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사람] 최규호 재즈카페 ‘공감’ 사장

뭐라 소개해야할지 한참 고민했다. 재즈카페 ‘공감’의 사장? 연극인? 마임이스트? 뮤지션? 동물애호가? 조각가? 멀티 엔터테이너가 아니냐는 질문에 ‘멀티’는 빼고 그냥 엔터테이너로 불러 달란다.

일요일인 지난 4월 23일, 인천문화예술회관 앞 남동구 구월동 문화의 거리에 있는 재즈카페 ‘공감’에서 최규호 사장을 만났다. 일요일에는 직원이 아무도 출근하지 않아 혼자 서빙뿐만 아니라 공연을 해야 한단다.

인터뷰를 하다가 서빙을 하거나 손님들과 대화를 해야 해 대화가 끊기고 기다리는 시간이 많았지만 지루하지 않았다. 아니 모든 게 유쾌했다. 최 사장은 본인을 외계인, 에어리언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왕 망할 거면 좋아하는 거 하자

▲ 최규호 재즈카페 ‘공감’ 사장.
그가 건네준 명함에는 ‘한 잔의 술을 팔기보다는 또 다른 문화를 팔고 싶습니다’라는 문구가 가장 위에 적혀있고, ‘사장’이 아니라 ‘공감지기’ 최규호라 쓰여 있다. 카페 ‘공감’은 지난해 12월 15일 오픈했다. 그 전에는 최 사장이 고기 집을 운영한 곳이다.

“이 동네에서 2000년에 라이브클럽 ‘규호’를 오픈해 17년간 운영했습니다. 처음에는 뮤지션들이 공연하고 손님들이 감상하는 공간이었어요. 문화의 거리에 우리 클럽이 처음 만들어지고 나서 5년 동안은 손님이 많았는데 7080 노래방들이 우후죽순 생기면서 사양길로 접어 들었죠. 우리는 예술인들이 공연하는 정통 클럽을 고수했거든요. 그리고 작년까지 이곳에 ‘농담’이라는 고기 집을 운영했는데 구제역 등으로 어려움을 겪었어요. 이왕 망할 바에는 내가 좋아하는 음악으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공간으로 만들자고 결심했죠. 그런데 주변에서 ‘저잣거리에서 이런 거 하면 안 된다’고 많이 말렸어요.(웃음)”

최 사장은 이 공간을 보고 ‘누군가 희망을 발견해 또 다른 가게를 만들면 문화의 거리답게 보고 즐길 수 있는 문화가 충분한 곳으로 되지 않을까’ 하고 바랐다.

“지금은 먹거리 외엔 다른 문화가 없어요. 꿈이 있다면, 이곳이 영국의 코벤트 가든처럼 재주 많은 사람들은 자유롭게 공연하고, 시민들은 볼거리가 풍부한 문화의 거리가 됐으면 합니다”

그는 자동차를 팔고 오토바이도 팔고 대출 받아 이곳을 운영하고 있는데 적자상태를 못 면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자신의 에너지와 돈이 소멸될 때까지 계속 이 공간을 지킬 것이며, 지금까지 하고 있는 예술 활동도 멈추지 않겠다고 했다.

“공연 장소가 없으면 길거리에서 하면 되죠. 꼭 장소가 있어야만 되는 건 아닙니다. 올해가 제가 마임을 시작한 지 40년이 되는 해입니다. 장소 섭외가 안 된다면 길거리에서 공연할 거에요. 그런 모습을 후배들한테도 보여줘야 합니다. 올해는 제게 뜻 깊은 해라서 모든 걸 신중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세계 최초로 클라운 마임이란 장르 개척

1958년 인천 동구 송월동에서 태어난 그는 지금의 정석항공과학고등학교인 한독실업고등학교 전기과에 입학했다. ‘전문적인 마이스터를 길러내는 학교로, 졸업하면 독일로 유학을 가거나 대한항공에 취업했던 수재만 가는 학교’라고 그는 덧붙였다.

