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릇파릇 자라던 식물들이 갑자기 옆으로 휙휙 쓰러졌다. 줄기를 붙들 새도 없이 쓰러진 잎들이 시들었다. 안타까움에 눈을 번쩍 떴다. 꿈이었다. 어제도 식물 줄기가 부러지는 꿈을 꿨다. 비슷한 꿈을 연속으로 꾸고 있다. 누운 채, 이 꿈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봤다.

나는 오래 전부터 꿈에 관심이 많았다. 초등학교 때 꾼 꿈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을 정도다. 중ㆍ고등학교 시절엔 도서관에서 공부는 하지 않고 해몽풀이 책을 찾아 뒤적이기도 했다. 그러다 프로이드의 ‘꿈의 해석’을 만났다. 조금 딱딱하고 사례로 실린 꿈 내용과 그림이 무서웠던 기억이 난다.

크게 고개를 끄덕인 부분이 있다. 그는 모든 꿈을 소원성취를 바라는 마음으로 해석했다. 예를 들어, 시원하게 소변을 보는 꿈을 꾸다가 깨어나 보면 당장 화장실에 가야할 만큼 급한 상황인 경우가 많다. 화장실에 가고 싶은 마음을 꿈이 대신 이뤄주려 했다는 것이다.

 
프로이드의 꿈에 대한 해석은 아직 가설일 뿐이다. 꿈이 무엇인지, 왜 꿈을 꾸는지 아직 과학적으로 밝혀진 것은 없다. 다만, 꿈이 렘수면(REM sleep, rapid eye movement sleep)과 관련 있다는 것은 실험으로 확인됐다.

잠자는 사람의 눈동자가 움직이고 때론 팔다리가 움찔움찔 하는 것을 본 적 있을 것이다. 두뇌활동이 마치 깨어 있을 때처럼 활발하지만 몸의 근육은 마비돼 움직이지 않는다. 유독 안구만 부지런히 움직인다. 그래서 ‘눈이 빠르게 움직인다’는 영어의 앞 글자를 따 렘수면이라 부른다. 잠을 자다가 무거운 것에 눌린 듯 몸이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을 때 ‘가위눌렸다’고 하는데, 렘수면으로 들어가기 직전의 상태일 가능성이 크다. 귀신이 장난치는 것이 아니니 안심하고 다시 잠을 청하면 된다.

과학자들은 렘수면에 빠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흔들어 깨운 뒤 꿈 내용을 말해보라고 했다. 여러 연구에서, 렘수면 상태에서는 70~80%가, 그렇지 않은 상태에선 9%만이 꿈을 기억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다. 렘수면과 꿈은 관련이 있다는 것, 그리고 꿈은 기억을 위한 게 아니라는 것.

기억할 필요는 없을지언정 뇌가 만들어내는 꿈에 어떤 메시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과학의 논리와 합리성을 좋아하는 한편으로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신비주의에도 관심이 많다. 꿈으로 현재 내 삶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답을 구하고 싶다. 눈만 뜨면 꿈 내용을 중얼중얼 읊조리는 나를 남편은 가끔 한심하게 바라본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본 적이 없고 세상에 존재할 것 같지 않은 장면이 드물게 꿈에 나타날 때면 그렇게 신비롭고 놀라울 수가 없다. 그 의미를 찾아 현재의 삶으로 끌어올 수 있다면, 내 삶도 그만큼 신비와 놀라움으로 채워지지 않을까.

저명한 신화학자인 제레미 테일러는 꿈의 의미를 짚어보는 것을 ‘꿈 작업’이라 했다. 이를 위해선 몇 가지 기억해야할 것들이 있다. ‘모든 꿈은 건강과 온전함에 도움을 준다, 꿈은 꿈을 꾼 이가 이미 알고 있는 사실만 전하지 않는다, 꿈을 꾼 사람만이 꿈의 의미를 알 수 있다, 꿈꾼 이가 ‘아하’ 하고 느끼는 것은 무의식에서만 알고 있던 것을 불러내는 것이다, 하나의 이미지만 가진 꿈은 없다, 꿈은 은유와 상징을 사용한다, 꿈은 삶의 문제를 직면해 해결하게 하는 창의성과 능력을 반영한다’(‘사람이 날아다니고 물이 거꾸로 흐르는 곳’ 제레미 테일러 씀)

내 꿈의 의미가 무엇인지 짐작이 간다. 넉 달 전 직장을 그만둔 뒤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집안에서 이것저것 하는데 재미가 붙어 집밖에 나가는 일이 적어졌고, 그만큼 운동량도 줄었다. 체력이 떨어졌는지, 두세 시간 걸어도 거뜬하던 것이 요즘엔 한 시간만 걸어도 지친다. 꿈은 내 체력이 떨어지고 있으니 조심하라는 경고의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꿈을 꾼 뒤로 나는 열심히 밖으로 나가 햇빛을 보고 걷는다. 집안에선 요가매트를 깔아놓고 제자리 뛰기를 하고, 때론 유투브 춤 영상을 보며 열심히 따라해 보기도 한다. 더 이상 꿈에서 식물이 죽지 않는다. 역시, 삶은 신비 그 자체가 아닌지!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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