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람] 우주의 아이돌, 정예지 청년인력소 대표

정예지 청년인력소 대표는 자신을 어떤 단체의 대표가 아닌 ‘우주의 아이돌’로 소개해 달란다. 다른 인터뷰에서도 이렇게 요청했지만 ‘정보 전달의 혼란이 있어서’라고 스스로 추측하며 소박한(?) 꿈을 이루지 못한 것을 위로했다. 지난 19일 남동구에 있는 한 커피숍에서 만나 우주의 아이돌인 그녀로부터 ‘우주’와 ‘청년인력소’와 ‘문화’에 대한 광활한 얘기를 들었다.

나를 ‘우주의 아이돌’이라 불러다오

▲ 정예지 청년인력소 대표
‘못하는 거 빼고 다 잘한다’는 정예지씨. 자칭 ‘종합예술인’이라 불렀는데 연예인 ‘홍서범’이 떠올라 그만뒀다. 그 후 ‘우주에서 신화적인 존재가 되고 싶다’는 의미를 담아 ‘우주의 아이돌’로 바꿨단다.

“처음에는 명함에 ‘부평의 아이돌’이라고 새겼어요. 주변에서 하는 ‘너무 작게 노는 거 아니냐?’는 말에 자극받아 명함이 많이 남았는데도 ‘우주의 아이돌’로 해 새로 만들었습니다. 사람들이 저한데 ‘어떤 사람이냐’는 질문을 많이 하는데 저는 ‘우주의 아이돌’이라고 얘기해요. 지금은 사업자등록증이 있는 단체 대표이지만 저는 그렇게 불리는 게 가장 좋아요”

뭔가 세상(지구)에 족적을 남기고 우주로 가겠다는 포부를 담아 스스로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단다. 게다가 원래 우주, 별, 행성이라는 단어를 좋아해 학창시절 친구들로부터 ‘우주’, ‘외계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문화예술 하는 사람들에게는 자신감이 중요한데 그렇게 부르고 나서 자신감이 생겼어요. 특히 올해가 터닝 포인트가 되는 해인 거 같아요. 내 정체성을 확실하게 알게 됐거든요. 지역에서 예술 활동 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여러 제안을 받았는데 그 전에는 소극적이었죠. 지금은 단체 대표도 맡아 책임감과 자신감이 생긴 것 같습니다”

“청년들의 발품에 마침표를 찍겠다”

지난해 말께 어떤 이가 예지씨와 함께 일을 하고 싶다고 찾아왔다. 인천문화재단이 지원했던 사업이었는데 그녀도 진행보조로 참여하면서 사업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에 함께했다. 그곳에서 인천에도 예술 활동을 하는 젊은 친구들이 많다는 걸 깨달았다.

“끝나고 뒤풀이를 하는 자리에서 이야기를 쏟아내더라고요. 음악 하는 친구는 그림 그리는 친구가 필요하고 미술 하는 친구는 음악 하는 친구가 필요했을 때 못 구해서 힘들었던 경험을 얘기했어요. 그 때 제가 자리 한 번 만들겠다고 공언했죠. 그날 집에 가자마자 로고 만들고 페이스북 페이지 만들고 모임 형식까지 고민해 웹 홍보물을 만들었어요. 그렇게 만든 게 청년인력소입니다. 지난해 12월에 만들어 올해 1월에 첫모임을 했어요”

바로 로고를 만들었다는 게 신기해 물으니, ‘우주에서 신호가 왔다’고 한다.

“머리에서 ‘청년인력소’라는 단어가 떠올랐고 로고도 그냥 나왔어요. 청년의 첫 자음인 ‘ㅊ’은 달리는 청년의 이미지고, 인력소의 ‘ㅇ’을 청년 옆에 조그맣게 붙여서 ‘여러분들의 발품에 마침표를 찍겠다. 인력을 쉽게 구하게 해주겠다’는 의미를 담았어요”

▲ 청년인력소 로고.
청년인력소는 1월부터 5월까지 ‘네트워크 파티’라는 이름으로 다섯 번 모임을 운영했다. 매번 다양한 사람들과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노력 중이란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첫모임에는 미술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두 번째는 음악 활동을 하는 사람이 많이 와 즉흥공연도 해 재밌었단다.

매번 청년 20~30여명이 모인다. 처음에는 참가비 5000원으로 식사와 술을 제공했는데 돈이 모자라 3월 모임부턴 1만원으로 올렸다. 장소는 ‘락캠프’를 대여료 없이 사용하고 있다. 예지씨의 부모가 운영하는 공간이라 대여료를 받지 않는다.

“모임에 참여했던 싱어송라이터가 있었는데 모임에 왔던 어떤 분이 그 분의 공연을 보러갔다가 고기를 사줬대요. 그것도 매칭이죠. 저도 공연을 기획하는 친구한테 밴드를 소개시켜 줘 공연하게 됐어요. 이런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4월 모임은 날씨가 좋아 야외에서 진행했어요. 잔디밭에서 도시락을 먹고 버스킹을 했는데 참가자들 만족도가 최고였죠”

4월 모임 뒤풀이 때 ‘아트박람회’에 대한 얘기를 구체화했다.

청년인력소와 박람회의 만남

예지씨는 3월부터 아트박람회를 고민했다. 청년인력소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문화예술 관련자들인데 이들과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얻은 결론이었다.