“우리 학교에서 한독예술제를 했는데, 제가 총감독을 맡았어요. 고등학생 신분으로 드라마도 만들고, 마임(무언극)이 뭔지도 모르고 했습니다. 졸업하자마자 서울에 있는 극단에서 마임을 하고 연극도 했습니다”

서울에서 활동하던 그는 1979년 인천 중구 경동에 소극장 돌체를 만들어 ‘취보영감의 소집영장’이라는 코미디 작품을 처음으로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 이듬해 군에 입대해 군악대 문화선전대 사회자로 활동했다. 엔터테이너의 기질이 있던 그는 사회자로 만족하지 못했다. 군악대에서 드럼과 색소폰을 배웠다. 지금은 플롯, 하모니카, 기타, 콘트라베이스 등을 다룰 수 있다. 학원에서 돈을 주고 배운 건 하나도 없다.

“인생은 무조건 즐거워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아픔도 즐거움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사람이 못하는 일이란 없다고 봐요”

1983년 제대 후 소극장 돌체 대표를 맡아 운영했다. 돌체는 남구 문학동으로 자리를 옮겼고, 지금은 최 사장의 부인인, 연극인 박상숙씨가 대표를 맡고 있다. 돌체는 1995년부터 국제클라운마임축제를 열고 있다. 올해로 22회째다.

“강원도 춘천마임축제는 몇 억원씩 지원을 받고 있는데, 우리는 민간이 주도해 20년 넘게 지속하고 있습니다. 야심이 있거나 돈을 벌려고 하는 건 아니지만 좀 더 행사가 커졌으면 하는 마음도 있는데 뭐든 과하면 탈이 나니까 조심해야지요. 돈이 없어도 공연을 해야 하는 이유가 있어요. 우리 페스티벌이 전 세계적으로 알려져, 공연이 열리는 7월 즈음이면 다른 나라 마임이스트들한테 공연을 하겠다는 연락이 와요. 남구에서 축제 비용의 일부를 지원하지만 매해 큰 적자입니다”

돌체가 주최ㆍ주관하는 축제의 공식 명칭은 ‘인천국제클라운마임페스티벌’이다. 클라운마임은 최 사장이 세계 최초로 만든 마임의 한 장르다.

“클라운이 광대라는 뜻이잖아요. 신기한 것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드라마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마임입니다. 클라운마임을 하려면 여러 가지를 배워야하니까 최소 10년 이상은 훈련하고, 마임이스트도 40세가 넘어야 그 맛을 살릴 수 있습니다”

클라운마임이란 피에로나 어릿광대가 세상 풍자를 재밌는 놀이방식으로 풀어 감동을 선사한다. 이제는 세계적 장르로 자리매김한 클라운마임을 그는 국제대회가 열릴 때면 직접 무대에 올라 선보인다. 마임과 재즈 중 어느 게 더 좋은지 우문을 던지자, 현답이 돌아왔다.

“음악은 고향과 같은 겁니다. 음악은 절대적이죠. 모든 움직이는 것, 생각하는 것에 음악이 필요합니다. 음악과 마임 등, 모든 행위예술은 책 속에 있습니다. 책은 곳 상상입니다”

최규호의 피에로, 아이들의 친구가 되다

▲ 일렉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하고 있는 최규호 사장.
최 사장이 경제적으로 계속 힘들었던 건 아니다. 잘 나가던 시절도 있었다.

“1989년에 서울 롯데월드가 개장하면서 환타지 극장에서 공연을 1년간 했습니다. 서울랜드에서 스카웃해서 그곳에서도 15년간 마임을 하기도 했고요. 1993년에는 제약사인 종근당의 ‘속청’ 광고를 찍기도 했습니다”

그해 롯데제과와 태화고무장갑 등, CF 3편을 찍고 <KBS> TV유치원 ‘하나둘셋’에 고정으로 출연했으며, 대전 엑스포에서 3개월간 공연했다.

“TV유치원을 8년간 했어요. ‘빨간 코 아저씨’로 출연했는데, 광대만 보면 애들이 울 때였는데 빨간 코 아저씨로 광대가 아이들의 친구가 됐습니다. 미디어의 영향이 크다는 걸 느꼈던 때죠. 그렇게 인생을 즐기다보니 어느새 60세가 됐네요”

그 때 벌었던 돈은 오래전에 바닥났단다. 재즈카페 ‘공감’도 공연할 수 있는 공간이 차지하는 비중이 만만치 않아, 테이블이 별로 없다. 돈을 많이 벌 공간은 아닌 듯했다. 수익이 궁금했다.

