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꽃 ②

노동으로 흘린 땀이 마른 자국이 마치 꽃과 같아 소금꽃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노동자들이 시민기자로 참여해 노동 현장이나 삶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띠리링 띠리링’
새벽 4시 40분, 머리맡에 둔 핸드폰 알람소리에 몸이 기계적으로 반응했다. 새벽 5시, 눈을 뜬 듯 감은 듯 욕실로 가서 세수와 양치질을 하고 거울 앞에 앉았다. 새벽 5시 20분, 화장을 간단하게 하고 남편을 깨웠다. 애들이 어린이집에 갈 준비물을 챙기고 늦지 않게 어린이집 버스를 태우라고 남편에게 당부하고 집을 나섰다. 새벽 5시 25분, 버스정류장으로 발걸음을 재촉해 버스를 겨우 탔다.

자리에 앉자 안도의 숨이 절로 나왔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거리에 사람들이 걸음을 바삐 옮기고 있다. 창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마치 개미 같았다. 창에 비친 내 모습도 영락없는 개미다. 일에 쫓겨 많은 것을 잃어버린 슬픈 일개미들이 또 하루 허겁지겁 일터로 가고 있다. 다시 태어나면, 일개미가 아닌 ‘잠개미’로 태어났으면 좋겠다. 잠만 실컷 자는 ‘잠개미’.

어제도 밤 근무를 마치고 집에 오자마자 화장만 지우고 쓰러져 잠이 들었다.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아들이 깨워 겨우 일어났다.

“엄마는 잠보야? 왜 잠만 자” 쉬는 날이면 거의 잠만 자는 내가 이상했나보다.

“엄마가 피곤해서 그래” 일터에서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온 집에는 청소와 설거지, 빨래더미가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새벽 5시 55분, 병원 입구에 들어섰다. 병동에 도착하니 푸석한 얼굴로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밤 근무를 한 김 선생의 얼굴이 보였다. 퀭한 눈이 안쓰러웠다. 엊그제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눈물이 나오려했다. 슬퍼할 겨를도 없이 인수인계가 시작됐다.

오전 7시 30분, 하루일과가 시작된다. 환자들의 식사시간이다. 병실을 돌며 환자들을 깨우고 이름표에 맞는 음식을 가져가는지 확인한다. 우유만 가져가는 환자, 식사하지 않고 잠을 더 자겠다는 환자와 한바탕 한뒤, 구수한 된장국과 밥 냄새가 버스 안에서 먹은 두유가 전부인 내 위장을 자극했다.

식사를 거부한 환자들의 식판을 보며 먹고 싶은 욕구를 꾹꾹 누른다. 아침을 먹고 느긋하게 차를 마시는 환자들이 부러웠다. 밥을 차리지 않아도, 설거지를 하지 않아도 되는 그들이 마냥 부럽다. 물론 환자들 저마다 고충과 어려움이 있겠지만.

투약 시간이다. 환자 이름과 약을 한 번 더 확인한다. 주사를 줄 때와 투약할 때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한다.

약품 이름과 모양이 비슷해도 약효가 다르고, 용량이 잘못 투입되면 환자가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 한 번의 실수나 잘못도 결코 허용될 수 없다. 투약을 마치고 핸드폰을 보니 부재중 전화가 두 통이 와있다. 아들이 다니는 어린이집에서 온 전화다.

행여 아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건 아닌지, 가슴이 내려앉고 온갖 상상이 일어난다.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다고 둘러대고 부리나케 어린이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 아이가 열이 38도까지 오르고 매우 추워하는데 병원을 데려가야 할 것 같아서요” 담당교사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전해지는 순간, 앞이 캄캄해졌다.

“선생님, 제가 일하는 중이라서 움직일 수가 없어요. 어떡하죠?” 맥없이 늘어져 엄마를 기다릴 아이를 생각하니 억장이 무너졌다. 아이가 아파도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화장실 변기에 앉아 눈물만 찍어대는 것이 고작인 내 신세에 화가 났다. 갑자기 일이 생겼을 때 일반직처럼 조퇴나 휴가가 가능한 것도 아니고, 오로지 교대자가 올 때까지 환자들을 떠날 수 없다.

병동에서 큰 소리가 나는 것 같아 얼른 화장실을 나왔다. 병실 문 앞에서 2년차 간호사가 고개를 숙이고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환자에게 일장 연설을 듣고 있었다. 내막을 알아보니, 간호사는 잘못한 게 없는데 환자가 자기 말을 안 들었다고 기분이 틀어진 것이었다. 이 환자는 며칠 전에도 외출했다가 술 먹고 돌아와서 근무자들 정신을 홀딱 빼놓은 진상 환자다.

“○△□님, 병원 규정이 있어서 저희가 맘대로 할 수 있는 일 아니에요” 당장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은 간호사를 간이휴게소로 들여보내고 환자에게 이해를 시켰다.

“야, 니들 똑바로 해. 우리가 낸 세금으로 월급 받아 가려면 잘해야지. 당장 원장오라고 해” 환자는 자기 말만 하면서 막무가내였다. 이럴 때마다 당장 때려치우고 싶다. 왜 우리가 이렇게 화풀이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는지.

드라마에서 보는 그런 대우는 아니더라도 인격적으로 대우받고 싶다. 영화 속 친절한 간호사를 꿈꿨던 내 자신이 바보였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하는 순간이다. 이럴 때는 무조건 고개 숙이고 죄송하다고 해야한다. 그것이 이 상황을 빨리 해결하는, 슬프지만 유일한 방법이다.

오후 12시 30분, 오늘은 점심을 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저번처럼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점심은 고사하고 생리적인 문제도 참아야한다. 다행히 식당을 갈 수 있다. 교대자를 생각해 최대한 빠르게 밥을 국에 말아 마시듯이 배를 채운다. 10분이 넘지 않는다. 그렇게 먹은 뒤 겨우 양치만 하고 컴퓨터에 환자들 상태를 입력하기 시작한다. 30명이 넘는 환자들의 투약, 진료 의뢰와 결과, 담당과장 전달사항까지 입력하다보면 업무를 마치기도 전에 다음 근무자가 온다. 반갑게 맞을 여유도 없이 인계 준비를 해야 한다. 인계를 마치고 나면 퇴근시간인 오후 3시가 지나버린다.

인계가 끝나도 바로 퇴근할 수가 없다. 마무리 못한 환자 상태 입력을 끝내야하기 때문이다. 오후 3시 40분, 퇴근 도장을 찍고 병원 현관을 나섰다. 병원 상황에 대한 교육이 오후 4시에 있지만 아픈 아이 걱정에 내일로 미뤘다.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탔지만 업무 중에 빠진 것은 없는지, 환자 인계가 잘못된 것은 없는지, 다시금 생각을 더듬어 업무를 하고 있는 나를 본다. 버스는 하얀 목련이 피어있는 정류장을 지나고, 나는 오늘도 지친 몸과 마음으로 잠보가 되는 꿈을 꾼다.

/한재호 시민기자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한재호 시민기자는 인천의료원에서 간호조무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같이 근무하는 간호사들이 겪는 일들을 그들의 입장에서 구성해 글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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