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꽃 ⑨

노동으로 흘린 땀이 마른 자국이 마치 꽃과 같아 소금꽃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예비)노동자들이 시민기자로 참여해 노동 현장이나 삶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흐르지 않길 바라던 시간은 흐르고, 마주하고 싶지 않던 어둠은 찾아온다. 그리고 어김없이 알람은 울린다. 저녁 8시 30분, 몸을 일으켜 세운다. 냉장고 문을 열고 고추장과 김을 꺼낸다. 밥통을 연다. 밥을 해놓은 지 며칠이 지난 걸까. 하얗던 밥이 누렇게 변해있다. 약간의 역함은 덤이다. 고추장을 밥에 넣고 대충 비빈 뒤 김과 함께 입속으로 욱여넣는다. 5분 만에 저녁식사는 끝난다. 대충 이를 닦고 머리를 감으면 출근준비를 마치게 된다.

자취방에서 3분 거리에 있는 편의점으로 향한다. 그곳이 일터다. 8시 57분, 여느 때처럼 9시를 넘기지 않는다. 내 사전에 지각은 없다. 사장님과 교대한다. 잠시 앉아 정신을 차려본다. 벌써 졸음이 밀려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눈꺼풀 위에 잠귀신이 들러붙은 듯하고, 어깨에는 돌덩이가 올려있는 듯하다. 이럴 땐 억지로라도 몸을 움직여야한다. 고무장갑을 끼고 걸레를 빨아 계산대와 손님용 의자와 식탁을 닦는다.

밤 12시, 물품을 실은 트럭이 도착한다. 유통기한이 지난 인스턴트식품을 빼내어 계산대 옆에 보관해둔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무료로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먹을거리다. 물품들을 정리하고 인스턴트식품을 데워 먹는다. 이렇게라도 돈들이지 않고 배를 채울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새벽 5시가 되면 손님이 거의 오지 않는다. 청소할 시간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청소기와 물걸레로 편의점 안을 쓸고 닦는다. 다음으로 쓰레기통과 라면ㆍ삼각김밥 찌꺼기가 뒤엉킨 채 나를 기다리고 있는 음식물통을 치운다. 그리고 밖 테이블에 보란 듯이 널브러져있는 술병들과 과자봉지를 정리한다. 6시, 두 번째 물품을 실은 트럭이 도착한다. 물건들을 정리하고 잠시 쉬고 있으면 사장님이 교대하러 나온다. 오전 7시, 퇴근한다.

하루일과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가 쪽잠을 청한다. 1시간 정도 눈을 붙이고 나면 다시 알람이 울린다. 또다시 출근할 시간이 다가왔음을 알려주는 소리다. 화장실로 가 얼굴을 보니 다크서클이 눈두덩을 파리하게 감싸고 있다.

두 번째 출근을 위해 대학교 도서관으로 향한다. 근로장학생 신분으로 학교에서 일하는 것인데, 국가에서 운영하는 제도이다 보니 시급이 괜찮다. 원래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면 몸이 부서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앞섰다. 그래서 12시까지 3시간만 일하기로 했다. 일은 간단하다. 도서관에 들어온 새 책들에 바코드를 붙이면 끝이다. 많은 책들이 들어오는 것이 아니어서 여유롭게 해도 괜찮다. 여유롭게 졸음을 청한다.

두 번째 알바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다. 무언가를 먹고 싶지는 않지만 배에서 밥을 달라고 떼를 쓰니 라면을 공급한다. 뜨거운 물로 샤워하고 시계를 보니 오후 1시를 갓 넘겼다. 자야한다. 곧 다시 일어나 출근해야한다.

2013년, 대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의 일이다. 돈이 필요했다. 개강하면 알바를 할 수 없으니(학과 생활에 시달려야했다) 개강한 뒤 몇 달 동안 쓸 돈을 여름방학 두달 안에 모아야 했다. 두 달이면 충분하리라 생각했다. 열심히 일하면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다. 순진했고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당시 최저임금은 시급 4860원이었다. 하지만 편의점에선 4500원을 줬다. 그나마 근로장학생 시급은 6000원이었다. 하루에 편의점에서 10시간, 학교 도서관에서 3시간을 일했다. 주 5일을 일해서 31만 5000원을 벌었고, 한 달이면 130만원 안팎이었다.

밤낮이 바뀌어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탓에 두통이 찾아왔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누르며 첫 월급 통장을 바라봤다. 전혀 기쁘지 않았다. 물론 미리 계산해두었기에 얼마가 들어올지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 내 노동의 값어치를 구체적으로 수치화한 것을 마주했을 때, 내게 찾아온 감정은 허무함과 왠지 모를 비루함이었다.

머지않아 2018년 최저임금이 결정된다. 많은 사람들의 요구대로 최저임금 1만원 시대는 올 것인가. 지금 이 순간에도 최저임금으로 적시된 자신의 값어치를 마주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사회가 강제한 최저임금 인간들. 추락하는 존재가치를 방관하는 사회를 향한 그들의, 우리의 모반(謀反)을 기다린다.

/강재원 시민기자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