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급계약 종료는 조합원 130여명 실질적 해고”
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 비정규직지회 농성 중

2009년에 설립된 회사의 사내하청(도급업체)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만들자마자 지금껏 별 문제없이 다시 체결되던 고용계약이 해지돼 노조탄압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인천 연수구 송도에 위치한 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주)는 자동차 감지센서와 전자제어장치 등, 자동차의 첨단안전장치 부품을 만드는 회사로 2009년 12월 공장을 가동했다. 생산직은 모두 도급업체인 서울커뮤니케이션이나 에이치아르티시(HRTC)와 근로계약을 맺은 비정규직이다.

이들이 전국금속노조 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 비정규직지회(이하 노조)를 만든 건 지난 2월 12일이다. 노조 가입대상자 300여명 가운데 신입사원과 퇴사 예정자를 제외하고 대부분 노조에 가입했다. 일요일에 열린 노조 출범식에 노동자 250여명이 참가했다.

노조는 헌법에 보장된 권리대로 단체교섭을 추진하고 있었다. 그런데 도급업체 두 곳 중 한 곳인 HRTC가 ‘사업을 포기하겠다’는 내용의 공문을 지난달 2일 노조에 보냈다. HRTC는 ‘다음 도급업체의 고용승계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지난 9년간 도급업체와 큰 문제없이 재계약을 맺었던 노동자들은 노조를 만들자마자 도급업체가 폐업을 신청하고 신규 도급업체와 갈등이 발생하자 ‘단순한 근로계약 문제가 아닌, 노조를 깨기 위한 원청의 노조탄압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새로 들어온 도급업체는 불법적 요소들이 담긴 동의서와 서약서에 서명할 것을 요구했다.

노조가 독소 조항이라고 여긴 것은 ‘갑’이 근무지와 종사할 업무를 변경할 수 있고 ‘을’은 따라야한다는 규정이다. 이는 노조 간부에게 부당한 인사를 조치할 가능성이 높은 조항이다.

다음은 ‘1일 2교대를 원칙으로 하고, 평일 12시간 연장근로ㆍ야간근로ㆍ주말이나 휴일근로에 일괄 동의’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 이로 인해 강제 잔업과 특근을 할 수밖에 없다. 임금은 시급(군필 7260원, 미필 7020원)만을 기재하고, 그동안 받아왔던 상여금과 성과급, 각종 수당이나 복리후생 조항은 누락했다. 이는 임금 관련 분쟁의 소지가 많고, 미필 임금을 적용받는 여성노동자에게 불합리한 차별이다.

또한 ‘을’의 고의 또는 중대 과실을 이유로 ‘갑’에게 손해를 끼쳤을 경우 ‘을’ 또는 ‘을’의 연대 보증인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조항이다. 이미 많은 사업장에서 문제가 됐던 손해배상 가압류로 인해 노동자들의 고통을 재현하겠다는 의도로 해석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회사의 이미지를 손상시키거나 재산상 피해를 줬었을 때, 파업을 선동했을 때, 형사상 유죄판결을 받았을 때 ‘을’에게 귀책사유를 묻겠다’는 조항이다. 기준이 모호해 노조 탄압의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조는 조합원들의 고용승계를 위해 신규 도급업체가 요구한대로 입사지원서와 이력서를 제출했고, 불법적 요소들이 포함된 동의서와 서약서에도 서명했다. 하지만 신규 도급업체는 원청과의 도급계약을 철회했다.

노조 관계자는 “원청인 만도헬라와 신규 도급업체가 협의하는 과정에서 틀어진 것 같다. 도급업체가 수량을 못 맞출 경우 페널티를 부과하겠다는 원청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 뒤 “그러나 단순히 협의과정의 문제가 아니라, 여러 면에서 노조를 탄압하기 위한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다”고 덧붙였다.

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는 신규 도급업체를 다시 물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는 노조 조합원이 일하던 자리에 정규직 사무직원을 대체 투입해 물품을 생산하고 있다. 노조 관계자는 “비전문 인력이 투입돼 품질에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했다.

품질보다 더 큰 문제는 HRTC에 소속돼 일했던 조합원 130명이 하루아침에 길거리로 쫓겨났다는 것이다. 노조 관계자는 “2009년 입사해 지금까지 별일 없이 재계약됐던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하자마자 도급계약을 종료한 것은 해고와 마찬가지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만도헬라일렉트로닉스는 회사 정문에 ‘무단침입금지 공고문’을 붙여 노조원들의 출입을 막았다. ‘HRTC와 도급계약이 4월 2일자로 종료돼 당사 출입을 금지하며, 이를 위반할 경우 법적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노조는 지난 3일부터 회사 앞에서 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농성과 선전전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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