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소한 산책 <1> 인천 중앙공원

내 일상은 다른 이들에 비해 밋밋한 것 같다. 나는 남편과 둘이 작은집에서 단출하게 산다. 식구가 적어서인지 크게 바쁜 일도, 신경 쓸 일도 적은 편이다. 올해 초, 글쓰기에 좀 더 집중하겠다며 직장을 그만둔 뒤론 밖에 나가는 일도 확 줄었다. 기껏해야 찬거리를 사러 동네 슈퍼마켓에 다녀오는 정도가 외출의 전부였다.

밥 먹고 치우고 책 읽고 글 쓰고 뉴스를 보고 잠을 자는 단순한 나날들. 내리 사흘 동안 내 손으로 현관문을 한 번도 열지 않은 적도 있었다.

집에 있는 걸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막상 집에 머물 수 있는 무한자유가 주어지니 어느새 지루하고 답답해졌다. 그럼 밖으로 나가면 되지 무슨 걱정인가? 그런데 게으름인지 귀찮음인지, 아니면 밖에 나갔다가 죽은 귀신이라도 붙은 건지,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발목을 잡았다. 미세먼지가 심하거나 비가 오는 날은 그나마 날씨 핑계를 대기 좋았다.

하지만 하늘, 햇빛, 공기, 바람, 온도, 꽃과 나무까지 모두 환상적이게 좋은 날, 마치 바깥에 있는 모든 존재에 내려진 선물 같은 날이 불쑥 찾아온다. 이런 날엔 아침부터 괜히 안절부절못한다. ‘날씨도 좋은데 잠깐 나갔다 올까?’ ‘이런 날이 오늘 하루뿐이겠어? 책도 읽어야 하는데 그냥 있자’ 두 생각이 팽팽하게 맞선다.

책을 펼쳐 읽다가 화분에 물을 주고 선반 먼지를 닦는다. 그러다 흘끔 창밖을 내다본다. 새파란 하늘 덕분에 햇빛이 더 환해보이는 것 같다. 지나가는 구름을 따라 시선도 흘러간다. 다시 고민한다. 나갈까?

배가 고파 밥을 먹었다. 해가 서쪽으로 살짝 기울었다. 늘어진 티셔츠를 깔끔한 것으로 갈아입어볼까 생각한다. 하지만 아직 나갈 상황이 아니다. 책을 절반도 읽지 못했다. 오늘 안에 꼭 서평을 써야 한다. 억지로 책을 펴든다. 밥을 먹은 탓인지 노곤하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고 말았다. 서늘한 기운에 눈을 떴다. 어느새 하늘에 저녁 바람이 스며들었다.

이 선물 같은 날이 이렇게 사라지고 마는 건가? 저 너머로 떨어지는 해와 함께 내 하루도 곤두박질쳐버릴 것 같아 서글프기도 하다. 이래선 안 되지. 아직 해가 지지 않았다. 벌떡 몸을 일으켜 세웠다. 티셔츠와 바지를 갈아입고 작은 가방에 지갑과 핸드폰을 넣었다. 운동화를 신었다. ‘띠리리’ 소리와 함께 현관문이 열렸다.

모든 산책이 좋았다

▲ 중앙공원 중 인천지하철1호선 인천터미널역과 연결되는 곳 일대. 나무들이 꽤 우거져있다.
지난 3월의 어느 날, 이렇게 산책을 시작했다. 30분 후 돌아오니 집안에 어스름이 들어와 있었다. 다 읽지 않은 책이 책상 위에 놓여있었고 싱크대엔 점심 해먹은 그릇이 그대로 담겨 있었지만 머릿속에선 조금 전 길에서 본 노란 개나리꽃이 자꾸 떠올랐다. 책, 설거지. 그런 건 애초에 중요한 게 아니었다.

특별한 목적 없이 길을 걷는다는 것이 내겐 낯설고 어려웠다. 출근길도, 물건을 사러 가는 길도, 약속장소로 향하는 길도, 운동하러 가는 길도 아닌, 바깥바람을 쐬러 나가는 길. 고작 하늘을 보고 햇살과 바람을 느끼고 싶다는 이유로 집을 나서려는 나를, 나는 너그럽게 바라보지 못했다. 오만가지 읽을 책과 써야할 글들이 있는데, 한가롭게 여유를 즐기는 것을 내게 허락하지 않았다. 귀찮음과 게으름을 핑계로 자신을 다그치고 있었다. 그깟 30분의 시간도 주지 않은 채 말이다.

이제 산책은 빼놓고 지나가면 섭섭한 소중한 일과가 됐다. 매일 나가야하는 것도 아니고 시간과 코스를 정해놓지도 않았다. 원하는 날, 원하는 때에 언제든 운동화를 신을 수 있다. 산책한 시간들 덕분에 오늘처럼 날씨 좋은 날에도 책상 앞에 앉아 마음의 부대낌 없이 꿋꿋하게 글을 마감하는 힘도 얻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산책을 한 모든 날이 좋았다’고.

