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다리 헌책방거리


▲ 학창시절 함께 공존했던 배다리 헌책방은 이제 그 자취를 잃어버리고 있다


산곡동에 사는 김씨는 새 학기를 맞아 배다리 헌책방거리를 오랜만에 찾았다. 초등학교 5학년 아이의 참고서와 문제집을 사기 위함인데, 아무래도 헌책방에서 구입하면 저렴하지 않을까해서 택한 걸음이었다.
김씨는 깨끗한 참고서를 찾기 위해 여기저기 둘러보다 평소 보고 싶었던 소설책 몇 권을 발견해 같이 구입했다. 김씨는 참고서를 저렴하게 구입한 것보다 헌책들을 찾고 뒤져보며 10여년전의 추억을 되새길 수 있음이 더욱 만족스러웠던 시간이됐다.

30대 중반 이상의 인천사람이라면 학창시절 참고서나 문제집 또는 사회과학 서적을 구하기 위해 이곳을 방문했던 경험을 갖고 있을 것이다.
문제집과 참고서 등 공부하는데 필요한 책들을 사려는 학생들, 퇴근 후나 주말에 눌러 앉아 읽고 싶은 책을 맘껏 보거나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하기 위해 찾는 직장인들. 그렇게 배다리 헌책방에는 책을 좋아하고 필요로 했던 이들이 모이곤 했다.
한마디로 모든 것이 궁핍했던 시절에 가난한 사람들의 삶의 한 공간으로, 배다리 헌책방은 지금 대형서점에서는 느낄 수 없는 특유의 향기를 머금고 있었던 또 하나의 문화공간이었다.

배다리 헌책방거리는 한국전쟁으로 폐허가 된 거리에 손수레와 노점상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형성돼, 1960년대에서 1970년대에는 약 40여개의 헌책방이 자리 잡을 정도로 호황기를 누렸다.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경제발전으로 살림이 조금 넉넉해지자 헌 책보다는 새 책을 구입하려는 성향이 늘어나면서 하나 둘씩 서서히 문을 닫았고, 결국 지금은 집현전, 아벨 등 허름한 간판을 내건 6개의 헌책방만이 남아 헌책방거리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헌책방거리가 위치한 금곡동 한가운데에 산업도로가 놓일 예정이어서 배다리 헌책방거리는 영원히 사라질 안타까운 신세에 처해있다.

▲ 우연히 찾은 책 속에 깨알같은 글씨로 적은 사연을 발견하고 공감했던 헌책방에서의 추억과 기억은 이제 옛것이 된 것일까?

현대인들은 대부분 대형서점에서 책을 구입한다. 최근에는 인터넷을 통해 손쉽게 안방이나 사무실에서 원하는 책을 받아본다. 어떤 책을 살지 미리 생각해서 서점을 가거나 인터넷을 통해 주문한다. 막연히 책을 사야겠다는 생각으로 서점을 찾기도 한다. 

하지만 대형서점에서는 일반적으로 상품성이 뛰어난 책들을 전시하기 때문에, 그리고 출간된 지 2년 정도 지나면 신권에 밀려 서점에서 사라지는 책들이 많다.
이에 비해 헌책방에 가면 서점에서 구입할 수 없는 질 좋은 내용의 책을 만날 수 있다. 헌책방 주인이 30년 넘게 운영해온 경험과 책을 보는 안목으로 질 좋은 책을 구비해 놓기 때문이다. 내용이 좋은 책은 반드시 손님이 찾기 마련이기 때문에 찾아오는 손님들이 헛걸음을 하지 않게 하기 위한 헌책방의 배려이다.

배다리 헌책방거리는 단순히 저렴한 가격으로 책을 구입할 수 있는 곳만이 아닌, 문화와 추억이 살아있는 곳이다. 부모에게 새 참고서 살 돈을 받아 헌책방에서 구입하고 남은 돈을 용돈으로 충당했던 추억, 책 살 돈이 없어 하루 종일 이것저것 뒤적이며 무료로 책을 읽던 기억, 누군가 사연을 적어 놓거나 해석을 달아놨던 기억 등 헌 책에 얽힌 옛 추억이 깃든 거리며, 시중에선 이미 사라진 책을 만날 수 있는 자료관 역할도 하고 있다. 이런 배다리 헌책방거리가 현대인들의 무관심 속에서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자녀와 함께, 연인과 함께, 친구와 함께, 회사 동료와 함께 헌책방거리를 찾아보길 권하고 싶다. 전문서적부터 아이들 학습용 교재까지 모든 종류의 책이 있는 헌책방에 눌러앉아 책을 보고, 학창시절의 옛 추억을 떠올려보는 것도 괜찮을 게다. 급변하고 각박해지는 현대사회의 정신건강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아직 배다리 헌책방거리에서 헌책방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은 ‘헌책방은 주인이 지키는 것이 아니라 헌책을 찾는 손님들이 지키고 만들어가는 공간’이라고 한목소리를 낸다. 그들에겐 이  소중한 공간을 다음세대에게 연이어 물려주어야 할 무언가가 있는 듯했다.

그 무언가가 궁금하다면 주저 말고 잠시 짬을 내 배다리 헌책방을 찾아보시라.
배다리 헌책방은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8시, 주말 정오 12시부터 오후 7시까지 운영하며 동인천역에서 걸어서 10분정도 거리에 있다. 시내버스 2, 15, 32번을 이용하면 편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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