“낮에는 나무로 액자 작품을 만들어요. 상식을 벗어난, 살아있는 액자를 만듭니다. 사진이 있어야한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액자틀만 만들고 그 안에 새가 앉아있다면 살아있는 액자가 되는 거죠. 새들을 위한 액자입니다. 오늘은 새장을 하나 팔았어요. 보통의 새장은 새들을 가둬놓잖아요. 이 카페에도 있는데, 제가 만든 새장은 새가 밖에서 놀 수 있는 새장이에요. 동호회 밴드에 올렸더니 구입하고 싶은데 돈이 부족하다는 사연이 올라와, 반값에 드렸습니다”

3년 전 지인이 왕관앵무새 한 쌍 중 한 마리를 키우라고 줬는데, 둘이 떨어져서 그런지 계속 울더란다. 한 마리를 더 데려와 철창 새집에 키웠는데, 갑자기 예전에 새를 주제로 마임을 한 게 떠올랐단다.

“갑자기 내가 새가 된 기분이 들었어요. 인간들은 갇히면 무척 답답해하는데 새들이라고 즐거울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만든 게 저런 모습의 액자와 새장입니다. 이것도 연극 무대 세트 개념이에요. 굳이 새장은 새장다워야 한다는 것과 철창으로 가둬야한다는 고정 관념을 깬 거죠”

왕관앵무새의 이름은 ‘별’과 ‘달’이다. 해와 달은 못 만나지만 별과 달은 같은 하늘에서 만날 수 있으니 함께 예쁘게 만나라는 의미를 담아서 지었단다.

나를 스스로 존중하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존중하지 않는다

▲ 당신을 위한 라이브 재즈 콘서트’. 남동구 구월동 문화의 거리에 있는 재즈카페 ‘공감’의 실내 일부 모습.
본인을 외계인, 스트레인저, 에어리언이라고 말하는 최 사장은 자신을 이상한 사람이지만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내 스스로 존중하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존중하지 않아요. 자신을 바보라 생각하면 스스로에 대한 예의가 아니죠. 저는 재주가 많아요. 성격도 낙천적입니다. 당장 굶어죽어도 깔깔대다가 웃으면서 죽었다는 얘기를 듣고 싶어요. 그리고 저는, 세상에 태어난 게 부모의 몸을 빌려 태어났지만 남을 위해 태어났다고 생각해요. 왜냐면 남이 원하는 일을 했을 때 제일 행복을 느낍니다. 오늘도 새장을 직접 주고 산 사람의 웃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인터뷰 때문에 직접 보지 못해 안타까워요.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볼 때 저도 행복합니다”

삶의 철학이 ‘행복하자’라고 말하는 그는 우주의 중심인 나도 남이 있기에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행복하지 않으면 억울해서 잠이 안 온다고 말하는 그는 상대도 행복할 수 있게 무언가를 계속 하고 싶단다. 카페 ‘공감’도 그런 공간이길 바란다.

“저와 직원 두 명이 더 있습니다. 한 명은 베이시스트이자 가수이고, 한 명은 피아니스트 겸 재즈보컬리스트에요. 사람 위에 사람이 없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아티스트로 대접받기 이전에 손님들과 친구처럼 지내고 싶습니다. 그래서 멋있게 서빙도 하고 공연도 하고 싶습니다”

매주 월요일과 수요일, 목요일은 초청 연주자들의 공연이, 그 외에는 직원들의 공연이 저녁 9시와 10시 30분에 30분씩 있다. 그 외에도 손님이 권하면 언제든지 연주와 공연을 들려준다. 4월부터는 마지막 주 토요일에 특별공연을 한다.

“재즈는 원래 흑인들의 음악이자 서민들의 음악입니다. 우리 공간은 특별한 사람을 위한 음악을 하는 곳이 아닌, 모두 편하게 즐길 수 있는 곳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저작권자 © 인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