그럼 이제 역사적인 내 첫 산책길을 소개하려한다. 우리 동네에서 시작해 앞으로 다른 동네 산책길도 다녀볼 예정이다.

“소곤소곤 말하란 말이야!”

▲ 중앙공원 산책로.
내가 자주 가는 곳은 ‘중앙공원’이다. 동암역 남광장부터 시작해 시청과 예술회관을 지나 인천터미널역까지 이어진 기다란 모양의 넓은 공원이다. 1980년대부터 조성을 시작한 오래된 공원이어서 나무도 제법 굵고 그늘도 짙다. 바로 옆에 아파트단지와 주택가가 있어 새벽부터 밤까지 가벼운 차림을 하고 공원을 걷는 이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운동기구 몇 가지와 작은 분수대도 있다.

집에서 30분 걸으면 인천터미널역과 연결된 이 공원에 도착한다. 나무 사이로 산책로가 나있어 한낮에도 더운 햇볕을 피해 시원하게 걸을 수 있다. 걷다가 앉아서 쉴 의자도 곳곳에 있다. 목이 말라 물을 마시며 의자에 잠시 앉아 쉬고 있자니, 오랜만에 떠오르는 이가 있다.

12년 전 이맘 때 나는 연애 중이었다. 점심 무렵 통화하다가 남자친구와 말다툼을 했다. 나는 씩씩거리며 퇴근시간을 기다렸다. 부모님이 계시는 집에선 맘 놓고 싸울 수가 없었다. 퇴근길 인천터미널역에 내려 공원을 걸으며 남자친구에게 전화했다. 그도 나도 한 치의 물러섬이 없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구두를 신은 발이 아파 공원 한쪽 의자에 앉았다.

자리도 잡았겠다, 더욱 열을 올리며 통화하는데 저만치에서 누군가 소리를 지르는 것 같았다. 옆을 보니 아무도 없었다.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통화를 이어갔다. 이번엔 더 큰 소리가 났다.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아무도 없는 줄 알았던 의자 등받이 위로 시커먼 남자어른의 상체가 올라왔다. 헝클어진 머리, 얼룩덜룩한 티셔츠, 퀭한 두 눈. 영락없는 노숙인이었다.

“&%$#!&*%#$*@~~” “네? 뭐라고요?” “시끄럽다고! 저리 가서 통화해. 소곤소곤 말하란 말이야, 소곤소곤!”
‘소곤소곤’이라니! 그게 어디 싸움의 언어로 가당키나 한가? 그는 윽박지르듯 빽 소리를 지르고 난 뒤에도 내 행동을 계속 주시했다. 놀라고 당황해 머뭇거리는 나를 감시라도 하듯이. 더 있다간 돌이나 소주병이 날아올지 몰랐다. 남자어른에게도, 남자친구에게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어 그냥 전화를 끊고 말았다. 싸움은 거기서 끝났다. 공원을 벗어나기 전 뒤를 돌아보니 다시 의자에 누웠는지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열린 공간에서 살아가는 그들을 존중하는 방법

▲ 인천터미널 근처 중앙공원 분수대.
이듬해 나는 부모님 집에서 독립해 한동안 다른 동네에서 살았다. 한참 시간이 흘러, 그렇게 싸우던 남자친구와 결혼해 다시 이 동네로 이사를 왔다. 그리고 몇 년 후, 오로지 산책을 목적으로 이 공원을 처음 걸은 것이다.

통과하거나 지나쳐가는 곳이 아닌 목적지로써 공원은 느낌이 많이 달랐다.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던 지인이 어느 날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온 것처럼, 이 공원이 내게 그랬다. 지하철 시간에 쫓겨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나무와 화초들을 정겹게 느끼고 의자에 앉아 정담을 나누는 중년 여성들 사이에 끼어들어 “날씨가 참 좋지요” 하고 말을 건네고 싶다. 은근슬쩍 “이런 공원이 가까이 있어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고, 괜히 공원 자랑도 주거니 받거니 하고 싶다.

아마 그 노숙인에게도 이 공원이 남달랐나 보다. 제대로 된 밥 한 끼 먹었을지 알 수 없는 그날, 지친 몸을 뉘인 공원에서 주변을 빙빙 돌며 싸움의 말을 쏟아내는 내가 얼마나 거슬렸을까. 내일의 든든한 한 끼라도 보장됐다면 자신의 영역에 불쑥 들어온 나를 조금 여유 있게 바라볼 수 있었을까?

다시 찾은 공원에 그는 없었다. 많은 이들이 오가는 열린 공간, 공공의 장소를 삶의 정거장이 아닌 목적지로 살아가던 이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사라진 건 아니다. 보이지 않을 뿐. 그가 고된 하루를 시작하는 곳도, 어쩌면 마칠 곳도 이곳 공원일지 모른다. 목소리를 낮춰 소곤소곤 통화하는 것, 내가 시민으로서 그의 삶을 존중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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