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연재] 아픈 역사의 현장, 부평토굴 (4-마지막 회)

▲ 옛 목포 일본영사관 뒤편에 있는 목포부청 방공호(등록문화재 588호).
지난 세 번의 기획연재를 거치며 부평토굴의 숨은 이야기들을 확인해봤다. ‘부평의 새우젓토굴’로 이따금씩 소개됐던 이곳은 사실, 부평의 일본육군조병창과 삼능사택, 영단주택과 같이 역사적인 아픔이 담긴 곳이다. 단순히 인공으로 판 굴이 아닌, 일제강점기에 형성된 부정적 문화유산(Negative Heritage)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조용하지만 묵직한 반향을 일으키며 재조명을 받는 장소다.

광복이후 존재가치가 없어진 부평의 여러 토굴은 해방이후 마을 사람들에 의해 하나 둘 다른 모습으로 이용됐다. 냉장고의 역할을 대신하거나 버섯 재배와 간장저장 창고, 새우젓 숙성 굴로 활용되며 생계수단을 책임지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일부 마을 사람에게는 시원한 피서지 역할도 했다. 참으로 역설적인 부분이 우리 민족을 수탈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임에는 틀림없으나, 광복 이후 마을 사람들에게는 삶과 밀접한 곳으로 변해갔다는 것이다.

부평토굴 24곳 중 새우젓 굴로 활용된 C구역의 토굴들은 몇몇 사람들만 드나들며 지난해까지 사용돼왔다. 그로인해 일제강점기에 판 원형 그대로 모습이 상당부분 보존된, 남다른 의미가 있는 곳으로 남았다. 여기저기 뚫려있는 착암기의 흔적, 거리측정이나 지지목으로 사용하기 위해 쓰인 것처럼 보이는 나무 말뚝, 가지 굴을 파다 만 흔적, 폭파의 흔적으로 쌓인 돌무더기 등이 비교적 온전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토굴을 둘러싸고 있는 함봉산의 암맥은 주로 유문암으로 구성돼있다. 당연히 토굴 내부에서 볼 수 있는 암석들도 유문암이다. 화산암의 일종으로 화강암에 상당하는 화학 조성으로 구성돼있다. 유문암 내에 생긴 방해석(탄산칼슘 CaCO3)으로 인해 종유관과 종유석으로 변해가는 것들을 토굴 중간 중간에서 볼 수 있다. 작은 종유관을 떼어내어 염산과 반응을 시켜보았는데 활발한 화학반응을 보여 탄산칼슘으로 구성돼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렇게 부평토굴은 비교적 온전히 일제강점기 이후의 모습을 유지해오면서 자연적인 현상 또한 간직하고 있다.

▲ 부평토굴의 종유관.
전국적으로 무수히 많은 지하벙커와 방공호 등이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졌다. 이 중에서 제주의 모슬포 알뜨르비행장 지하벙커, 포천의 방어벙커, 목포문화원이었던 옛 목포 일본영사관 뒤편에 있는 목포부청 방공호 등이 현재 등록문화재로 지정돼있다. 부평토굴 또한 몇가지의 문제점 등을 해결하고 근대문화유산으로서 보존ㆍ활용가치가 인정될 수 있게 준비한다면 충분히 등록문화재로 인정받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등록문화재로 인정받기에 앞서 올해 부평문화원은 부평토굴을 역사와 문화가 담긴 체험교육의 현장으로 만들어 일반 사람들에게 선보일 예정이다. 지난해에 이어 어르신문화프로그램 사업의 일환으로 부평토굴을 콘텐츠로 만드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부평토굴을 찾아다니며 관련한 사람들을 만나 구술사 작업을 하면서 콘텐츠로서 가능성을 발굴했다면, 올해는 이를 활용하는 단계다.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지역주민들에게 부평토굴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 이로써 부평을 알릴 계획이다.

사업은 우선, 토굴 24곳 중 가장 활용하기 좋은 구조를 선정해 부평의 역사와 토굴 이야기를 볼 수 있게 안내 자료를 설치를 하는 것이다. 이때 부평토굴의 이야기만이 아닌, 조금 더 넓은 시각으로 부평의 근현대사를 볼 수 있게 일본육군조병창, 영단주택, 삼능 사택 등에 대한 정보도 함께 담을 계획이다.

