에 걸려 일을 못한다. 이제는 지방분권으로 지방정부의 손발을 풀어주고, 중앙정부의 일을 지방정부로 넘겨야한다”며 “2009년 유럽연합 지역위원회가 발표한 통계자료를 보면, 잘사는 나라일수록 지방분권이 발달했다. 미국ㆍ캐나다ㆍ스위스 등은 지방분권이 잘 돼있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개헌안에 국민투표권과 국민발안권, 국민소환권을 명시해 국회에만 있는 입법권을 국민으로 확대하는 것처럼, 지방정부에 입법권 부여 시 주민투표권, 주민발안권, 주민소환권을 명시해 입법권을 주민들에게 부여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국민투표권이나 주민투표권은 국회나 지방의회가 제정한 법안 중 필요와 요구에 따라 국민투표나 주민투표를 거쳐 승인하거나 거부하는 제도다.

이를테면 국민(주민) 다수가 반대하는 법안을 제정할 경우 거부할 수 있고, 권리 제한 또는 의무 부담이 따르는 법안의 경우 투표로 찬성하거나 반대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국민(주민)발안권은 국민(주민) 다수가 필요로 하는 법안을 국회(지방의회)가 제정하지 않을 경우 일정한 요건을 거쳐 국민(주민)이 직접 발의하고, 국민(주민)투표 또는 국회(지방의회) 의결로 제정하는 제도다.

이 교수는 “지방분권의 핵심은 입법권과 재정권이다. 지방정부의 입법권을 제한하고 있는 헌법을 개정해야한다”고 한 뒤 “이에 따라 중앙정부의 사무를 지방정부로 이양하고, 재정도 같이 넘겨야한다. 재정이 넉넉지 못한 지방정부의 경우 수평적 재정조정제도로 사회연대 차원에서 재정 여유가 있는 곳에서 없는 곳에 지원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재정분권이 핵심, 조세 이양 구체적으로 준비해야”

이어진 토론에서 박준복 참여예산센터 소장은 지방분권에 맞춰 재정분권이 뒷받침돼야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2004년 중앙정부가 국가 사무 중 136개(사회복지 약 67개)를 지방정부로 이양했다. 하지만 사무만 넘겼을 뿐 재정 이양을 수반하지 않아 지방정부의 부담만 커졌다.

박준복 소장은 “개헌 후 지방정부에 권한을 넘길 때 어떤 권한을 줄 것이냐, 재정을 어떻게 할 것이냐가 중요하다. 국가정책을 지방정부가 대행하는 것이라면 중앙정부가 재정을 부담하고, 지방정부 업무로 이관된 것은 지방정부가 책임 있게 운영해야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세와 지방세 비율을 현재 ‘8대 2’에서 ‘6대 4’로 맞추기 위해 국세 일부를 지방세로 이양하겠다고 밝혔지만, 이양 세목과 신설 지방세 세목 등은 아직 구체적으로 제시된 게 없다. 박 소장은 지자체가 분권에 대비해 세목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박 소장은 “지자체는 국비 확보를 치적으로 삼고 있다. 재정분권으로 납세자를 두려워하게 해야한다”고 한 뒤, “우선 재정분권 시 수도권과 다른 지역의 재정 격차가 크다. 그렇다면 내국세의 19.24%인 보통교부금을 내국세의 25%까지 올려 재정이 어려운 지역에 합리적으로 배분해야한다”고 말했다.