“진짜 박람회처럼 부스를 준비해 자기를 소개하는 전시회를 하려고요. 부스 12개 정도를 준비하려고 하는데 무조건 참신해야 해요. 가령 연극을 하는 어떤 친구들은 간호사나 의사 복장을 하고 마음약방을 여는 거죠. 부스를 찾아오는 사람들한테 무슨 힘든 일이 있는지 상담하고 처방하는데 약으로 사탕을 주는 거예요. 다른 곳에는 공포 웹툰 작가가 캐리커쳐를 괴기스럽게 그려주는 부스를 운영합니다”

이 사업은 인천문화재단 공모사업에 선정됐다. 예지씨는 면접보고 온 날 안 될 거 같아서 우울했다고 한다. 안 되면 작게라도 하려고 했는데 붙어서 정말 우주의 기운이 자신을 도와주고 있다고 느꼈다고 했다.

“심사위원들 앞에서 사업을 설명하는데 조리 있게 말을 못해서 속상했어요. 그런데 심사위원 중 한 명이 나를 엄청 격려해줬어요. ‘청년은 이래야 한다’면서요. 정리가 안 되더라도 순수하고 거침없이 속에 있는 걸 다 얘기했다고 해서 눈물이 났어요. 어설픈 나를 청년이라고 얘기해줘서요”

아트박람회는 10월 말께 할 계획이다. 예지씨는 어떤 부스를 준비하느냐고 묻자, ‘당신의 눈을 보면서 마음속의 우주(초상화)를 그려주겠다’고 한다.

‘모글리’ 같았던 아이

▲ 청년인력소가 운영하는 ‘네트워크 파티’ 모습.
예지씨의 친할아버지는 부평미군부대 요리사였다. 부평문화원에 할아버지에 관한 자료도 있단다. 할아버지를 통해 미군 잡지나 음반 등을 많이 접할 수 있었던 예지씨의 아버지는 중학교 3학년 때부터 기타를 쳤다.

“할아버지가 참 재밌으세요. 지금도 저랑 티격태격 싸워요. 제가 할아버지를 가장 많이 닮았대요. 할아버지는 그림도 잘 그리시는데 그 영향으로 아버지도 자연스레 음악과 미술을 접했죠. 제가 초등학교 6학년이었을 때 아버지가 락캠프라는 음악클럽을 여셨어요. 그때 제가 밴드음악을 접했어요. 음악 하시는 분들이 우리 집에 많이 오시고 아버지 공연하는 데도 많이 갔죠. 자연히 음악에 관심이 생겼습니다”

예지씨의 고등학생 때 별명은 정글북에 나오는 ‘모글리’였다. 하도 야생마처럼 날뛰어서 친구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모글리가 여전한 것 같은데 지금은 많이 차분해진 거란다.

“학교 때 친구들이 써준 롤링페이퍼를 봤는데 ‘너는 특별한 사람이 될 거야. 유명해진다고 나 모른 척하면 안 돼’라고 쓰여 있더라고요. 타고난 피가 그런지 제가 생각해도 학창시절에 좀 독특한 학생이었죠. 대학 때는 친구는 많지만 혼자 다녔어요. ‘나는 나와 데이트한다’고 하면서요”

여덟 살 때부터 서예를 배운 예지씨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서예를 전공했다. 대학원에서는 밴드 활동도 했다. 그 시절 부모가 락캠프를 부평에서 강화도로 옮겼다. 그곳에서 외국인들에게 사군자 중 하나인 난 그리는 것을 가르쳤다. 평범하지 않은 생활의 연속이었다. 독특한 부모의 유전자와 성장 환경을 갖고 있는 예지씨는 그게 고맙기도 하지만 친구들과 관계가 어렵기도 했단다.

“제가 하는 일을 보고 어떤 친구들은 왜 그렇게 사냐고 지적하기도 했는데 너무 속상했어요. 왜 나를 이해 못할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친하게 안 지내면 편하니까 마음을 닫기도 했죠. 관심사가 뭐냐는 질문에 우주에 관심이 많다고 하면 ‘정신 차리라’는 답이 돌아와서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그래도 예술 하는 친구들이나 어른들은 내 인생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많아요. 우리 엄마는 더 멋있게 살라고 나의 모든 걸 지지해주고 응원해줘요. 오히려 제가 엄마를 말려요(웃음)”

기성세대가 청년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지금도 한가해보이지 않는 예지씨는 하고 싶은 게 무궁무진하다. 그 중 하나가 ‘타임캡슐’이다.

“청년인력소에서 만난 청춘들과 타임캡슐을 묻어 5년 뒤에 만나서 열어보려고 해요. 지원 사업에 신청했는데 결과를 기다리는 중입니다. 물총 싸움 워크숍도 해보려고요. 아무 생각 없이 서로 물총 쏘면서 노는 거예요. 얼마 전에 청년들과 꼬리잡기 게임을 했는데 어린 아이마냥 웃었어요. 단순한 게임을 했을 때 본능적이고 원초적인 웃음이 나오더라고요. 어린 시절 이후로 이렇게 웃어본 게 처음이라면서 좋아했어요. 원초적인 놀이 시리즈를 해보고 싶어요”

예지씨는 ‘청년’이라는 단어가 애매하다고 했다. 뭔가 이용당하는 단어 같다는 말도 했다. 기성세대에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보라 권했더니 ‘재정적 지원’이 절실하다는 말을 강조했다.

“고민이 많아 아직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청년들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무슨 행사를 할 때 홍보 등, 재정적 지원이 절실할 때가 많아요. 문화생활을 즐겨야할 청년들이 돈과 시간이 없어서 못 누려요. 돈이 없어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고 그러니 시간이 부족하거든요. 청년들과 즐길 재밌는 기획을 많이 하려고 하는데 참여할 청년이 없어요. ‘네트워크 파티’가 일요일에 열리는데 편의점 알바, 커피숍 알바 등으로 오지를 못해요. 그게 너무 안쓰럽죠. 그래도 꿈을 포기하지 말고 ‘하고 싶은 일은 청년답게 질러라’라고 얘기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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