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레라이스를 만들기 전엔 위를 최대한 비워 놓는다. 일단 밥에 비벼서 한 번, 카레만 가득 담아 또 한 번, 이렇게 두 그릇을 먹어야 성에 차기 때문이다. 건더기가 잔뜩 들어가 포만감도 끝내준다. 서너 시간 정도는 소화를 시키느라 낑낑대면서도 두 그릇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다.

어렸을 때 카레는 특식 중의 특식이었다. 콩나물 100원어치 사오라는, 귀찮기 그지없는 심부름을 이틀 걸러 한 번은 했으니, 우리 집 밥상은 늘 그렇고 그랬다. 고기는 언감생심. 어쩌다 ‘오뎅(어묵은 느낌이 안 산다)’ 사오라는 말이 떨어지면 그야말로 가게까지 줄달음쳐 숨을 헐떡이며 “아줌마, 오뎅 주세요”를 외쳤다.

▲ ⓒ심혜진.
카레를 하는 날엔 이런 심부름 따윈 하지 않았다. 두 손 가득 장을 보는 특별한 날(아마도 아빠 월급날), 장바구니에 돼지고기가 담긴 드문 날, 엄마는 카레를 끓였다. 이런 날엔 밖에서 놀다가 엄마가 부르기도 전에 미리 집에 들어와 손발을 씻었다. 카레 냄새를 맡으며 저녁상이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설렘을 느끼기 위해서다.

엄마는 가장 큰 냄비에 채소와 고기를 한꺼번에 넣고 그야말로 한 솥 가득 물을 부었다. 재료가 익으면 카레 두 봉지를 물에 개어 넣었다. 재료를 볶지 않은 대신 식용유를 한 번 휘둘러 섞었다. 이걸로 다섯 식구의 두 끼 정도는 뚝딱 해결했다.

엄마에겐 고민이 있었다. 나와 위아래로 두 살 터울인 언니와 남동생은 이 맛난 카레에 불만이 많았다. 언니는 돼지고기가 거슬렸고, 남동생은 양파 씹히는 게 싫었다. 언니는 고기를, 남동생은 양파를 빼주길 바랐다. 둘 다 빼면 감자와 당근만 남는다. 모두를 만족시키는 카레는 당시의 엄마에겐 불가능에 가까웠다.

어느 날 엄마가 큰 결단을 내렸다. 카레에서 돼지고기를 뺀 것이다. 하지만 정작 고기를 빼달라던 언니는 “맛이 이상하다”며 카레를 먹지 않았다. 남동생도 만족스러울 리 없었다. 좋아하는 고기는 사라지고 싫어하는 양파와 당근만 풍성하게 들어갔으니 말이다. 먹성 좋은 나만 그럭저럭 잘 먹는 통에 엄마에게 칭찬까지 들었다. 나도 고기를 넣은 게 더 맛있긴 했다.

다음번엔 동생의 바람대로 양파를 넣지 않았다. 나 역시 물컹한 양파를 그리 좋아하지 않아 은근 기대를 했다. 그런데 웬걸. 어떻게 된 게 고기를 안 넣었을 때보다도 맛이 형편없었다. 양파가 단맛을 낸다는 건 한참 후에 알았지만, 이날 카레에서 양파의 존재감만은 확실히 느낀 셈이다. 이후로 엄마에게 고기나 양파를 빼달라는 말은 누구도 하지 않았다.

삼십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카레를 즐긴다. 새우나 오징어를 넣기도 하고, 때론 채소만으로 냄비를 채운다. 파프리카, 양배추, 애호박, 버섯, 시금치, 토마토, 가지, 브로콜리 등 그날 냉장고 채소칸에 무엇이 있느냐에 따라 내용물이 달라진다. 두부를 구워 깍두기 모양으로 썰어 넣으면 씹는 맛이 좋은 채식카레가 된다.

절대 빠지지 않는 것은 역시 양파다. 그리고 뭐니 뭐니 해도 제일 맛있는 건 돼지고기와 양파, 감자, 당근만 들어간 카레다. 카레 한 그릇에도 저마다 욕구가 달랐던,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어린 날의 그 카레 말이다.

※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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