이어서 “지금 시와 군에만 보통교부금을 주고 있는데 자치구에도 줘야한다. 인천엔 자치구가 8개 있다. 자치구들이 보통교부금을 받지 못하니, 인천시가 연간 약 6000억원을 재원조정교부금으로 자치구에 주고 있다. 자치구가 보통교부금을 받게 되면, 그 6000억원을 인천시가 사용하면 된다. 또, 인천시에 귀속되는 담배세를 자치구로 넘겨야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양도소득세도 거래세에 해당하는 만큼 지방정부로 넘겨야한다. 또, 부가가치세의 11%인 지방소비세를 20%까지 인상해야한다. 이렇게만 해도 약 20조~25조원이 지방정부로 넘어간다”며 “개헌에 맞춰 인천시가 시민들과 지방분권을 준비해야한다. 인천시가 필요로 하는 권한과 업무, 조세 등과 관련한 준비가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개헌이 본격화되자 인천시의회가 관련 조례 제정에 착수했다. 인천시는 광역시ㆍ도 17개 가운데 유일하게 지방분권 관련 조례가 없다. 이에 시의회는 시 집행부에 개헌과 지방분권을 공론화할 수 있는 민관협력기구 구성을 제안하고, 지방분권 촉진을 지원할 조례를 제정하기로 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 개헌도 국민으로부터”

대통령 직선제를 골자로 한 1987년 개헌은 6월 민주항쟁의 요구로 탄생했다. 그러나 이 개헌 과정에 국민들은 참여하지 못했다.

이번에는 국민들이 참여할 수 있어야한다는 게, 시민사회는 물론 정치권에도 공론화돼있다. 하지만 여전히 국민 참여는 미약하고, 국회는 국민 참여 보장에 소극적이다.

국회 개헌특위 자문위원인 이태호 참여연대 정책위원장은 “지난해에서 올해로 이어진 촛불혁명을 거치며 주권자의 감수성이 예민해졌다”며 “개헌에 주권자의 의견이 반영돼야한다. 대통령을 퇴진시킨 주권자들이다. 국회에서 뚝딱 논의해 받아들이라고 하면 이들이 받아들이겠냐”라고 쓴 소리를 했다.

그는 “국회에서 기본권 확대와 지방분권을 얘기하지만, (속내는) 중앙정부 형태를 어떻게 하는 게 국회의원에게 유ㆍ불리한 가를 따지는 것에 불과하다. 국회의원들은 지방분권이 아니라 대통령 권한 중 일부를 국회로 가져오는 데 관심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서 “개헌이 중요하다. 새 정부는 청와대 앞까지 개방하고 국민제안도 받는다는데, 국회는 국회마당을 개헌토론장으로 개방하자해도 소극적이다”라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개헌 동력 또한 주권자인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아래서부터 올라오는 개헌을 추진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김명희 인천평화복지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인천시가 행정ㆍ재정 지원으로 개헌 공론장을 형성해 시민의견을 수렴하고, 이를 토대로 인천시의 지방분권 요구안을 마련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개헌에 시민들이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하는데 안 되고 있다. 정보도 부족하다. 국회 일정을 보니, 국회 차원의 원탁토론회와 지역 순회 공청회를 열고, 온라인 토론으로 국민의견을 수렴한다는 게 전부다”라며 “개헌은 새로운 대한민국의 시급한 과제다. 인천시가 행정과 예산을 투입해 선거제도 개혁, 정치개혁 등 시민들의 얘기를 들을 수 있는 공론장을 만들어야한다”고 말했다.

또한 “의견수렴으로 지방분권 개헌안에 대한 시의 요구안을 마련해야한다. 인천의 경우 ‘수도권정비계획법’에 막혀 균형발전이라는 미명아래 항만산업과 항공산업, 경제자유구역 등에서 역차별을 받고 있는 게 부지기수다. 시민사회와 시의회, 시가 협력해 지방분권 담론을 형성하고 이를 토대로 ‘인천 안’을 중앙정부와 국회에 제시해야한다”고 덧붙였다.

‘인천시 지방분권 촉진과 지원에 관한 조례’ 제정을 준비 중인 차준택(더불아민주당, 부평4) 시의원은 “개헌과 지방분권을 공론화할 수 있는 기구를 만들어 시민들이 개헌에 참여할 수 있게 노력하겠다”며 “전국 광역시ㆍ도 17개 중 인천만 지방분권 촉진과 지원에 관한 조례가 제정돼있지 않다. 다음 회기 때 통과할 수 있게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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