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운동 기간에 모든 신경이 후보자들에게 쏠려 있었다. 다른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관심이 많았던 만큼 토론회도 빠짐없이 챙겨봤다. 그런데 토론회를 보면서 이번 주 과학이야기의 주제를 정하게 될 줄은 몰랐다. 글 소재를 찾는 것이 큰 일 중 하나인데, 이렇게 얻어걸리면 아주 신이 난다. 내게 기쁨을 안긴 이는 바로 홍준표 후보다.

그가 문재인 후보에게 “4대강 때문에 녹조가 많이 늘었다, 동의하십니까?”라고 물었다. 그리고 스스로 “강의 유속 때문에 녹조가 많이 발생하는 게 아니라, 지천에서 흘러들어온 질소와 인을 포함한 축산 폐수, 생활하수가 고온다습한 기후와 만났을 때 녹조가 생기는 겁니다”라고 답하며 4대강 사업과 녹조가 관련이 없다는 주장을 펼쳤다.

 
여러 사실 중 한두 가지 정보만을 빌려 자신이 원하는 답으로 억지로 이끄는 것은 엄밀히 말해 상대를 속이는 짓이다. 그는 문재인 후보만이 아니라 토론회를 보고 있던 국민들까지 모두 속였다. 왜냐하면 홍준표의 말은 사실이면서 사실이 아니기 때문이다. “녹조는 질소와 인이 고온다습한 기후와 만났을 때 생긴다”는 말은 맞지만, 녹조는 이런 조건만으론 절대 생기지 않는다. 녹조가 생기려면 반드시 갖춰야할 것들이 있다. 질소와 인, 기후(물의 온도), 일조량, 그리고 물의 체류시간이다.

녹조는 남조류가 대량으로 번식해 수중생태계를 장악한 현상이다. 물이 녹색으로 변했다는 것은 생태계의 균형이 깨졌다는 뜻이다. 남조류는 녹조의 주범이란 오명을 쓰고 있지만, 지구에 생명이 살게 된 건 모두 남조류 덕분이다. 45억 년 전, 초기 원시 지구에는 산소 대신 독성이 강한 기체가 가득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무거운 기체인 이산화탄소가 바닷물에 녹아들어갔고, 이 이산화탄소와 햇빛을 이용해 스스로 에너지를 만들어낸 지구 최초의 생산자가 탄생했다. 광합성세균인 남조류다. 남조류는 이산화탄소의 탄소를 사용해 포도당을 만들고 남은 산소는 밖으로 배출했다. 남조류가 열심히 광합성을 한 덕분에 산소가 풍부해졌고, 다른 생물들이 살아가는 환경을 만들었다. 남조류는 동물성 단세포의 먹이가 되기도 했다.

이렇게 여러모로 유익한 남조류는 온도가 높을 때 잘 번식한다. 여름처럼 기온이 올라가거나 햇빛이 잘 들면 남조류는 꾸물꾸물 번식할 준비를 한다. 질소와 인과 같은 영양소가 더해지면 개체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가느다란 실처럼 서로 엉켜 덩어리를 이룬다. 모여 있을 때 동물성 플랑크톤에게 덜 잡아먹히기 때문이다.

남조류에는 엽록소가 있어 햇빛이 있는 동안엔 광합성과 호흡을 동시에 하지만 밤이 되면 광합성을 멈추고 호흡만 한다. 엄청난 수의 남조류는 밤 동안 물속의 산소를 모조리 흡수해 다른 생물들이 호흡할 산소를 없애버린다. 그래서 물고기를 비롯해 많은 수중동물이 질식해 죽는다. 수명이 짧은 남조류는 부패될 때면 악취도 심하게 난다. 4대강 주변 수돗물에서 흙냄새가 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적당량의 남조류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물이 적당한 속도로 흐른다면 남조류는 물을 독차지하지 못한다. 물이 흐른다는 것은 어디선가 새로운 물이 계속 유입된다는 뜻이고, 그러면 물의 온도도 계속 오르기 힘들다.

물은 흘러야한다. 그리고 죄는 남조류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이 바뀌었으니 이제 물이 맘껏 흐르길 기대해도 될까? 그리고 진범을 잡아서 남조류의 누명을 벗겨줘야 하지 않을까?

※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