▲ 부평토굴의 종유석.
또한 어르신문화프로그램 사업인 만큼 참여하는 어르신들에게 잠재돼있는 문화적 감수성을 개발하는 과정도 진행한다. 다양한 문화예술창작활동으로 부평토굴을 표현하고 이를 토굴 내부에 전시할 예정이다. 또 전국적으로 일제강점기에 만든 방공호나 벙커 등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속성을 기반으로, 사업에 참여 어르신들의 생각을 글귀로 적어 캘리그라피로 표현하기도 하고 노래가사로 바꿔 불러보거나 부평토굴 이야기를 그림자극으로 만들어 토굴 안에서 전시ㆍ상영하는 계획도 세워뒀다.

이런 과정으로 토굴을 문화체험 공간으로 변화시켜 다양한 연령대의 지역주민들이 체험하고 느끼고 교훈을 얻을 수 있는 곳으로 만들어갈 계획이다.

부평토굴을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알리기 위해서는 여러 과제도 남아있다. 안전문제와 명칭 문제다. 부평토굴이 만들어진 시기는 짧게 잡아도 1940년대이기에 7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부평토굴은 암반에 뚫린 굴인데, 파인 이후 오랜 기간 공기 중에 노출됐으며 토굴 내부는 지하수가 조금씩 새어나와 바닥에 물이 고여 있어 풍화작용이 생겼을 수도 있다. 관련 전문가에 의한 안전진단도 꼭 거쳐야할 과제다.

부평토굴은 지표면에서 가로 형식으로 암반으로 된 산을 뚫고 들어간 넓은 인공 굴이다. 굴을 표현하는 단어는 여러 개 있다. 동굴ㆍ땅굴ㆍ갱도ㆍ석굴ㆍ토굴 등이 흔히 쓰이는 용어다. 동굴은 자연적으로 생긴 깊고 넓은 굴을 말하는데 대표적으로 고수동굴ㆍ만장굴ㆍ고씨동굴 등이 있다. 땅굴은 땅속으로 뚫린 굴인데 보통 북한에서 남침용으로 판 굴 등을 말하는 데 쓰인다. 갱도는 주로 광산에서 갱 안에 가로로 뚫어 놓은 길을 말한다. 석굴은 말 그대로 바위에 뚫린 굴이다. 동굴과 땅굴, 갱도, 석굴 중 부평토굴과 어느 하나 딱 맞아 떨어지는 것은 없다. 각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조금씩 담고 있기는 하다.

토굴이라는 명칭은 부평문화원이 지난해 콘텐츠 발굴 사업을 하기 이전부터 ‘부평새우젓토굴’로 사용돼왔던 것에서 ‘새우젓’을 빼고 차용했다. ‘토굴’ 혹은 ‘부평토굴’이라는 명칭을 앞으로 어떤 식으로 불러야할지 한번쯤 생각해봐야할 부분인 듯하다.

▲ 부평문화원은 부평토굴 이야기를 그림자극으로 표현할 계획이다.
일본군에 의해 누군가는 강제로 부평에 끌려와 토굴을 팠다. 이유도 없이 그저 목숨을 담보로 일본군의 강요와 억압에 따라 계속 굴속에 들어가야만 했다. 폭약이 터지면서 산산조각난 돌들을 밖으로 꺼내는 작업을 진행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두컴컴한 굴속 내부만큼이나 앞날도 보이지 않는 암담한 세월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광복을 맞이했고 더 이상의 일본군의 강압도, 굴을 깊게 파기 위한 발파작업의 소리도 들리지 않게 됐다. 부평토굴은 그렇게 원래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흉물스럽게 산 이곳저곳에 흉터를 남기며 과거가 됐다.

단순한 방공호나 무기창고를 위해 파내었을 수도 있고, 폭격에 대비한 조병창과 군수공장의 지하공장화를 위한 목적이었을 수도 있다. 사실 그 어떤 목적이었어도 아픈 역사의 현장임에는 변함이 없다.

우리는 이곳을 방치하거나 잊어서는 안 된다. 다소 무거울 수 있는 주제이지만 부평토굴로 민족의 아픔을 기억하고 피와 눈물이 서려있는 곳으로, 교훈을 얻는 공간으로 우리의 삶 속에 안착하길 기원해본다.

/김규혁(부평문화원 기획사업팀장) 시민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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