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아보카도를 먹어봤다. 버터 맛이 나는 과일이라는데, 말만 듣고는 맛을 상상할 수 없었다. 하도 궁금해서 직접 사서 먹어보기로 했다.

아보카도 껍질은 짙은 녹색이고 크기는 주먹만 했다. 며칠 지나자 껍질이 검게 변하고 손으로 누르니 물렁했다. 이 정도면 잘 익은 것이란다. 아보카도를 반으로 가르면 애호박 색깔의 과육이 드러난다. 가운데엔 계란 모양의 씨가 박혀 있다. 열매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먹은 아보카도의 씨앗은 탁구공보다 조금 컸다.

생김새도 견과류처럼 먹음직스러웠다. 하지만 먹을 수는 없고 대신 이쑤시개로 고정해 씨를 물에 절반쯤 담가 놓으면 2~3주 후 뿌리와 싹이 자란단다. 그대로 해보았더니 씨앗이 갈라지면서 정말 뿌리와 싹이 나왔다.

 
아보카도는 특이한 식물이다. 식물은 동물과 달리 스스로 이동할 수 없기 때문에 자손을 퍼트리기 위해 저마다 독특한 전략을 가지고 있다. 민들레나 박주가리는 갓털에 씨를 매달고 낙하산을 탄 듯 멀리멀리 퍼져나간다. 오래 전 어느 가수가 부른 노래 때문에 민들레가 홀씨를 가졌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홀씨는 꽃을 피우지 않는 민꽃식물의 씨앗을 말한다. 민들레는 엄연히 노랗고 하얀 꽃을 피운다. 민들레가 홀씨라는 건 오해이니 그냥 씨앗이라고 하는 게 좋겠다.

콩이나 봉선화는 씨앗을 꼬투리 안에 숨겨 놓는다. 꼬투리가 잘 마르기를 기다렸다가 툭 터지는 순간 멀리 튕겨나간다. 좀 더 과감한 전략도 있다. 숲길을 걸을 때 바지나 옷에 볍씨 같은 씨앗이 잔뜩 달라붙어 잘 떨어지지 않아 애를 먹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동물의 몸을 이용하는 녀석, 바로 도깨비바늘이다. 무궁화 씨앗에도 털이 달려 있어 다른 동물의 몸에 쉽게 붙는다.

자기희생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식물도 있다. 바로 먹히는 것이다. 우리가 먹는 과일은 죄다 이런 전략을 사용한다. 사과나 배, 수박 등 달콤하고 영양 많은 과육은 결코 씨를 위한 것이 아니다. 오로지 자신을 먹어 줄 동물을 위한 것이다.

지구에 사는 대다수의 조류와 포유류는 과일을 아주 좋아한다. 에너지원이 되는 당분이 많아서다. 그래서 과일의 맛과 향은 자신에게 유리한 ‘동물 맞춤형’으로 진화했다.

새는 얇은 겉껍질을 가진 작고 붉은 계열의 과일을 좋아한다. 포유류는 새가 먹는 것보다 크기가 크고, 거친 껍질과 진한 향의 열매를 먹는다. 색깔도 노란색, 주황색, 빨간색, 녹색 등 강렬하다. 동물들은 저마다 자신의 입맛에 맞는 열매를 먹고 서식지를 오가며 씨앗을 배설한다. 동물의 서식지 근처에 싹이 터 다시 열매를 맺는다. 식물과 동물의 서식지는 아주 깊이 연관돼있다.

바로 이 점에서 아보카도는 특이하다. 아보카도의 원산지는 남아메리카인데, 그곳에는 그렇게 큰 씨앗을 삼키거나 배설할 수 있는 동물이 살지 않는다. 다른 과일과 달리 아보카도 열매의 성분 중 지방이 75%를 차지한다는 점도 유별나다.

진화생물학자들은 아보카도가 예전에 지구에 살았던, 지금은 멸종된 어떤 거대한 포유류에 맞춰 진화한 식물이라 결론 내렸다. 아보카도를 즐겨 먹고 씨앗을 퍼트리던 동물은 멸종됐지만 아보카도는 아직 존재한다. 지금 아보카도에겐 자신을 먹어줄 동물이 필요하다. 이런 현상을 ‘진화론적 시대착오(evolutionary anachronism)’라 한다. 아보카도 이외에도 꽤 여러 종류의 식물이 이런 예에 속한다.

인간에게 삶 속에 들어와 재배의 방식으로 종을 이어가는 것도 물론 다행이랄 수 있다. 하지만 생명이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것은 자생력이다. 이를 위해선 다시, 새롭게 진화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야생 아보카도는 결국 멸종의 길을 밟을 수밖에 없다.

이 이야기가 측은하게 들리는 건, 알파고 시대를 마주한 우리 호모사피엔스의 운명이 이와 비슷하게 느껴지기 때문인지 모른다. 인간이 만든 알파고는 날이 갈수록 진화하는데 과연 인간은 그와 발을 맞춰 미래의 어느 시간을 함께 걸어갈 수 있을까? 아보카도 씨앗 한 알이 별 생각을 다 하게 만든다.

※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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