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현장실습제도 꼭 필요한가? ① 현장실습생의 상처와 눈물(상)

<편집자 주> 전라북도 전주의 엘지유플러스 고객센터에서 일하던 특성화고등학교 현장실습생 사망 사건으로 현장실습제도를 개선해야한다는 목소리가 어느 때보다 높다. <인천투데이>은 인천지역 특성화고교 현장실습생ㆍ교사ㆍ학부모, 현장실습 업체 관계자, 시교육청 관계자, 관련전문가 인터뷰로 현장실습제도의 개선방안을 찾고자한다. 이번 호에는 현장실습생으로 일했던 학생들을 만나 그들의 애로사항을 들었다. 앞으로 3회 더 보도할 예정이다.

전주지역 엘지유플러스 고객센터에서 일하던 현장실습생의 사망(=자살) 사건은 충격이었다. 특히 지난달 18일 에스비에스(<SBS>) 시사고발 프로그램인 ‘그것이 알고 싶다’가 보도한 ‘죽음을 부른 실습 - 열아홉 연쇄사망 미스터리’를 보곤 더 충격을 받았다.

이 같은 상황이 전국적일 거라는 생각에 인천에서 현장실습을 했던 학생들을 만나 경험담을 듣고 싶었다. 전북지역 사망 사건 발생 후 인천시교육청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는 단체들 중 하나인 인천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의 도움을 받아 지난해 특성화고교 3학년으로 현장실습을 나갔던 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

지난 3월 24일 한 카페에서 만난 A(20ㆍ여)씨는 인천 B특성화고교를 올해 2월 졸업했다. 지난해 9월 초, A씨는 취업담당 교사의 추천으로 인천 중구의 한 업체에 현장실습생으로 들어갔다.

업체 직원이 10명 안팎의 작은 회사였는데, 사무직 일을 했다. 하지만 그녀가 다니고 있는 학과 전공과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었다. 게다가 가자마자 배운 일은 물품 단가를 허위로 장부에 작성하는 일이었다. 사장이 사무실에서 피우는 담배 냄새도 견뎌야했다.

어떻게 해서든 버티려한 A씨는 채 두 달도 안 돼 일을 그만뒀다. 사장이 성추행을 했기 때문이다. 블라우스를 입고 출근했는데 사장이 블라우스의 팔 쪽을 잡아당겨 속옷 끈이 보이게 했다. 또 한 번은 사장이 자신의 얼굴을 A씨의 얼굴에 밀착하고 몸을 툭툭 쳤다. 어깨를 툭툭 치기도 했다.

A씨는 처음엔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몰라 당황했다. 그래도 사장이고, 직원이 적다 보니 관계가 어색해질 것 같고, 부당한 일을 당할 것 같아 참았다. 하지만 이런 일이 계속되자, 성적 수치심을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 지난 3월 18일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죽음을 부른 실습 - 열아홉 연쇄사망 미스터리’의 일부 장면 갈무리 사진.
A씨는 사장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학교에 알렸다. 그 전에는 업체가 근로계약서도 쓰지 않고 연ㆍ월차도 없다고 알렸는데, 그때는 학교에서 아무도 업체에 와서 확인하지 않더니, 성추행을 당했다고 하자 그날 바로 취업부장교사가 찾아왔다.

그런데 취업부장교사는 사장을 만나고 나서 A씨에게 ‘성추행하려는 의도가 전혀 없었고, 잘 몰라서 그랬다고 한다. 앞으로도 안 하겠다고 하니 참아보자. 담배도 문 닫고 피니까 괜찮지 않니? 근로계약서는 지금 작성하면 되는 것 아니니. 너 때문에 내가 여기까지 왔는데, 그만두겠다는 말 뿐이냐’라며 오히려 나무랐다.

취업부장교사의 이러한 대응과 태도로 A씨는 큰 상처를 받았다. A씨는 결국 업체를 그만두고 학교로 돌아갔다.

그런데 학교는 A씨에게 더 큰 상처를 줬다. 학교로 돌아간 뒤 일주일 동안 매일 2~3시간씩 교육을 받아야했던 것이다. 담임교사도 ‘너 대신에 그 자리에 다른 학생이 일할 수도 있는데, 그 기회를 없애버렸다. 그냥 참고 일을 했어야지’라고 꾸짖었다. 취업부장교사는 ‘사장이 나쁜 사람 아닌 것 같으니 그냥 덮자’고 해, 성추행 사건은 신고하지도 못했다.

매일 2~3시간씩 이른바 ‘훈화’교육을 진행한 교사들은 대부분 ‘너희는 참을성이 부족하다, 인내심이 부족하다’라는 이야기를 했다. 일부 교사는 1시간 동안 신문 기사를 베끼는 깜지(종이에 빼곡히 적게 하는 것)를 하게 했다.

A씨는 “정말 기분이 나빴다. 업체가 안 좋고 사장에게 성추행을 당해서 그만두고 나왔는데, 학교는 나를 죄인 취급하고 잘못된 사람 취급을 했다”며 “교사들에게 그런 상황을 설명해도 모두 반박하며 눈치를 줬다”고 말했다.

이어서 “모두 10명 정도 (훈화)교육을 받았는데, 본인이 잘못해 업체에서 나온 게 아니라, 사무직을 시켜주겠다고 해놓고 영업직 일을 시켜 그만두고, 사무직인데 책상도 주지 않으면서 쪼그리고 앉아 일을 시켜 견디다 못해 그만두고, 급여를 원래 말했던 것보다 적게 줘서 그만둔 것이었다”며 “이런 상황인데 벌을 주는 것처럼 교육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교사들은 ‘우리 학교가 옛날부터 취업률이 높은데 너희 때문에 그 명성에 금이 간다’고 이야기하며 취업률을 위해 참으라고 했다”고 덧붙였다.

B고교는 현장실습을 나갔다가 중간에 그만두고 학교로 돌아오면, 한 달간 아예 현장실습을 다시 못하게 했다. 취업부장 교사가 ‘방과후학교 수업을 들으면 바로 현장실습을 할 수 있게 해준다’고 했지만, A씨는 이를 거부했다. 그러자 취업부장 교사는 ‘졸업 때까지 취업하지 말라’고 했다.

A씨는 현장실습을 다시 나가지 않았고, 졸업 후 국비를 지원받는 학원을 다니며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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